[루포] (70) 光州(광주) 北洞(북동)본당
발행일1961-06-11 [제282호, 3면]
대문을 들어서니 성당 입구에 조그마한 표쪽에 『다음 미사 9시』라고 쓰붙여 있는 것이 단박 보인다.
둘째 미사(주일)가 끝나기도 전에 벌써 80여 평도 못 돼 보이는 성당 마당은 이 9시 미사에 참여하려는 교우들로 찼다.
5백50명도 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이 성당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4천명이나 된다는 교우가 주일 하루 다섯때 미사에 참여하려니 무리가 간다. 30만 광주시 인구의 약 2.3%인 7천여 명의 교우들에게는 현 성당의(두 곳) 1백50평 건물은 도저히 충분치 못하다.
이 현상을 해결하려 새로 주교좌 성당이 될 것을 포함하여 우선 세 곳에 성당을 세우려 광주시 계림동·월산동, 서상동에 부지를 마련했고 이 중 한곳을 먼저 금년 가을이나 련년 봄에 기공ㄱ을 할 예정이다.
현 주교좌 성당인 이 북동본당은 1933년까지 노안(老安)공소였었다.
좁은 성당에 4천의 교우가 모두 천주께 기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회장들과 「레지오」단원들은 정말 수고를 한다.
붉은 성심의 표에 「안내」의 두 글자를 새긴 것을 가슴에 단 이 교우들은 연신 들어오는 이들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줄을 짓고 위로 앞으로 인도하여 좁은 성당을 넓게 쓴다.
본당 주교 예수성심상은 양팔을 펴들고 열심히 기구하는 아들·딸들을 제대 중앙 윗자리에서 정말 굽어보신다.
제대 좌칙에 성녀 <데레사> 영해예수, 오른편엔 <안드레아> 김신부님 동상이 놓여있다.
빈틈 없이 조여 앉은 남녀노소의 영혼들은 다만 조용히 기구만 한다.
「고함」을 지르지 않는 남녀 성인성가대는 더욱 조용한 기구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다른 어느 본당과 다름 없이 여교우들이 더 많은 미사에서 다른 본당보다 다른 것은 젊은 교우들이 애궁전을 걷는 것이다.
하루에 모으는 돈이 평균 3만2천환은 된다 한다.
현 본당 주임 <도마> 안신부는 이 본당과 인연이 깊은 지 1948년 1월 이 나라에 처음 나와 첫 사목생활을 보좌로 6.25동란 때까지 하다가 목포, 함평을 거쳐 다시 주임으로 부임하여 3년이 지났다.
우리나라 「레지오 마리에」 군단 본부가 있는 곳이라 본당활동의 거의가 「레지오」 운동이다.
또 이에 계속된 활동을 하는 하나의 학생반과 두 개의 성인반 「바트리시안」 조직이 능동적이다.
본당 전교우가 「레지오」에 속하고 영신생활이 이에 직결되고 이 운동이 전교활동의 근원이다.
새로 임명된 <도마> 조(趙允相=判事) 전교회장과 <공사가> 金_男) 부회장이 훌륭한 보좌를 할 것이다.
다섯 대의 미사가 끝나면 그때마다 「레지오」의 모임과 교리반은 본당 신부님을 기대린다.
『이젠 영세를 권하는 것보다 질의 향상에 애쓰겠읍니다』고 방침을 설명하는 도중에 나이 많은 한 남교우가 예비자 한 명이 또 생겼다고 보고하고 신부와 더불어 본당 소속의 약 180세대나 되는 가난한 교우들을 걱정한다.
「애란」 출신인 <도마> 신부는 <노엘> 천신부가 여수 본당으로 간 뒤는 혼자서 「레지오」(세나투스), 광주교구 학생연합회 지도신부로 일에 파묻혀 있다.
『4월 말에 새 신부인 <로마노> 김(金鍾南) 신부가 부임했으니 난 좀 쉬여야지요. 7년만의 1년 휴가도 얻고』 끝없는 천주사업 위해 안신부님은 새 정력을 준비할 차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