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보는 바를 보는 눈은 복되도다(루가 10,23)
오늘 성경에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바를 보는 눈은 복되도다 대개 너희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제왕들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기를 원하였으되 보지 못하고 너희가 들은 바를 듣지 못하였나니라』하셨읍니다. 너희가 보는 바를 보는 눈은 복되다 하셨으니 저들은 무엇을 보았으며 저들은 무엇을 드렸읍니까.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주 그리스도의 죄없이 깨끗한 천주다운 생활을 보았고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강조하시면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행하신 영적을 보았고 또 영생과 영복을 얻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교리를 드른 것입니다. 다시말하자면 천주께서 원조(元祖)에게 허락하신 「메시아」를 보고 그가 가르치시는 교리를 드른 것입니다.
죽지않고 살자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요 살되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 하나도 빼놓수 없는 모든 인간의 소원이거늘 누구나 한번은 죽지않고서는 못백이고 누구고 한평생 사리에 행복만을 누리 수는 없는 것이 인간의 처지인 것입니다. 죽으면서도 살려하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행복을 희망하는 이 모순된 인간들의 희망을 신학자와 철학자들은 해석하기를 『이는 원래 인간은 영혼이 죽지않는 것이오 인간은 원래 행복하게 생활하게 끔 조성된 까닭이라』합니다.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이러한 추리(推理)를 창세기(創世記)는 잘 설명해주고 있읍니다.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인간이 죽고야 말고 행복해야 할 인간이 불행을 면치 못함은 무슨 연고냐 하면 우리가 이미 다 믿고 있거니와 그 시초는 원죄에 있는 것입니다.
그 불행의 가중(加重)은 원죄로 약화된 인간이 저지른 각가지 죄 때문인 것입니다.
인류의 원조 <아담>과 <에와>가 낙원에서 추방될 때 그들과 그들의 후손의 앞길에는 자욱마다 간난과 비애와 고통과 수고에 형극이 곳곳에 가로놓였고 마지막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행복하고 싶은 인간, 죽지 않으려는 인간, 이 인간이 불행과 죽음을 면치 못할 때 괴롭고 슬프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모순된 불행을 해명하려고 수많은 학자들은 애써 보았지만 <가인>의 피로 흐려진 그들의 피만으로는 해명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인류를 원죄중에 그러 버려두지 않으시고 저들을 도로 찾으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 준비로 「이스라엘」민족을 간선하시고 저들만이라도 구세주 오실 때까지 당신 이름을 인간뇌에서 완전 망각하지 않겠끔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때로는 간선한 왕도 보내셨던 것입니다. 특파된 선지자들과 간선된 제왕들의 염원은 하루빨리 구세주강생하사 인류를 구속해주실 것을 간곡히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에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바를 보는 눈은 복되도다. 대저 많은 선지자들과 제왕들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기를 원하였으되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바를 듣기를 원하였으되 듣지 못했도다』 하시면서 당신이 4천년을 기다리던 「메시아」시라는 것을 언명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언명하시되 거짓말은 하시지는 않았읍니다. 그의 말씀이 거짓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영적을 행하셨고 영적을 행하신 것이 분명하고 아무도 부인 못했던 까닭에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되도다』라고 군중 앞에서 서슴치 않고 말씀하셨으되 한사람도 항거는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천주만이 할 수 있는 영적도 않으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 그를 모해하려고 독살을 피우는 「바리서이」들이 그냥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읽고 우리는 무엇을 묵상할 것입니까. 오늘 성경에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는 복된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망녕되이 생각기를 『나도 예수님 시대에 나서 직접 예수님께서 영적하시던 것을 부았으면 내 신덕이 크게 깊어지고 열심도 더 났을 것을……』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한갓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창에 헐어빠진 <나자로>와 한 부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실 때에 지옥에 빠진 부자가 <아브라함> 성조(聖祖)를 보고 간청하기를 『지금 당신 품에 있는 <나자로>를 아직 세상에 살고 있는 내집으로 보내어 저들을 권면케 하소서. 그래서 저들이 회두함으로써 나와같이 불가마에는 안빠지게 하소서』 했을 때 <아브라함>의 말씀이 『지금 저들에게 <나자로><를 보낸다고 해서 회두한다고 단언은 못한다. 왜냐하면 <나자로> 보다 더 명백한 교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있지아니하냐. 교법과 선지자들도 믿지 않는 자들이 <나자로>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였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미 우리는 성경을 가졌고 그 성경을 가졌고 그 성경을 보장해주는 종도들의 목숨을 건 증언이 있었고 또 수많은 성인성녀들과 피로써 증언한 무수한 치명자들이 있거늘 오히려 믿는데 주저하고 행하는데 의심을 가진다면 예수님의 행하신 영적을 직접 봤다해서 더 나아질리 만무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적이 부족해서 「바리서이」들이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하다 믿어야 했다고 알았지만 그 믿는 것을 실행하기가 싫어서 믿지 않은 것입니다. 믿는 것을 실천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선을 행하기를 꺼리는 자요 선을 행하기를 꺼려 행치 않는다면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만 갈 수 있는 나라 영훤하고 행복된 천당에는 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점을 깊이 묵상하고 명심하여 실생활에 반영시키도록 해야겠읍니다.
朴 루수 神父(대구 主敎座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