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기도
緊密(긴밀)한 紐帶(유대)로 서로 協助(협조)하라
현재 난관에 처한 모든 가톨릭신자들이 서로 서로 자기들의 목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발행일1960-09-04 [제244호, 2면]
社會惡(사회악) 模倣(모방)은 禁(금)해야 된다
매일같이 신문지상에서 국민들이 자기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을 비판하면서 공개 해명(解明)을 요구한다. 그런 일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로 정상적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그러한 관습으로 인하여 가톨릭 신자들이 그와 동일한 방법을 자기들의 영성적 도덕적 지도자들 즉 성직계통(聖職階統)에게 응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한 신자들은 기본적 오류에 빠진다.
우리 주교들은 대중이 선출하여 그들의 직책을 맡긴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기 직능을 집행할 수 있도록 성신께서 간선하사 축성한 우리 목자들이다. 그러므로 주교들은 대중 앞에 해명해서는 안된다. 주교는 목자이니 곧 우리 부친이다. 신자들과 그들의 주교 사이에 항상 친밀한 연결을 맺기 위하여 쌍방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司牧을 어버이로
신자들은 실지로 자기들의 주교를 친아버지로 생각하고 그 앞에 나아가기를 부친 앞에 나아감과 같이 해야할 것이다. 주교들은 자기 신들을 전례적 예식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적 대화에서도 맞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相互一致(상호일치)하라
그러나 평신도와 주교들 사이의 일치와 협력은 아직도 더 큰 정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만일 주교의 지도와 교훈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무엇으로써 주교와 일치하겠는가! 「이타리」와 「스페인」과 같은 조용한 가톨릭국가에서도 지도 주교들의 끊임없는 교훈에도 불구하고 만인에게 정상적 인간생활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사회문제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혹은 심지어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도 흑인종과 백인종 사이에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종적 및 국적상 편견이 존재한다. 만인이 천주 앞에 평등하다는 교회의 공개된 교훈에도 불구하고 ㄱ그러한 모든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한 태도는 목자와 양들 사이의 일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성직계통의 교훈을 등한히 하고 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에 관한 연구를 거부하고 있는지!
가톨릭 신자인 교사들, 의사들 및 간호부들, 공장 경영주들, 대학생 그리고 공장과 논에서 중노동을 하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 다같이 커다란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즉 교회의 가르침과 인산생활 각 분야의 진리와 그리스도게서 설교사하 여러 세기를 통하여 실천해 내려오는 「사랑」을 지향한 커다란 경향이다.
敎師는 사랑을
만일 가톨릭 교사가 이런 경향을 갖지 못하면 우리 아동들이 우리가 경영하는 가톨릭학교에서 진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醫師는 倫理를
만일 의사가 의료윤리 문제를 연구하지 않으면 천주의 법을 항상 거스릴 것이다.
雇用主는 착취말라
만일 가톨릭 신자인 공장주가 교회의 사회 교훈 연구의 기회를 얻지 못하면 우리 노동자가 항상 착취의 위협에 있을 것이며 노동자들은 쉽사리 「맑스」주의에 바질 수도 있다.
모든 가톨릭신자들이 자기들 목자들의 가르침을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진실로 『따의 소곰』이 되도록 기구하자.
서로 尊敬을
평신도와 주교 사이의 일치는 평신도 자신들 사이의 일치를 크게 도울 것이다. 우리 자신들 사이이 일치는 또한 애덕으로 상호부조가 됨을 생각하라. 가톨릭 「액숀」단체들은 영도권을 위한 투쟁으로 상호간 졍갱을 절대로 말아야 한다.
도리어 우리는 서로 존경하면서 일치를 위한 하나의 위대한 노력 가운데 우리 전력을 뭉쳐야 한다. 교회의 일치는 교회의 최대 전교 세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