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그 『아홉 사람의 後裔(후예)』가 되지 말자
조찰하여진 자 열 사람이 아니냐 아홉 사람은 어데 있느냐? (누가 17,17)
오늘 복음 성경에 예수께서는 나환자 열 사람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읍니다. 그러나 그 열 사람 중에 다만 한 사람만 자기의 병이 기적적으로 완치된 것을 보고 예수님께 돌아와 큰 소리로 천주님을 찬미하거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으니 이는 외국인 「사마리아」사람이었읍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찰하여 진 자 열 사람이 아니냐? 아홉 사람은 어디있느냐?』하시면서 은혜를 받은 열 사람 중에 다만 한 사람만이 천주님께 영광을 드리며 감사하고 다른 아홉 사람은 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함을 섭섭히 생각하시고 책망하셨읍니다.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는 것은 도의상 요구되는 것이며 따라서 인격도야에 필수한 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천주께서도 원하시고 계십니다. 참으로 세상에는 천주님과 타인으로부터 은혜를 받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지만 진심으로 이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이는 극히 드뭅니다.
얼마전에 내가 잘 아는 어떤 학교에 학생동맹휴교가 일어났읍니다. 학생들의 요구조건을 보면 법적으로나 도의상으로나 천문부당한 조건이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4·19혁명 이후 선풍적 기세로 도처에 만연된 일종 유행법으로 취급하면 그뿐이겠고 또 학생들의 심리를 살펴볼 때에 이해되는 점도 없지 않아 묵과할 수도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동맹휴교의 몇몇 주동자들이 끝까지 학교당국의 선처와 권고에 굽히지 않았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지만 내가 놀란 것은 그들 중 대부분이 학교당국으로부터나 혹은 뜻있는 몇분 선생님들로부터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절대적 총애를 받고 있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정을 털끝만치라도 가졌다면 그러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기야 학교뿐이겠읍니까. 지금 사회일반이 남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고 있읍니다. 우리는 특히 6·25사변 후 선량한 우방친우들의 따뜻한 온정으로 헐벗은 몸을 가리었고 굶주린 배를 채운 적이 그 얼마나 많았읍니까. 그리고 이 땅에 불우한 고아들 나환자들 수재나 화재로 인한 이재민들 중에는 지금도 동정심 많은 특지가들의 품안에 편히 살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를 받은 다음에 감사의 표시는 너무나 미약한 바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의 것을 자기가 받는 것과 같은 태도를 많이 볼 수 있읍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마다 과연 감사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이란 말이 뇌까려집니다.
옛날사람들이 천주님을 중심으로 생각했고 근세사람들이 인간중심으로 생각했다면 현대인들은 자아(自我)를 중심으로 행각한다고 볼 수 있읍니다. 무엇이나 나에게 유익된 것을 찾고 있으며 무엇이나 나의 힘으로 나 때문에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의 정이 깃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베다>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자기의 약점과 무능함을 자각하고 자기의 장점을 즐거이 천주께 돌리는 자라야 참된 감사를 할 줄 아는 자다』하셨읍니다.
과연 자기가 천주께 완전히 종속되어 있음을 모른다면 참된 감사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형여러분! 여러분들은 천주께 남달리 자연적 은혜뿐 아니라 초자연적 은혜도 무수히 받고 계시며 또한 천주님과 피조물과의 종속성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믿고 계신만큼 천주께 감사하는 점도 남달리 치열해야 하겠읍니다.
누가 감히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다 헤아릴 수 있겠읍니까? 찬조사업 구속사업 성화(聖化)사업 뿐만이 아니라 성모님과 성인들의 전달로서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은혜는 실로 무수한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한번 대죄에 떨어지면 추루(醜陋)하기가 문둥병자의 육신보다 더합니다. 그러나 영세성사나 고행성사로서 그 영혼은 마치 오늘 성경에 나창환자가 조찰해짐과 같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조찰해진 영혼은 또다시 영성체로써 기운을 회복하며 건강하게 되도록 예수께서는 오묘히 안배하셨읍니다. 죄의 생활 중에 머물러 있어 성사보기를 멀리하고 있는 신자들, 세속적 체면이나 물질적 욕망에서 「주일미사」를 궐하는 신자들이 오늘 성경에 감사하지 않는 아홉 사람들을 어떻게 보시는지 모르겠읍니다만은 그들 자신들은 바로 이 매은하는 아홉 사람들 중에 섞여 있음을 알아야 하겠읍니다.
구약에 신자들이 감사의 제사를 천주께 드렸고 신약에 예수님이 감사의 제사를 천주께 드리셨으며 그후 세상 마칠 때까지 이 제사를 신자들이 천주께 드리도록 마련하셨읍니다. <바오로> 종도께서 『만사에 있어 너희는 감사할지니…』(텟 전 5,18)하시면서 천주께 감사하기를 권고하셨고 모든 성인들이 또한 감사의 기구를 올리셨읍니다. 어떤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우리가 천주님께 기구를 한다면 감사의 기구 외에 또 무엇을 하겠는가?』
친애하는 교형여러분! 여러분들은 오늘 성경에 실려있는 나환자들보다 더욱 큰 은혜를 천주님께로부터 받으셨읍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감사하지 않는 아홉 사람들의 뒤를 따르지 말고 감사할줄 아는 한 사람의 뒤를 따라서 예수님께로 돌아가십니오. 그리하여 예수님의 발 아래 엎디어 그 은혜를 소리높이 감사하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과 같이 『너의 신덕이 너를 구하였으니 일어나 가라』하시는 구령의 확약을 여러분들에게도 선언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생활을 지금의 모든 신자들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함으로써 지금도 감실 속에 계신 예수께서 『다른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하시는 책망의 소리를 하실 수가 없도록 합시다.
이와같이 모든 신자들이 감사의 생활을 함으로써 다른 외교인들도 감사할 줄 알게 될 것이고 그들이 참된 감사의 생활을 함으로써 천주님께 돌아갈 것이며 그들이 천주께 돌아감으로써 평화 가득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李갑열 神父(金泉 黃金洞本堂 主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