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 교우들께
기구 · 보속 · 성실
鄕愁(향수)에 젖기 앞서
발행일1960-09-04 [제244호, 4면]
오늘의 세대는 실망과 공포에 쌓인 인류가 구원의 손길이 미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시대에다. 특히 우리와 같이 고향을 멀리떠나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이 구원을 기다리는 심정은 다만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한결같이 기다리고 있는 갈증에 물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사실이다.
왜그러냐하면 인류는 소위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두 갈래로 갈라져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보다도 한거름 더나가 인류는 두 갈래로 갈라저 다같이 천주를 모독하는 죄악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라 소위 공산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존엄하신 천주의 존재를 부인하며 인간지상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원죄로 말미암아 타락된 인간본성의 모든 욕구를 채우려는 것을…… 또한 소위 자유진영의 사람들 역시 천주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면서도 그것이다 말만 할뿐이지 실천생활에 있어서는 저 무신 공산주의자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썩은 인간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갖은 추악한 죄악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저 무신 공산주의자들이 한낱 보잘것 없는 인간으로서 존엄하신 천주의 존재와 그 권위를 감히 부인하고 있는 것이 천주께 얼마나 큰 모욕이 되는 것인지는 우리가 같이 아는 바이다.
오늘의 인류는 다같이 천주를 떠나서 『너희는 서로 사라아며 살라』고 하신 천주의 사랑의 계명을 완전히 저버리고 미움의 「도가니」 속에서 서로 미워하며 남에게는 어떠한 해를 끼치든지 나만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같이 멸망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만일 인류가 천주의 사랑의 원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여 살아간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불행한 세상이 되지는 않는다.
저 쏘련이 『공산주의들만이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은 다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남이 못살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들도 말할 수 없는 고통안에 파묻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자유진영에서 진리와 정의에 용감하고 굳세지 못하고 개인향락에 도취되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어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죄악에로만 떨어져 나가고 있다.
만일 그들의 양심에 정말 천주의 진리에 살겠다는 뜻이 있다면 이렇게 불의한 생활을 하겠는가? 이와같이 전체 인류는 죄악과 실망 안에서 헤메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세상에 우리가 무슨 희망을 가질 수가 있겠는가? 어느 강대국의 무력이나 재산이 우리를 오늘의 고통에서 구하지 못할 것이요 또 어느 위대한 정치가의 수완이 우리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남을 멸망케하려는 국가의 세력들은 원자탄 수소탄을 연구하여 우리를 더욱더 공포에 몰아넣고 있으며 자기의 욕심부터 채우려고 하는 정치가들은 정의에 목마르고 헐벗고 굶주린 백성에게 실망을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오늘의 인류가 구원될 수 있는 길이란 오직 천주의 진리를 살려 사랑의 원칙을 재건하는데만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치시려고 「파티마」에 나타나신 성모님이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지금 인류가 버마는 죄악은 너무나 크니 이제 『인류는 이 이상 더 죄악으로써 내 아들의 마음을 촉범하지 말고 죄악의 생활에서 회두하여 기구하고 보속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도 성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아랑곳 없이 죄악을 범하고 있기 때문에 성모님이 예언하신대로 2차대전을 통하여 또 2차대전 후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가. 천주를 져버린 죄악의 생활로서는 우리가 절대로 구월될 수 없는 것이다.
또 최근 이타리 남쪽 「시라꾸사」라는 섬에서 일어난 영적, 즉 성모의 동상에서 눈물이 한없이 흘러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성모님 당신이 인류에게 죄악에서 회두하기를 아무리 권고해도 인류는 듣지 않고 죄만 짓고 있으니 이 인류가 이렇게 나가면 앞으로 무서운 벌을 당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울으실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의 세상 형편을 보고 또 두 영적을 통하여 성모님이 우리에게 하신 경고를 잘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오늘의 세상고통에서 구원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우리 인류가 구원될 수 있는 길이란 죄악에서 회두하여 기구하고 보속함으로 천주의 자비를 우리 위해 끌어내리는 것 뿐이다.
성경말씀대로 죄악의 결과는 죽음이다. 우리가 오늘과 같이 서로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갖은 죄악 안에서 갖은 악한 술책만을 쓴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다같이 세상에서 잘못살고 또 영원히 죽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천주를 받드러모시고 진리와 정의안에서 서로 남을 돕고 사랑하고 협력해 나갈때에만 다같이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기만과 미움과 질투 안에 행복이 있을 수 없고 이와같은 생활이 곧 지옥의 생활인 것이다.
행복의 생활이란 다만 사랑과 겸양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모든 도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랑』 그것뿐이다. 즉 천주를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내봅같이 사랑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진실히 사랑하는 생활을 할 때에 천주의 참 의자(義子)가 될 수 있고 사랑하는 생활을 할 때에 모든 행복을 찾는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원리를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남을 절실히 사랑한다면 우리가 어찌 남에게 티끌만치라도 해를 끼칠 수가 있겠는가. 천주의 이 사랑의 원리가 세상에 재건되어야만 우리는 구원되는 것이니 우리 교우는 이 생활에 철저해야 한다. 죄악 안에서는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죄악 안에는 진실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피난 생활에서 시달리는 우리가 갈망한 평화를 얻기 위하여 는 천주의 자비를 끌어내는 사랑의 생활 진실한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38선 너머 저 서북하늘 아래서 쇠사슬에 얼켜 신음하는 형제자매를 생각할 때에 어찌 감히 죄악의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고향 공산치하에 남겨두고 온 부모형제가 그리울 때에는 기구하고 보속하십시요. 천주의 자비마이 우리를 구할 수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