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古代史(고대사)
「로오마」도 역시
마라톤 코스는 古蹟(고적) 巡禮(순례)
발행일1960-09-04 [제244호, 4면]
이미 8월 25일부터 시작된 제17차 현대 「올림픽」 대회장인 「로오마」는 전세계 그리스도교의 중심인 「바티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관심을 끌기에 족하다. 「올림픽」 자체가 「그리시아」의 역사와 더불어 오랜 기원을 가졌고 「로오마」 자체는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로오마」제국 흥망사의 고적지인 것이다. 「올림픽」은 원래 다신교 이단의 종교행사로 시작되었고 「로오마」는 원래가 그리스도교 박해의 발생지요 중심지였다. 그리스도교 국민중에서도 평생 소원인 「바티깐」 순례의 뜻을 이룩하고 죽는 교우가 흔치 않은데 공산정권이 그리스도교를 박해중인 「철의장막」 안에서 온 천여명의 선수들이 84개국 8천여명의 선수들 가운데 포함되었으나 그들만은 「바티깐」의 「성베드루」대성전의 광장에 가서 <요안 23세> 교황의 강복받기를 거절했다. 또 이번에 사용되는 이 방대한 「올림픽」시설은 독재자 <뭇솔리니>가 착수한 것이었음을 회상할 때 감개가 싶다. 역시 독재자였던 <네로>가 교우들이 주린사자들에게 잡아먹히는 광경을 당시의 「로오마」인들과 구경하며 즐기던 「콜로세움」이 폐허가 된 반면에 어부 <베드루>를 연면(連綿) 계승하는 역대 교황이 거처인 「바티깐」위엄이 어떠한가? 「황제」의 사업과 「천주」의 사업의 대조가 인류역사에 대한 우리 반성을 촉구한다. 현대의 「콜로세움」인 「스타리오 올림피코」는 10만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여기서 지하도로 통하는 「스타디오 마르미」에는 60개의 거대한 인체상 조각이 각종 경기의 순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파란 「티베르」강을 건너 있는 84개국의 국제부락인 「올림픽」마을에서 이곳까지 공병대의 부교가 직선 「코스」를 마련한다. 이 마을에 「축구」경기장인 「팔라체타켈라 스폴트」가 있고 마을 건너편에 보다 큰 「팔라초 델라 스포르트」와 「장미」 수영 「풀」이 있어 수영, 자전차, 경기에 사용되고 검술 경기를 위한 「대회궁전」이 있다. 「욧트」경조(競漕) 「나포리」만 안에서 「보트」와 「카누」 경조(競漕)는 「로오마」의 남방 「라고 알바노」 호수에서 체조는 「카라칼라」 욕장에서 「씨름」은 》바실리카 디 마센치오」에서 거행된다.
「올림픽」의 「크라이막스」인 「마라톤」경주의 출발점과 종착점이 종래는 「메인 스타디움」이었으나 이번은 그런 전례를 깨뜨리고 매우 극적인 「코스」가 마련되었다 즉 9월 10일 새벽 5시 정각에 각국 선수들은 16세기에 「미켈란젤로」가 재건한 「카피톨린」 언덕위에 있는 「피이차델 캄피돌료」광장의 「마르투스 아우렐리우스」의 석상 밑에 일단 집합하여 밑에 있는 출발점까지 큰 침대를 도보로 내려온다. 5시30분에 스사트 「비아 데이 포리임페리알리」를 지나, 「로만 포럼」을 지나, 「팔라린」언덕의 녹지대(綠地帶)를 지나 옛날 「콜로세움」을 지나서 「아스팔트」와 「자갈박이」의 길을 지나 「카리칼라」욕장(浴場)을 지나, 「로오마」시의 남쪽 교외를 지나, 「비아 아피카 안티카」를 지나, 「아피아」구로(舊路)를 달리게 된다. 기원전 312년에 건설된 이 도로는 당시의 시인 <스타씨우스>가 「도로의 여왕」이라고 찬양하였다. 「몬테카보」산정(山頂)으로 올라가는 이단의 종교행렬이 이 길을 걸었고 또 「로오마 군단」의 무보당당한 대열이 군기를 받들고 행진했었다. 바로 이 길목에서 「로오마」시를 탈출하다가 나타나신 오주앞에 제1대 교황 「베드루」 성인이 무릎을 꿇고 「도미네 쿠오 바이스?」라고 빌었던 것이다. 땅거미 질 무렵에 횃불이 「피아차 누마 폼필리오」를 지나 「비알레 델레 테르메디 카라칼라」를 지나 「비아 데이 트리온피」를 지나서 종착점인 「콘스탄틴」개선문에 이르는 연도를 비칠 것이다. 이야말로 바로 그 근방에 있는 「콜로세움」 안에서 무수한 그리스도교 교도들에게 달려드는 굶주린 사자들의 짓는 소리가 하늘을 진동할 당시에 상상이나 했을 것인가? 현재 그리스도교들이 근대식으로 순교중인 「철의 장막」의 장래를 미리 상상케 하고도 남게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