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를 만든 사람] (3) 독일 哲學者(철학자) 후리드리히.벨헤름.니체
발행일1961-06-18 [제283호, 2면]
■ 생애
1844년 10일 「싹소니」의 「뢰켄」에서 출생, 「폴타」 「본」 「라이프찌그」 대학 등의 유명한 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약 1년간 종군한 후 학위를 얻기 위하여 1868년에 「라이프찌그」에 귀환, 25세엥 「바셀」대학의 고전철학(古典哲學) 교수에 임명되었다.
1879년에 신병(身病)으로 부득이 동직을 사임, 대학에서 연금(年金) 1백20「파운드」를 받고 「이태리」 「서서」 등지를 비롯한 수많은 지역을 전전하며 거주했다.
1888년에 발작(發作)하여 정신착란(精神錯亂)을 일으켜 죽을 때까지 수면제로서 안정을 취했다.
1900년 8월25일 「와이말」의 누이집에서 사망했다.
■ 사상
<니체>는 「독일」이 나은 대담한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에 대한 높은 평판은 그의 많은 저서를 통한 아름답고 유창한 「독일」어를 사용한 문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더욱이 「봐그나」와의 친교로서 강력한 영향을 받아 「희랍」 예술의 묘출을 체계 세워놓았다.
1872년에 『비극(悲劇)의 탄생』(The Birth of Tragedy)을 저술하여 「희랍」의 원시 사조(思潮)와 인간의 고유사상(固有思想)을 발표하고 본능적이며 희희락락한 인간의 창조력(創造力)을 제창했다.
<니체>의 중심사상은 개인의 주권이다. 『권력에의 의지(意志)』만이 생활하는데 있어서의 효과적인 위력이며 이 앞에는 모든 것이 굴복한다고 했다.
그는 충격과 자기만족을 가지고 자기의 신념을 고창했다. 그러나 자기방종(自己放縱)의 정당화(正當化)에 대한 그의 이론을 매명(賣名)하는 자들에 대한 <니체> 자신의 신랄한 공격은 그에게는 권력의 방법이 자율(自律)의 방법이라는 것을 충분히 표시하고 있다.
그가 보는 역사상의 영웅은 법이 필요 없고 자기 의지(意志)만을 믿고 세계의 지도(地圖)를 자기네 요구대로 작성케 한 <시사>나 <아렉산델> <나포레온>같은 인물이다.
그의 철학에는 동정(同情)이나 자비(慈悲) 인도주의(人道主義)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는 이러한 것을 공격했고 이의 번식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어떠한 요소보다도 책임이 있다고 하여 종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 비판
그는 그리스도교적 도덕을 퇴패한 세계에 있어서 노예적 심리소유자의 반감(反感)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하고 비열한 마음의 소유자들의 원한적(怨恨的) 질투적(嫉妬的) 증오(憎惡)로부터 자비심을 도출(導出)하여 보잘 것 없는 소인(小人)이 자기자신의 약점과 약함을 도덕이나 덕행으로 돌리고 위대함과 강력, 고상, 존중에 대한 수치(羞恥)를 제거하고 자기들의 비열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고대적(古代的) 덕행의 위대함과 세인이 흠모하는 도덕에 의해서 더럽혀지지 않은 위대함을 악덕(惡德)이라고 허칭(虛稱)하고 있다고 <니체>가 생각한 것도 일정한 세계관, 인간관 및 인생관에 의지하고 있다. 이 지주(支柱)야말로 <니체>의 독특한 것이며 그의 기초적 개념의 전부가 이 지주를 근거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