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케네디>가 「성 스테파노」 대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바로 그같은 시간에 <후루시쵸프>는 <히틀러>의 최후 부대와 「비엔나」에서 싸운 붉은 사병들의 기념비 앞에 머리를 숙인채 5분간 침묵하고 서 있었다. 그 순간에는 아무리 <후루시쵸프>일 망정 일종의 종교적 느낌을 가지는 것같이 보였으나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그가 묵념한 것이라고는 사병들의 시체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천년 묵은 가톨릭 전통을 지닌 「비엔나」라는 가톨릭 도시에서 「미국」의 가톨릭 대통령을 만난 다음 그는 가톨릭국가인 「항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의 상공을 나르면서 아마 「모스코」의 「소비에르 철학 연구원」이 간행하는 「보푸로시 필로소피」라는 공산주의의 학술잡지의 최근호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실린 한 논문의 공저자(共著者) 두 사람에 의하면 공산주의가 「러시아」 백성이 가지는 종교적 신앙을 말살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서 8개조의 자동적 비판을 들었다.
1. 실지적 반종교 선전이 불충분하게 조직되었다.
2. 공산당의 정(正)단원들이 「이데오르기」적으로 교육을 잘 받았으나 그 「이데오르기」가 그 개인을 완전히 점령하지 않았다.
3. 과학이 무신론 문제를 충분히 연구하지 않았다. 실지적인 종교적 「이데오르기」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적다. 「러시아」 민간(民間)에서 일어나는 종교 변절(變節)의 각종 양상연구에 흥미를 가지는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에대한 과학적 연구를 떠맡으려는 자가 하나도 없다.
4. 현재 대중 선전용의 무신론 소책자 「팜프레트」가 건전한 기초를 충분히 가지지 않았다.
5. 새로 채용된 무신론 선전의 활동법이 「러시아」 민간에 대하여 전연 부적당하다.
6. 무신론 선전의 개인적 노력이 거의 없다.
7. 무신론 선전이 무신론자를 통하여 실천된다는 이 사실이 벌써 다수의 종교적 인민을 접근 못하게 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된다.
8. 무신론에 관한 이 과학적 탐구가 극히 모호하기 때문에 충분한 납득력(納得力)이 없다.
이상의 8개 조항은 「러시아」에서 선전되는 과학적 무신론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 명백하다. 그 공산주의 평론가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무신론의 과학적 공작이 사실상 서툴게 조직되었고 이 과업의 수행에 있어서 충분한 근면이 없으므로 교회가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인민을 자기 종교편으로 끌어가게 된다』 이 두 사람의 공산주의자 평론가는 종교활동을 위하여 가장 좋은 장소가 종교가 농민 심리에 깊이 뿌리박힌 「코르호스」(大集團農場)임을 지적하였다. 그들이 가르대 『이 농촌에는 고대의 보수적 생활과 신앙의 전통적 세력이 아직도 살아있다』
이 두 공산주의자 필자들이 수집한 「앙케트」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종교 신앙인의 대부분이 50세 이상의 인민이요 중년층에는 보다 적고 청년층에는 그보다 더 적다 좌우간 그 청년층을 돌아오게 하려는 교회의 강력한 활동이 시도되고 있다. 이 평론이 말하기를 『신자들의 청년층에 대한 활동이 어느 정도의 결과를 걷우었다. 다수의 청년들이 신학교에 입학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두 사람의 평론가는 종교신앙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충분한 해답을 끝끝내 내릴 수 없다고 단념하는 기색으로 말한다. 그들은 교회가 종교 선전의 형식을 변경하였다고 말한다.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나 「라고르스크」 「키에프」 「폿차이브」 「푸스코브」와 같이 인민이 숭경하는 극히 유명한 수도원들의 상당한 수가 극히 활발하게 되었다』 이 공산주의자 평론가가 말하기를 『수도사들이 멀리 격리되었다는 바로 이 이유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으로 오라는 그들의 선전이 호감을 샀다』라고 한다. 그 수사들은 신자들과 극히 광범한 통신교환이 있어 자기 수도원으로 순례오기를 격려한다.
한 번 그 수도원에 가면 청년들을 종교에 대한 열심으로 가득 채우기 위하여 「무용의 밤」 혹은 「합창」과 같은 여러 가지 문화적 형식으로 커다란 종교적 활동과 선전이 전개된다.
그러므로 여러 세기 이래 수도원들이 전 「구라파」에서 그리하였고 언제나 신앙_ __임과 __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수도원들이 신앙을 인민 가운데 방사(放射)하는데 굉장한 일을 한다.
「모스코」 한림원에 속하는 공산주의 평론잡지 「보프로시 필로소피」가 내린 이 모든 관찰은 그리스도교도들을 비밀히 조사한 것이 아닌 만큼 모든 성명에 객관성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있다. 붉은 혁명이래 「러시아」의 반종교 선전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아직도 살아있으므로 우리 그리스도 신도는 자랑삼을 수 있을 것이다. 「비엔나」에서의 <후루시쵸프>처럼, 인류의 심중에 있는 어느 알 수 없는 영속하는 「영원」을 묵념하면서 머리를 숙일 때 어떠한 내적 감각(內的感覺)의 촉감(觸感)이 있는 것 같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주와 영혼을 부인하는 인민보다는 천주의 전능과 영혼의 영생을 믿고 천주를 흠숭하는 인민이 「로시아」 안에 더 많을 것이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