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강변의 구름없이 복잡한 이 나라의 수도 「카이로」는 배타적인 「모스렘」(회교)으로부터 차츰 멀어지고 있다. 「아랍」 통일공화국 「에집트」와 「씨리아」 그리고 수도 「카이로」에는 역사에 남을 수많은 「그리스도」교도가 있다. 「에집트」인구 2천4백만중 6명에 한명꼴로 그리스도교인으로 추산되어 있고 「씨리아」인구 4백만중에는 이보다는 적은 수의 교인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나 그러나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상당한 수에 달한 것으로 믿어진다.
「카이로」에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수란 추산하기에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수도를 방문하는 모든 방문객들은 그리스도교 공물들이 시민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되어있는가를 쉬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카이로」와 교외 「헤리포리스」에 있는 모든 교회에서는 일요일마다 백28대의 「미사」가 올려지고 있다. 「카이로」에는 「올토독스」(희랍정교) 교회가 상당한 수에 달하며 「프로테스탄트」 교파로는 주로 「안그리캔」(영국성공회)와 「에봔제리칼」(복음교파)이 대부분이다.
성 <바오로>의 회두(回頭) 전부터 벌써 「씨리아」의 수도 「다마스카스」에는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있었다.
오늘날 「에집트」와 「씨리아」에 있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기관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그리스도교의 것이다.
「에집트」에 있는 「콥트」파 그리스도교들은 「알렉산드리아」의 성 <말구> 「성사」 사도직 「전교」에 그들 계통을 결부시키고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독특한 「콥트」나 「아렉싼드린」 기도서를 가지고 있다.
15세기 이후 대부분의 「콥트」파가 교황청으로부터 분리하였으나 10만에 가까운 「콥트」파의 한 교의가 그들 자신의 교장(敎長) 밑에서 교황청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에집트」 내의 가톨릭신자들은 통합하는 데 있어서 교회의 다양성과 함축성을 나타내고 있다.
단지 「카이로」에서만도 「콥트」, 「알매니아,」 「챨딘」, 「멜키테」, 「라띤」, 「마로니떼」, 「씨리안」 등의 일곱가지 가톨릭 전례(典禮) 교회가 있고 한개의 「예수회」 안에도 「콥트」, 「멜키테」, 「라띤」의 세 전례가 있다.
3종의 가톨릭 정기간행물이 2종은 「아랍」어로 나머지 1종이 「불란서」어로 「카이로」에서 발행되고 있다. 즉 월간 평론지 「하크루나」(우리세계)와 2개월에 한번 나오는 「알 싸라」(지식)과 주간지 「르벳싸겔」(멧쎈쟈) 등이다.
이외의 크고 작은 출판물을 비롯한 모든 간행물은 정부검열을 받도록 되어 있다.
1956년에 정부는 가톨릭 주간지 「르 레용 드 에집트」를 폐간하였다. 「아랍」 통일공화국은 교황청과의 외교관계를 지속하고 있으며 <씰비오 오리> 대주교가 교황청 대사대리로 이곳에 파견되어 있다.
공화국의 잠정 법령에는 종교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고 종족, 혈통, 언어, 종교, 주의의 구별 없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보증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 자신과 자녀들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는 것 같이 보인다.
정부의 이와같은 법령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인 면에서 공세적이고 제한적인 「모스렘」 교도로부터 보이지 않은 압력이 가하여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정책이 <낫쎌> 대통령의 개인적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할찌라도 그의 각료들은 그러한 압력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2년 내지 3년이면 뚜렷하게 이런 면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