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아 나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누가 7,15)
예수께서는 어떤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부활시키셨읍니다. 다 큰 아들이 죽었읍니다. 늙지도 않은 희망 많은 청년이 죽었읍니다. 더구나 그는 과부의 외아들이었읍니다. 남편을 잃고 외로운 신세에 있는 그 과부의 유일한 희망이요 위로인 그나마 하나뿐인 아들이 죽었으니 이 가련한 과부의 애석해하는 심정을 누구나 짐작 못하겠읍니까? 그래서 그는 슬피 통곡한 것입니다.
친해하는 교형여러분. 특히 청년학도 여러분. 죽은 이가 청년이기에 또한 과부의 외아들이기에 그의 죽음이 그와같이 애석하다면 이것은 그 옛날 「나임」의 과부 이상으로 믿고 애끼고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어머니가 계시니 이는 바로 모이신 성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젊은 사람들을 간택하사 종도 위에 올리시고 그들에게 교회를 맡기셨읍니다. 그후로 성교회에서는 젊은 학도들의 교육에 특히 힘써왔읍니다. 지금도 어느 본당에든지 모든 시설과 교육이 젊은 청년남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사회면으로 본 우리 교회에 중심이요 기둥이 되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같이 믿고 사랑하는 청년학도들중에는 많은 이가 병들고 또 죽어가고 있읍니다. 죄중에 살고 불량청소년이 거리에서 헤메는 교우들을 바라보시는 자모이신 성교회의 근심걱정은 「나임」의 과부의 슬픔의 유가아닌 것입니다.
청년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얼굴이나 의복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결한 덕이 그 마음과 육신에 머물러 있을 때에 참된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청년은 천진난만하며 무염정조(無染貞操)하고 순박한 마음씨를 가져야만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교황 <분도>께서는 인생에 있어서 정조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하셨읍니다. 그러나 지금 사회에 있어서는 어떻습니까? 정조를 가장 옹호하고 귀중히 여겨야할 청년남녀들은 헌신짝과 같이 정조를 저버리고 짓밟고 있지 않습니까? 청년과 정조란 말보다 청년과 타락이란 말이 더 잘 통용되는 사회가 되고 말았읍니다. 이 사회의 청년들은 죽었읍니다. 향기없는 꽃이 되었읍니다.
청년은 씩씩합니다. 그런 거리의 깡패들은 표준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진, 선, 미에 대한 깨긋한 동경심을 품고 살아나갈 때에 그 청년은 씩씩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청년기에는 육신도 발달하지만 그의 정신도 발달하여 진, 선, 미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심을 품게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학자들이나 성인들이 청년기에 위대한 포부를 그리고 그것을 이상으로 삼고 향상 노력한 결과 그와 같은 의의있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의의 있는 인생이라든지 신성하고 숭고한 이상과 희망에 사로잡힐 때는 바로 이 청년기입니다. 참된 청년학도라면 이런 이상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 사는 청년 중에 과연 몇 사람이나 이런 숭고한 이상에 파뭍혀 그 실현에 몰두하고 있는가? 진리를 탐구하는 학도들은 과연 진리를 위해서 살고 진리를 위해서 죽는다는 이념 아래서 연구생활에 푹 젖고 있는가? 저속한 정욕의 만족 외에 다른 또하나의 욕망이 있다면 돈을 찾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이상으로 하고 또 일삼아서 하는 일이 정당치 못한 동맹파업 아니면 동맹휴교일 것입니다.
이쯤되고 보면 청년의 청년다움이 없어졌고 청년은 죽은 것입니다. 인생문제나 양심문제에 대해서 심각히 생각하고 고민이 있다면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 나는 그립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뜻있는 청년학도들은 4월 혁명으로 제2공화국의 터전을 닦았고 신생활운동으로 이 나라 민생문제의 일부나마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 혁명이나 그 신생활운동이 어떤 형식이나 용모의 변함만으로서는 완전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하는 일에 완전한 개혁은 그의 정신개혁에서 시작해야합니다. 즉 위에 말한 죽은 이들을 되살리기 전에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가톨릭청년학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 앞에는 사람들의 정신을 개혁하는 일이 놓여있읍니다. 즉 죽은 청년들을 되살리는 일은 바로 여러분들의 과업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이미 진, 선, 미의 올바른 개념과 그 존재 위치를 알고계시며 씩씩하고 아름답게 사는 일을 알고 계시며 남에게도 가르칠 수 있고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 있는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넓고 깊은 교리지식으로 재무장하시고 아름답고 정결한 생활로써 병들고 죽어있는 사람들 가운데로 침투하십시오. 또한 거기서 항구히 싸워나가십시오. 사람들의 정신은 되살아날 것입니다.
죽어있는 자녀들을 보시는 성교회는 그 모성적 사랑을 억제치 못하여 「미사」 성제와 성지가들과 수도자들의 기구와 희생을 통하여 천주님께 울부짖고 계십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울어주십시오. 즉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미사」참례 영성체, 기구, 희생 등을 교회와 함께 천주님께 바쳐주십시오. 우리들이 이와같이 슬피 우는 것을 보시는 예수께서는 그 옛날과 같이 『청년들아 일어나라』 하시며 병들고 죽어있는 이 시대의 청년학도들을 일깨워주실 것입니다. 그때에 죽음에서 깨어난 젊은 자녀들을 맞이하시는 성교회의 기쁨은 말할 수 없거니와 이 사회의 혁명은 그때에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갑열 神父 (金泉黃金洞本堂 主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