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71) 釜山(부산) 西大新(서대신)본당
교리강습 洞別巡廻로
19地區長이 큰 힘·禁酒會도 있고
住宅地 깊숙히 서 있는 聖殿
발행일1961-06-18 [제283호, 3면]
부산은 항구도시라 생활주변의 입지조건들이 항구적(港口的) 풍치(風致)가 풍기긴 하지만 지리적(地理的)인 조건이 좋지 못해 도시의 건물과 주택들이 집결되어 있지를 않고 길게 산재해 있는 관계로 주택지로 선지(選地)한다면 일리일해(一利一害)라 선듯 이곳이라고 지적할 곳이 없지만 그 중에 손꼽을 만한 곳이 있따면 서대신동(西大神洞)일 것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물과 공기가 맑다. 항구치고 왠만한 곳은 모두 생산공장이 시설되어 있지만 이곳만은 순전히 주택가라 조용한 것이 특징이기도 한 것이다. 부산에서 돈냥께나 가진 사람들은 다 이곳에서 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역을 시발점으로 서편 부산의 종점인 운동장(運動場)에서 내려 운동장 입구에서 왼편쪽으로 주택가를 접어들면 주택들 사이에 큰 건물 하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서대신동 천주교회다.
이곳에 성당이 마련된 지는 그리 오래지 않지만 부산에서 셋째로 많은 교우를 가진 대성당이다.
1954년에 초량(草梁)에 계시던 메리놀회 관구장이며 미국 신부인 <요셉> 권신부님이 적산가옥을 매수하여 성당을 착공하고 그 이듬해 2월 초하룻날 완공하고 지금외국에 유학 중인 <바오로> 정(鄭이채) 신부를 당시 보좌로 보임하고 본격적인 전교를 전개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메리놀회」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며 「메리놀회」 신부님들은 모두 이곳을 거처서 래왕했다. 그 후 변신부, 곽신부, 임신부가 차례로 부임하여 본당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했는데 그 중에서도 변신부님은 눈부신활동을 불철주야로 계속하여 당시 불과 4백여 명에 지나지 않던 것을 6천여 명에 달하는 많은 영세자를 냈다. 그 한 예로서 1957년 58년 두 해 동안에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영세자를 냈다는 사실이다. 그 후 지금 신선동(新仙洞) 본당주임이신 <요셉> 이(李炳萬) 신부님이 보좌로 부임하셨고 지금은 <방지거>임 신부님이 본당주임 신부이며 석(石)신부님이 보좌를 하고 있다. 하단·신촌·감천 태극도 등 대신동은 변두리 지구라 많은 공소를 두고 있는데 감천공소는 이번에 다시 재신축하였고 신촌공소는 본당으로 승격하여 <제르바시오> 곽(郭)신부님이 부임하실 것이라고 한다. 본당산하 활동 기관으로는 청년회·부인회·여자청년회·학생회·성심회·매괴회·전교회·연도회·금주회(禁酒會) 등이 조직되어 전교활동에 많은 보좌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도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지구(地區)회장들이라고 하는데 지난 1961년 5월1일 지구를 개편(改編)강화하여 지금은 19지구에 55개반이 설정되어 있어 각종 전교활동에 적극적인 협조는 물론 판공성사 책임권면키로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임기는 1년으로 하되 교대제(交代制)로 하여 누구든지 지도력과 협조정신을 앙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초대 회장엔 <바오로> 엄창섭씨 2대엔 <아오스딩> 김병수 교수 이번 신임된 횢아엔 부대(釜大) 대학원장인 <베드루> 정일천씨이다.
그리고 이곳 본당의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면 교리반이다. 어느 본당 보다도 많은 시간을 설치하고 있는데 그 중에도 동별(洞別)집단 교리반을 설치하여 여 전교회장을 순례식으로 담당케 하는 한편 집을 비울 수 없는 가정 주부들에게 전교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