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歐羅巴(구라파) 기행 - 본대로 느낀대로]
발행일1960-09-18 [제246호, 4면]
머릿말
떠날때는 부지런히 써서 보내고 나의 시간도 좀 장만해야 하느니 몇번이고 다집했던 것이 막상 짐을 풀기가 바쁘게 또 꾸려야 하고 이르는 곳마다 낯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데다가 그래도 국제적인 예모를 차리자니 초저녁만 되면 마치 소풍 다녀온 날 마냥 고단하기 그지 없다.
이런 며누리 사정을 시어른들이야 알랴마는 이 기행문 가운데서 허술하고 이어지지 않는 곳곳에서 나의 고충은 여지없이 푸여질 것으로 생각된다.
아! 도나우강
신문만이 연중휴가 하루 제대로 없고 그 종사자는 초라한 살림살이를 해야하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또 나도 그런 친구만 만나야 하는 것인가 한다.
나의 구라파 여행을 수고해주는 L씨와 의론끝에 이곳서 기동차로 두시간 깊숙히 들어선 산골 「리이드」시(인구2만) 가톨릭 주간신문사의 과객노릇을 하게 디었다.
인구 2만 되는데서 「타블로이드」 8면짜리 주간신문 2만5천부를 박고 그외에 지방판을 더 박고 있다.
물론 산골 두메까지 신문만은 철저히 배달되고 있다.
「오토매이숀」의 世界와 우리
소위 「리노타이프」라는 것이 우리 문선(文選) 과정인데 「타이프라이타」치기보다는 조금 늘이긴 하지만 거의 같은 속도로 원고 보고 치는대로 새로 활자가 지어지면서 문선된다. 식자에선 교정을 거치는대로 반듯한 소조(小組)를 묶어내고 조판은 「타불로이드」 한면짜는데 5분 그럭저럭 문선에서 조판까지 한 20분 잡으면 되고 지형은 증기(蒸氣) 압축기에 들어간지 2분이면 끝난다.
연판은 별다른 것 없다. 그러나 지형이 완전하니까 연판에서 손질하는 일은 없는듯 하다.
「타이프」로 문선하는 것 만은 암만해도 우리처럼 한문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으로서는 그림의 떡 같기만 하다.
이런데서 우리는 우리문화 전반에 걸친 반성을 해볼만 하다.
아직은 물질문명의 과잉(過剩)을 생각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무엇이든지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가령 담배 한 갑 사는데도 돔만 집어넣고 꺼내가고 전화는 물론 기차표 사는데도 돈만 넣고 집어내기가 마련. 사진 한장 찍는데도 돈만 넣고 기계 앞에 섰다가 몇분만에 제 손으로 찾아가게 되어있는 이따위 「오토메이숀」에 별로 신기할 것은 없다.
다 필요에 따라 그리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출판사정만은 새각도에서 검토되어야 하고 이 방면에 재빠른 서울의 몇몇 상인들만을 배불리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각성해야 하지 않을까?
지루하게 기계이야기만 늘어놓았다.
한국 노래에 춤까지 추워?
시골 양반들이 느릿느릿한 것은 이곳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녁 초대라고 2·3일 앞서 통지해놓고 막상 가보면 술잔만 있을뿐 시시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는 밤을 세우자느니 한국노래에 춤가지 춤라는데는 진땀을 빼기보다 아주 질색할 지경이다.
이곳 「리이드」에서는 약은 수를 썼다. 초대에 거절할 수는 없고 초대 일을 이쪽에서 무기한 연기해 버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老益勉學 사치는 語不成
그러나 이 사람들은 나이가 더할수록 더 알려고 하고 더 읽을려고 하는데는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좀 비약이지만 서울거리에서 보는 아낙네들의 그런 사치란 이곳 어느 도시에서도 거리나 식당에서도 볼 수 없엇다. 한 열흘간 기식하면 이곳 신문 편집자 F박사의 부인은 「윈」대학에서 역시 언어학 학위(박사)를 가진 분이지만 값싼 찬거리를 사느라고 꼭 자전거로 2「키로」를 달리기가 일수이고 영화는 지난 부활 때 한번 갔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物質文明發達 宗敎에의 無關心
90% 이상 가톨릭 신자인 「오지리」의 「윈」 같은 도시에서는 실지로 주일을 지키는 교우는 13% 미만이다.
소비(消費)를 자극하고 또 철저히 소비해야만 하는 도시생활의 이면은 나의 붓으로 그리기에 흉할 뿐이다. 여기 교회는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하는데서부터 문제를 이르킬만 한 것으로 생각된다.
도나우강 기슭에서 먹고 자기를 한 열흘, 이제 나의 본과제인 가톨릭 「액숀」의 양상에 대한 나대로의 관찰과 실습을 겸한 공부를 해나갈 셈이다. 「린츠」시에서 자동차로 「첵코슬로바키아」 국경까지 구경하고 독일 땅으로 들어선 「파사우」에서 시작하여 2·3처 수도원을 방문하기까지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구비쳐 흐르는 「도나우」 핸들을 잡고 졸고 있는 듯한 <로이트너> 양에게 <카를> 5세적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무 의미 없었을 뿐이다. 허나 「오지리」 수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나오고 또 우리 한국인사들이 이 강줄기를 오르내리게 된데 비웃지 못할 것이 있지 않겠느냐. 아니 할 말이 있지 않겠느냐 아! 「도나우」 역사만이 너의 것은 아니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