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民俗(민속)과 가톨릭시즘
秋夕祭祀(추석제사)와 追思已亡(추사이망)
발행일1960-09-25 [제247호, 2면]
「추석」이 우리 실생활상 「설」에 못지 않게 큰 명절임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기후가 1녀중에서 제일 고마운데다가 각종 열매와 오곡이 결실하여 앞으로 1년간 먹을 것이 자만되니 고마운 마음을 거의 본능적으로 주체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농업국민의 생리다. 그러나 감사의 대상인 「창조주」를 올바로 모르기 때문에 그 행사가 이단적이나 민속적 추수감사절임이 틀림없고 그 기원이 종교적임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이날 멀리 있는 아들들 아우들이 종가로 돌아온다. 온집안이 한데 모이니 돌아가신 부모에게 대한 추모(追慕)도 더욱 깊어진다. 이런 효심(孝心)이 제사로써 발로된다. 그러나 영혼 존재를 확신 못하고 영혼의 가는 곳을 모르니까 그 제사는 깨끗해야 사사여생(事死如生)의 정도에 그치고 만다. 그러면서도 그런 제사라도 아니 지내고는 그저 넘길 수 없는 심리는 신자들의 추사이망(追思已亡)의 심리와 공통한다. 따라서 추석날이야말로 우리민족상 전통적 추사이망날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정신이 민속상 미풍양속(美風良俗)과 일치할 때 민족문화의 그리스도교화가 실현될 것이다. 이 두가지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데서 전교길을 보다 넓힐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기성신자라도 민족성을 떠날 수 없는 한 신앙과 민족생활이 일치되어야만 자기 민족사회에 어울려 자기 마음도 편할 것이다. 이날 아침 「미사」가 신자들 집집의 망자들을 위해 봉헌되는 본당도 많다. 그러나 신자들이 자기 가정에서 이날 적당한 시간에 전가족이 모여서 추사이망날과 같이 연도를 바치고들 있는지는 의문이다. 순전히 모든 남들의 연령만을 위하는 수도회도 있는데 하물며 자기 조상을 위해 추사이망을 한번 더 보탬이 더욱 좋지 않을가? 만일 그렇게 되면 미신자인 대소가 또는 가까운 친척들이 한데 모이는 이런 명절때가 진정한 그리스도교와 실지로 접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 친히 공경하셨고 또 우리에게 공경하라고 명하신 예수의 모친 「마리아」 공경을 「여신숭배」라고까지 훼방하는 교파교인(敎派敎人)들이 연옥 존재와 보속 도리를 거부함으로써 자기집 조상까지 소홀히 함을 보고 그리스도교를 멸시하는 외인들도 이런 기회에 진정한 그리스도교를 재인식할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1939년 11월 8일에 반포된 민속에 관련된 회칙(朱在用 神父 著 先儒의 天主思想과 祭祀問題 序文參照)을 근본적으로 살리기 위하여 정식 례서(禮書)를 적어도 「사례편람」(四禮便覽)만이라도 연구하는 동시에 현행민속을 지방적으로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농업국민인 우리 겨레에게 추수감사절과 추사이망과 친척 화목과 가정단락(단락(團樂)과 중추명월(仲秋明月)을 통한 자연미 감상(鑑賞)과 휴양을 겹쳐서 겸한 이 큰 명절의 가정적 사회적 민속상 행사를 어떻게 그리스도교화 하느냐는 문제는 더욱 시급하다. 한거름 나아가서 시골 본당에서 우리 신자들도 농악이 있을 것이며 그때에 먹이는 사설의 내용을 그리스도교화할 것이다. 그러면 외인들이 민속적으로 공통한 형식을 통해 우리와 한데 어울릴 수 있으니 이런 기회에 그리스도교감화에 자연적으로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이만큼 중대한 일은 아직도 등한히 함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추석의 유래를 살피건데 멀리 「신라」 3대 「유리」(儒理)왕(西紀九年頃)의 시대까지 치올라간다. 당시 7월 보름날부터 왕녀 둘이 각각 부녀들을 거느리고 한달동안 길쌈내기를 계속하여 8월 보름날밤에 진편에서 잔치를 베풀어 이긴 편을 대접하는데 서로 음악과 무용을 즐기던 「가위」 노리로부터 시작되었다. 또 남자들은 활쏘기 내기를 하여 왕으로부터 말과 베(布)를 상으로 탔다. 또한 그날은 발해(渤海)국과 싸워 이긴 전승기념일도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행사의 성대햇으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신라」문화는 「삼한」시대에 이미 5월 파종(破腫) 후 「수뤼」(端午)날에 풍년기원제를 지냈고 8월 「가위」(秋夕)날에 추수감사제를 지냈던 유풍을 계승한 것이었다. 그 당시의 민속적 신앙은 막연한 것이었고 또 이단적 요소가 섞였을 지언정 자연보다 더 초월한 『그 무엇』이 있음을 어렴풋이라도 느꼈기에 그들이 기원도 했고 감사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동기로부터 시작된 이처럼 오랜 전통적 민속 특히 조상 추모와 관련왼 이 추석의 뜻을 바로잡을 때 우리 그리스도교만이 겨레의 자손으로서 가장 큰 효성을 먼 조상들에게 실지로 바치게 되는 것이다. 가례(家禮)상으로 길례(吉禮)가 되는 추석다례(茶禮)를 대신할 가톨릭 추석연도규식을 어떻게 해야 가장 아름답고 인정에 맞갑고 교리에 어긋남이 없이 전통적 민속을 현대적으로 살릴 것인지? <과르디니> 몽시뇰은 『전례는 천주 앞의 연극이라』고 말했다. 민속상 가례도 일종의 연극성을 띤 생활 예술이다. 특히 커가는 아이들에게 인상적이라야 한다. 여기에 모두 유의하면 자연발생적으로 또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나 만일 누가 의식적으로 연구지도하면 더욱 바로 또 빨리 보편적인 표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