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編輯者註) 이 글은 제4대 전주교구장이신 <베드루 요셉> 한(韓공烈) 주교께서 고구장으로 취임하여 전주교구 내 전 성직자, 수도자 및 교우 여러분께 드리는 주교님의 취임사 겸 사목교서입니다.
전북교구 여러분에게 고함
공경하올 우리 교구 신부님들과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와 건강을 빕니다.
지난 1월3일자로 <요안> 23세 교황성하께옵서 소생을 전북교구장으로 임명하신다는 칙서(Bulle)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읍니다.
『사갈랏소(Sagalaso) 명의(名儀) 주교인 동시에 전주 대목(代牧)교구장으로 간선된 나의 친애하는 아들, 한국인 사제 <베드루> 한공렬에게 주님의 평화와 교황강복을 내리노라. 인자하신 천주님의 특별한 은혜와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애쓴 보람 있어 다행이도 해마다 늘어가는 전주 천주교회의 많은 양떼들이 이제는 전북사회에 깊은 뿌리를 박음은 참말로 많은 위로와 기쁨에 넘치노라. 그러나 <발도로메오> 김주교님의 선종(1960년 4월30일)으로 인하여 오랜동안 그 교구장의 자리가 비어 있는 이 교구의 사정을 보살필진대, 온세상 성교회를 다스릴 책임을 진 나로서는 인간사(人間事)에 앞서 그리스도의 이 기름진 전주농장을 정성껏 가꾸어 줄 새 교구장을 임명할 필요를 느끼어, 이에 포교성성(布敎聖省)의 책임을 진 우리 존경하올 추기경들의 의견을 따라 그대를 전주 교구장으로 임명하여 교구를 통치하고 관리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권한과 영예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대의 직위가 요구하는 모든 의무를 맡기노라. 이 중책을 그대가 맞갖게 보도록 「삐시디아」(Pisidia)에 있는 「사갈랏소」(Sagalaso) 명의 주교 위에 올리노라……(中略)
친애하는 아들아, 그대는 주교의 반열(班列)에 올라, 그대의 겨_ 가운데에서도 알천_ 다스리고자 이를 맡기나니, 그대의 덕이 높이 뛰어나 그대의 뒤를 따르기로 마련된 양떼가 오직 그대의 발자취를 따르매, 아무 위험 없이 영생의 길에 나아가게 되기를 천주님께 간구하노라』
이 칙서가 나에게 전달된 때는 지난 1월 하순이요, 곳은 「프랑스」의 서울 「빠리」 한 구석에 있는 「성 술삐스회」의 수련원(Solitude)이었읍니다. 본래 나는 서울 대신학교(가톨릭대학 신학부)의 책임자로서 우리 본방인의 손으로 경영되는 한국의 오직 하나인 신학교가 제구실을 맞갖게 하여, 이 곳에서 길러낸 우리 성직자들이 훌륭한 목자가 되기를 바랐으나 우선 내덕이 없고 아는 바 부족함을 늘 유감으로 여기던 차에 이를 현찬하신 지공하올 노 주교 각하의 주선하심으로써, 신학교 책임자로서의 필요한 덕과 학을 되도록 보충하기 위하여, 신학교 경영의 3백년 역사를 가진 「술삐스회」의 수련원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 뜻하지도 않았던 주님의 섭리에 오직 순종의 길밖에 없어 사제 양성에 바치려던 나의 여생은 이제 우리 전북교구의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바쳐야만 되었읍니다. 교황성하의 칙서에 나의 사명이 똑똑히 들어나 있읍니다.
① 『기름진 주님의 농장을』……
나는 우리 전북교구의 지나간 자취를 고요히 들여다 봅니다. 천주님의 특별한 은혜와 우리 조상들이 흘린 피로써 기름진 우리 고장은 한국 천주교회사의 가장 훌륭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읍니다. 전라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것은 이승훈(李承薰)님이 북경으로부터 천주교회 서적을 가지고 귀국하여 이덕조(李德祚) 권일신(權日身) 동지들에게 전달하여 그들을 입교케 한 1784년이었읍니다. 달리 말하자면, 권일신의 제자로서 전주 지방에 살던 유항검(柳恒儉)님이 <아오스딩>의 이름으로, 진산(珍山)에 살던 진사(進士) 윤지충(尹持忠)님이, 서울에서 권일신님의 문하 김범우(金範禹=도마)님의 권고로 <바오로>의 이름으로 영세입교하여, 우리 고장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듬해부터 박해를 당하여 서울에서는 김범우님이 첫 희생자가 되고 호남에서는 신주(神主)를 모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1791년 11월13일 윤지충(바오로)님과 권상연(權尙然=야고버)님이 전주감옥에서 순교하였읍니다. 이때 뿌린 순교자의 피의 씨는 싹이 터서, 1795년에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님이 입국하여 서울을 비롯한 전라도의 전주 고산(高山) 등의 땅을 전도할 무렵, 호남에 신자의 수가 날로 늘었던 것입니다.
신유(1801) 대 박해가 일어나자 서울에서 주신부님을 위시하여 이름있는 교우들이 모두 순교하는 때를 같이하여, 전라도에서도 유항검(柳恒儉=아오스딩) 유종선(柳宗善=요안)과 한국의 성녀 <세시리아>라 일컬을 수 있는 이(李) <누갈다>님들을 비롯한 많은 교우들이 전주·여산·김제·고산·무장 등지에서 순교하였으며 그 후 정해(1827), 기해(1839), 병인(1866)의 박해시에도 많은 치명자가 피로써 전주의 땅을 적시었읍니다. 전주 승암산(僧岩山) 마루터기와 완주군 비봉면 천호(天呼)에 있는 이분들의 무덤곁에 세워진 십자 비석과 전주 「숲정이」 치명터에서 있는 기념비는 여러분의 정성어린 손길을 엿보여주고 있읍니다. 1845년 10월12일 우리 겨레의 첫 사제 김 <안드레아> 신부님이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한국교구 3대 감목으로 임명된 고(Ferreol) 주교님과 안(Daveluy)신부님을 모시고 전라도 황산포(現, 江景)에 상륙하셨읍니다. 이 상륙지점 거의 곁에 있는 나바위(現, 華山)성당 내에 1955년 10월 맞갖은 기념비를 여러분은 또한 알뜰하게 세워 놓았읍니다.
「가따꿈바」에서 나온(1867-1870) 한국 성교회는 신교의 자유(1882)를 얻어 많은 추수를 거두기 시작하여 놀랄만한 발전을 보이매 교황성청에서는 1911년 한국에 교구 하나를 증설하여, 충청도 강원도 이북 지구를 서울 교구로, 호남 영남의 남방 지구를 신설된 대구교구에서 관할(管轄)하게 됨에 따라 전라도는 이에 속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931년 전라도를 방인자치교구로 만들 준비로 <스테파노> 김양홍(金洋洪)신부님이 전라남북도의 초대 감목대리로 임명되어 전주에 주재하게 되었고, 같은해 6월18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국보적 가치가 있는 전동성당의 축성식이 거행되어 장차 한국인 주교의 주교좌 성당이 될 희망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빠리외망전교회보, 1931년 9월호 pp 654-656). 1937년 4월30일 성청으로부터 전주교구와 광주교구의 설정과 아울러 전주교구장에 김양홍 신부 광주교구장에 골롬반회원 <막폴린> 신부의 임명이 발표되어, 전주교구는 우리나라에 있어 최초의 방인자치교구의 영예를 얻은 것입니다. 1941년 11월21일에 주재용 신부님이 2대, 1947년 6월30일 김현배 신부님이 3대 교구장에 임명되었다가, 1957년 1월21일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전주교구를 지목구(知牧區)에서 대목구(代牧區)로 승격시키는 동시에 김현배 교구장을 <아그비아> 주교의 명의로 주교로 임명하신다는 칙령에 의하여 김주교님이 동년 5월21일에 주교로 성성되셨던 것입니다.
현 교황 성하의 말씀대로 우리 교구는 우리 조상 순교자들과 여러 어른들께서 그 피와 땀으로써 곱게 다듬어 놓은 기름진 그리스도의 농장입니다.
② 『인간사(人間事)에 앞서』……
이는 현 교황성하께옵서 포교지방의 지침으로서 발포하신 회칙 『목자들의 으뜸이신 이가』(Princeps Apostolorum)의 전교지방 성직자들에게 대하여 가르치시는 항목의 하나로서 제시한 바를 소생의 주교임명 칙서에 되풀이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전파시킴은 성교회의 본 직분이니라 그러므로 그 생명과 교리에서 나오는 그 우월한 혜택을 만민에게 될 수 있는대로 베풀어 이에 그리스도적 원리에 기초를 둔 새로운 사회질서가 형성되게 함은 성교회의 거룩한 책임일지로다. 그러므로 성교회는 전교지방에 있어서도 사회사업과 육영기관을 설립하여 그 기관이 있는 지방의 신자들뿐 아니라 또한 일반 민중을 돕고자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바이니라. 그러나, 포교에 전념하여야 할 사제들이 이러한 일에 지나치게 얽매어 그 사도직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할지로다. 따라서 쉽사리 실현할 수 있는 동시에 신속히 효과를 내는 가장 필요한 일들만 할 것이니라. 이러한 기관의 지도 및 경영은 그 나라 평신자 남녀들에게 되도록 빨리 맡겨 사제들은 복음 전도와 그들 자신과 및 다른 이들의 성화에 그 모든 정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할지로다』 이로써 우리 교구의 사업계획의 기선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읍니다.
③ 『정성껏 가꾸어줄 새 교구장』……
교황성하께서 소생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전북에 있는 그리스도의 농장을 정성껏 가꾸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들고 나는 다음과 같은 확신 즉 내 안의 허약한 인간이 하루바삐 사라지고 내가 이 농장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대리자 즉 주교로서 하루바삐 제 구실을 맞갖게 하는데는 오직 전능하신 주님의 팔에 의지하여 그 직책을 있는 정성을 다하여 꾸준히 하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무릇 어떠한 대 사제를 물론하고 그들은 다 사람들 중에서 간택되며 또한 천주대전에 저들의 사정에 있어 사람들을 위하여 저들의 대표자로 선정되나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사람의 죄악을 위하여 예물과 희생을 봉헌하기 위함이니라. 자기도 또한 약점이 있는 자이매 몽매한 자들과 또한 방황하는 자들을 친히 동정할 수 있어야 하리로다』(헤브레아 5.1-4)
① 「오직 그대의 발자취를 따르매 아무 위험 없이 영생에 나아가게 되기를 주님께 간구하라」……
나에게 맡겨진 양떼를 안전하게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만이 나의 할 일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의 발자취를 밟아야 주교로서의 유일한 직책을 다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에 <바오로> 종도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주십니다. 『저(그리스도) 당신 지상생애의 날에 죽음에서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그이에게 큰 소리 와 눈물로써 기구와 탄원을 드리셨으므로(천주 성부께 대한) 경외(敬畏)를 인하여 들어 허락하심을 받으셨나니라 저 또한 비록 천주의 아들이시나 당신 수난으로써 순명을 배우셨나니라. 이로써 완전한 지위를 얻으신 후에는 당신을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또한 천주께 <멜키세덱>의 제도를 따른 대사제라 일컬으심을 받으셨나니라』(헤브레아·5·7-10)
교구가 걸어나갈 길이 제시된 이상 나와 또한 나의 협력자들이신 공경하올 우리 교구 여러 신부님들이 할 일은 같은 회칙(Princeps Apostolorum)의 정신에 따라 첫째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우리 사제 자신의 성화를 도모할 것이요, 둘째로 발전하여 나가는 우리 사회와 보조를 맞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지도하기 위하여 필요한 교양을 쌓아 나갈 것이요, 셋째로 우리 고유 문화를 살리면서 공번된 성교회와 호흡을 같이하는 가톨릭 사제가 되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구 신자 여러분에게 고하나니
첫째로 그대들은 다만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양떼가 아님을 자각하여야 됩니다. 여러분이 받은 견진성사는 영세성사의 보충이 아니요, 우리 교회를 짊어질 책임을 맡기는 동시에 이에 필요한 성사성총을 주는 성사입니다. 영세 때 받은 신덕을 보존하고 방어하고 특히 전파시킬 의무가 이 성사를 받는 이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의 생명과 장래는 오직 평신도 여러분에게 달린 만큼 무엇을 자기가 할 것인지를 자진하여 먼저 알려고 할 것이요 안 다음에는 교회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야 될 것입니다.
둘째는 단결입니다. 헤어지기 쉬운 우리 민족성으로 보아 이 점에 특히 유의할 것입니다. 평신 사도직-레지오 마리에 J.O.C 등 단체에 가입하여 단체 훈련을 받도록 할 것입니다.
셋째로 발전하여 나가는 우리 사회와 시대를 지도하기에 요구되는 교리연구입니다. 이를 위하여는 적어도 한국에서 발간된 교회서적쯤은 다 읽어야 할 것이며 주교회의 기관지 「경향잡지」는 물론이요 「가톨릭청년」 등의 월간물과 더불어 특히 전세계 교회와 신속히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주간 「가톨릭시보」 등을 많이 이용하기를 특히 권하는 바입니다.
이 고장에 생소한 나로서는 우리에게 특히 무엇이 요구되는지 알 수 없으나 그동안 느낀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우리 조상 순교자들과 6.25동란 때 신덕을 위하여 희생된 분들의 사적을 시급히 조사하여 놓을 것이며
둘째로, 이는 특히 청년들에게 고함-농한기의 그 귀한 시간을 자기 생활 향상과 교회 발전에 유조하게 이용하여야 할 것이며
셋째로 혼채(婚債) 상채(喪債)로 평생을 허덕이게 하는 그 폐풍을 우리 교우가 단결하여 없애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 해결방안은 여러 신부님들과 교회유지들이 신중히 고려하여 세워주실 것이요, 일단 다각도록 검토되어 결정된 다음에는 우리 교구 신자 일동이 단결하여 이를 추진시켜야 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한국에 있어서 본방인 자치교구로서의 제일 역사 깊은 전북교구를 보천하 성교회 대주보이신 성 <요셉>께 의탁하며 그 정배 동정 성모님과 우리 치명자들이 보호하여 주심을 이 교구를 대표하여 구하는 바입니다.
1961년 6월9일 전북교구장 한공열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