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歐羅巴(구라파) 기행 - 본대로 느낀대로]
발행일1960-10-02 [제248호, 4면]
오늘의 문제
「인슈부르그」는 「이타리」와 접경한 오지리 굴지의 큰도시. 이곳 대신학교서 청년 노동자 지도자 강습회가 있어 참석을 자청했다. 「아트낭」이란데서 「뷔엔나」로부터 달려온 급행을 갈아타고 한 6시간 산간 승지(勝地)를 빠져단다. 기름진 옥토와 서정적인 목장들. 산들은 어쩌면 저렇게 울창한 숲에 감싸여 있는지.
이곳서야 비로소 여름더위를 약간 감득할 수 있다. 저녁식사에 나가서 회원들을 살펴보니 한삼백여명이 말짱 새까만 복장의 신부들이고 평신자는 십여명뿐이다.
主敎가 JOC 지도
이 모임은 「독일어」로는 KAJ 「불어」로 소위 JOC 저 유명한 몽시뇰 <까르다인>이 필생의 정열을 바쳐 이룩해 놓은 청년노동자 지도기관인 것이다. 1958년 늦가을 필자가 <까르다인> 준(准) 주교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뵈었을 때 『나는 노동문제의 어떤 높은 이론을 학문적으로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청년 노동자들의 처지를 샅샅이 살피고 있다. 먼저 관찰이 요긴하다』고 하면서 76세 노령에 인생공부를 더하고자 한국까지 왔노라고 한 그분이다.
「구라파」각국시 교회는 이 청년노동자를 비롯한 청년지도 문제를 일반적으로 가장 크게 다스리고 있으며 여기는 전속주교가 나서서 하나의 기관을 장만하고 있다. 과연 「구라파」청년들의 실정은 어떤가 이 회의에서도 이것을 주로 토의했지만 먼저 청년이란 하나의 「제네레이숀」은 마치 현대화(畵)와 같은 아주 변형(變形)된 그것으로 볼 수 있다. 「록큰 롤」이란 기교망칙한 춤이 있는데 그것은 이 청년들의 모상을 저윽히 설명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대조(對照)에서 보다 노동자들의 생활상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곳 노동자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말 없이 입만 움직여
흔히 공원 벤취에서 볼 수 있는 그대로 「빵」 「소세이지」 사과 「리모나데」 「비이루」 정도를 끌러놓고 젊은 부부가 젖먹이를 가운데 앉히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어딘가 우울에 가득찼고 말없이 입만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철저히 공업화된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노동자의 한 그림자로 본 나의 관찰에 큰 어김이 있을상 싶지 않다.
文明 騒音에 自殺?
청년노동의 경우 기계로 인한 현기증 그 모든 피곤을 풀고 잊기 위해선 술과 자극을 구해야 한다. 또 그런데서 인생의 의미(意味)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짐짓 이것이 자살로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데 솔깃해가고 있는 것이 현대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같은 현실과 현대병에 대한 좀더 정확한 진단을 내리자는 것이 이번 회의의 중요한 과제인듯 하다.
회의는 대체로 이 방면의 전문가 교수들에 의한 강연이 먼저 있고 그 강연 내용을 두고 몇개의 분과위에서 토론을 하고 그 결과를 전체회의에서 보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언어 문제와 또 나의 무지(無知), 불학(不學)은 도저히 회의내용을 소화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허나 여기 무슨 방법으로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느냐 혹은 세우고 있느냐 하는데 면밀한 관찰을 해가지 않을 수 없다.
JOC의 進路
솔직히 말해서 이네들의 방법론이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그것임을 전제해서 무방하리라. 첫째 주어진 사회가 그 양상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나의 「게마인샤프트」(其同社會)에 붙이는 신념(信念)이 이곳서 진지하게 토의되고 또 실천되고 있는데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당을 한갓 박물관만도 못하게 바라보고 있는 청년노동자들에게 무슨 방법으로 호소할 길을 얻을 수 있겠는가.
「쇼윈드」에 차려진 「폴크스바겐」(구라파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소형자가용차)은 청년들의 유일한 선망의 대상이다. 아니면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를 심각히 부르짖고 있다.
여기 교회는 아무런 힘을 주지 못하고 우뚝 서서만 있겠는가.
이에 지도신부들이 소매를 걷고 나서게 된 것이다. 거리로 공장으로 그들을 찾아가 오직 그들의 진정한 벗이요 형제인 것을 고(告)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들에게 아니 그들이 잇음을 「알바이트」의 값을 정애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一場演說도
그들 가운데서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 이런 것이 방법론의 골자인 것이다.
필자가 「뷔엔나」대학 F신부의 독일어 통역으로 『사람은 영성을 우위(優位)에 들때 제값을 찾는거와 같이 노동자 자신을 알게하는(認識) 교회의 가르침만이 노동자와 몇인간구제의 한소리인 것을 「저나리즘」을 빌려반영하겠다』는 요지와 인간자유에의 신념만이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아프리카」의 비극이 결국은 오늘의 서구(西歐) 가톨리시즘과 대조할만한 것이라고 발언했더니 주교 두 분이 일어서서 박수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 JOC 박 신부와 <리나>양 <장> 양을 잘 알고 있는 「브룻셀」 본부의 U신부는 필자 자신이나 혹은 필자가 소개하는 인사에게 이 문제 연구를 조건으로 2년간의 장학금을 제공하겠다고 자진해왔다. 허나 필자의 소견으론 이미 박교수(성신대학)같은 지도신부가 있고 가톨릭시보같은 정통한 소식통이 있는 만큼 우리가 만일 지금은 실망할 때가 아니고 수고하고 땀흘릴 때란 것을 다짐한다면 우리 형편에 맞는 이 운동을 우렁차게 할 수 있음을 굳이 믿는 바이다. 남을 지도한다는 일이 쉬운일이 아님을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중 청년노동자들을 지도한다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을 길게 논할 것없다. 그때문에 여기 모인 주교 신부들이 그야말로 학생들처럼 「노오트」 연필을 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먼저 이론. 다음은 그와 똑같은 실천. 그외에 달리 생각할 것은 없는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인슈부르그」의 닷세동안, 시간표대로 일어나고 자고 하는 동안 끝났다.
아가서 일하자
끝날이 인상적이었다. 청년노동자 지도의 백발홍안의 몸집이 굵은 신부 한 분이 등단하더니 나는 닷세동안 아무 발언도 하지 않았오. 이제 회의가 끝나고 그 귀찮은 이론이 다된듯 하니 나가서 일합시다. 거리로 공장으로 가서 그들을 붙잡고 사정을 다합시다. 그네들과 같이 땀을 흘립시다 하며 외치고서는 청년노동자의 노래를 목메인 소리로 부르는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냉담?
오늘 교회가 당면한 큰 문제는 결코 철학의 빈곤은 아니다. 유물론이나 실존우의에 대한 대답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모르고 있는 그들보다 교회를 알고서 저버리는 자와 저도 모르게 냉담해 가고 있는 청년의 특색을 잘 살펴보면 그들에겐 참으로 위협심과 정렬이 있고 감격이 있으며 모든 좋은 것을 다 간직하고 있다. 그들이 만일 단결하고 일어서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청년을 놓친다면 모든 것을 잃을 것과 같지 않겠는가. 그럼으로 오늘의 교회는 모름지기 청년지도에 전력을 기울여야 된다고 하는 것이 지배적인 오늘날의 구라파 교회 안의 사조이다.
청년을 지도할 수 있는 주교 추기경들이 중요한 지위에 있음을 열거할 겨를은 없다.
이곳서 「린츠」에 돌아온 그날저녁 휘젖한 정거장 「프렛홈」엔 벌써 모색이 깃드는데 우중충한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진다. 호주머니엔 별로든 것도 없고 전에 있던 숙소의 열쇠만은 가지고 있지만 어딘지 잘 요령도 가지 않는다. 서글픈 생각에 잠기면서 무거운 거름을 옮기고 있는데 『! 코리안』하고 반기는 수녀 한 분이 나섰다. 「카리타스」회 수녀. 자기르 ㄹ따라와 잠간 쉬고 가라는 것이다. 무조건 뒤를 따라 갔더니 「반호프 밋숀」 말하자면 정거장 선교를 위해 아주 정거장 건물에 사무실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차와 과자 대접을 하고 세수도구까지 내분 다음에 대개 신분을 짐작하더니 짐도 들어다 주고 길도 안내해주겠다고 나서며 저녁까지 꾸려주고.
은전 몇푼을 전했더니 빈민구제에 쓰겠다고 달겨받는 것이었다. 그 반겨하는 모습. 수고하는 자와 짐진 자에게는 마땅히 안식과 위로를 줘야한다는 믿음. 그의 친절과 다사로운 배품만 아니라 그의 고운 얼굴만해도 언제까지나 잊을 수 없다. 어디서 본 여인상이 이같이 아름다웠으랴?
수녀, 당신의 눈방울은 하늘의 것을 반사하고 있었기에-
노래하고 춤추는 신부
이번에는 주로 고등학생 16·7·8세까지의 학생지도를 위한 강습에 한이틀 나갔다. 「벨헤링」수도원에서 열린 이 모임에도 지도신부 그리고 학생 한 3백명 남짓했다. 한참 자라나는 몸들이라 강론 같은 것으로 오래동안 주의를 집중시킬 수는 없는 듯 여기 저기서 기성을 올리고 웃고 떠들고.
가령 박수를 시작하면 끄치지를 않기 때문에 사회자가 그만 그처 달라고 진땀을 뺀다.
회의시작도 노래로, 도중에도 노래, 마감도 노래, 식사시작도 끝도 조만과(朝晩課)도 모두 노래로 합창 윤창을 어떻게들 잘 부르는지, 그때문에 지도신부는 아마 상당한 음악가라야 될듯.
그뿐 아니라 그들이 참으로 즐기는 춤, 언제든지 「스크램」을 짓고 「리드미칼」하게 그렇게도 가볍게 「단씽」을 즐긴다.
단정한 곳이어야
웃음과 웃음 그 사이에는 미소를 엮어가는 이들의 모임에서 나는 멍하니 우리 소년소녀들을 생각했다.
그들을 저렇게 즐겁게 해줄 지도자가 없는 것이다.
나는 또한 이런 것을 느꼈다. 성당은 물론 「미사」성제를 드리고 지극히 거룩해야 하겠지만 성당뜰만은 언제나 다정하고 즐거움과 축복에 젖은 곳이어야 한다고. 그런 곳에 노래와 춤이 없을 수 없다. 「구라파」에서는 어른이 아이들보고 먼저 인사하게 마련인 것이다. 말하자면 어른들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위엄과 긴장을 풀고 미소를 지으면서 『Gruss Gott』(축복-특히 오지리에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자라나는 세대를 귀중히 대해주는데 그 모든 특징이 있지 않느냐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 조직이나 기구가 어떠나 하는데 크게 신기할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그들에게는 좋은 지도자가 있을 뿐이다. 고등학교선생들이 나와서 학생들에게 마치 유치원 보모처럼 따뜻이 대하고 있는데 나는 그 실마리가 있음을 갈파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