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建(김대건) 신부 墓所參拜(묘소참배)
聖地(성지) 「미리네」서 다짐한 信仰(신앙)
30年(년)만의 처음 行事(행사)
9월 28일 3천餘(여) 신도들
교황 下賜(하사) 燭(촉) 밝히며
金(김)신부 慈堂墓所(자당묘소)도 여기
【미리네=安城發 金在媛 本社特派員】 한강뚝 새남터서 천주를 증명하며 귀천(歸天)하신 우리의 선구자 복자 <안드레아> 김(金大建) 신부 묘지 성지순례가 지난 9월 28일 이곳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30년만에 두번째로 이곳을 찾은 성직자·신자 3천여명은 주한교황사절대리 <무튼> 몽시뇰·서울교구장 <바오로> 노(盧基南) 주교 인솔하에 광복받으신 님께 같이 조배했다.
경기도 안성읍에서 약30리 서울서는 2백50리 이곳 두메산골을 찾은 2천여 서울교우들과 근린(近隣) 11천여 교우들은 공기 맑고 평화로운 성지(聖地) 「미리네」를 26대의 「뻐스」와 5대의 「찦」차에 분승하고 밀려닥쳐 산골 좁은 길을 메꾸고 유사이래 처음보는 대혼잡을 이루었다.
정오가 되자 안법중고교 교장 <도마> (丁旭鎭) 신부의 식순예고(豫告)에 이어 삼종경을 올린후 「미리네」본당 <마두> 윤(尹亨重) 신부 안내로 안법학교 「밴드」부를 선두로 신자들이 따랐다. 이어 교황사절대리 <무튼> 몽시뇰, 노주교, 신부들, 수녀들이 뒤따랐다. 마지막으로 신부들이 복자 <안드레아> 김신부님의 유해와 교황성하께서 친히 축성하여 하사하신 초를 받들고 행렬을 따랐다.
행렬이 경당을 향하는 동안 「밴드」는 복자 찬미가를 쉴새없이 불어댔다.
행렬이 경당 양옆 언덕에 자리잡고 유해와 초가 안치된 다음 하오1시 노 주교의 강론이 있었다.
<노> 서울교구장은 강론에서 김 신부님의 약력과 치명하시기까지의 전말을 회상하고 『그분의 용감한 평생은 <바오로> 종도의 형적과 비슷하다』고 하고 이곳 묘소의 <김> 신부 영해는 몰래 파내어 이곳에 암매장했다고 설명하고 『이제 우리는 이곳서 만천하에 이처럼 성대히 그분을 찬양할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노> 주교는 계속해서 『30년만에 다시 이곳을 찾은 우리의 뜻은 복자가 거두신 승리를 축하하고 우리교회가 신부님의 덕택으로 이처럼 발전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다시한번 순교자들의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을 받들어 만난을 헤치고 전교에 힘쓸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강론이 끝나고 「노」 주교의 선송으로 「복자 안드레아 김신부 찬미경」을 합송하고 「유해친구」로 들어가 주교와 두 신부가 신자들을 뚫고 나가면서 친구해주었고 그동안 「밴드」는 쉴새없이 주악되었다.
1시50분 「복자를 향하여 하는 경」을 합송하고 하오 2시 모두 해산하여 경당 안에 안치되어 있는 「안드레아 김신부의 유해」와 「교황 성하 하사부활초」를 조배하였다.
하오 3시반경 이 조용하고 거룩한 곳을 일동은 떠났다.
경당 문을 들어서면 「바른편」에는 <오>(高) 주교님과 <베드루> 최신부의 묘가 있고 왼편에는 <안드레아> 김신부님과 <말구> 강신부님의 무덤이 있다. 경당 옆 언덕 위에는 김신부님의 모친<울술라> 고씨의 묘지가 있다.
동경당은 1928년 돌아가신 <말구> 강신부님이 건축하시어 당시 부주교이시던 <원> 주교가 축성하였다.
처음 이곳순례는 1929년 1월 2일과 3일 「남곡리」 <말구> 박신부 인솔로 청년 70여명의 단체참배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