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를 만든 사람] (4) 「로시아」 종교철학자 니코라이 A.벨쟈에프
발행일1961-06-25 [제284호, 2면]
■ 생애
「로시아」의 종교철학자, 1874년 「키에프」에서 귀족장관(貴族將官) 집안에 태어나 「키에프」 사관학교와 대학에서 수학, 1898년 정치적 이유로 3년간 시골로 추방되었다가 후에 문필가로서 활약. 처음에는 「맑시스트」로서 「맑스주의」 잡지에 기고(寄稿)했으나 그 후 친우 <불가코프>와 같이 경제적 유물론에서부터 떨어져 신(新) 「칸트」파에 향하고 점점 종교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소로비요프>의 영향에로 강화되어 갔다.
1909년에 종래 주로 허무주의(虛無主義)와 유물론(唯物論)을 지향하고 있던 「로시아」의 지식계급의 분열(分裂)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논문집(論文集) 「예치」(Wjechi)의 주요 집필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19년 「모스코바」 정신문화자유학사원(精神文化自由學士院)을 창립하고 1920년에 한때 「모스코바」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으나 곧 중지당하였다.
1922년에 「로시아」의 관념론(觀念論) 철학자 <이리인> <프랑크> <스태픈>과 같이 『반공산주의적 「이데오로기」 활동』으로 인하여 「로시아」로부터 추방되었다.
1934년 「파리」로 이주하여 「종교철학사원」(宗敎哲學士院)을 설립하고 재직, 1925년 이래 「로시아」어의 종교잡지 『길』(道)을 발행했다.
1948년 3월23일 「파리」에서 사망.
■ 사상
<벨쟈에프>의 학설의 중심은 인간, 인간의 자유 및 창조력(創造力)이다. 그리스도교는 그에 있어서는 신인성(神人性)의 실현이며 따라서 인간의 확인(確認)을 전제(前提)한다.
인간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은 그 본성의 고유한 내면(內面)에로 인도된다.
천주는 인간의 자유로운 『사랑』과 자유로운 창조적 활동을 구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문제로부터 자유의 문제가 생긴다.
세계과정(世界過程)의 비극은 자유의 비극이다. 자유는 선(善)과 악(惡)을 다같이 생기게하나 그리스도의 속죄사(贖罪死)는 인간자유의 본래의 본질의 계명(啓命)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벨쟈에프>의 저작활동에서 가장 발휘된 것은 역사철학·문화철학에 의한 것이며 모든 것을 동적(動的)으로 보고 그에게 있어서는 천주의 생명조차 한 개의 운동이며 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도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역사는 한 개의 비극을 현출하는 것으로서 역사의 고유의 목표는 그 한계 내(限界內)에서는 인식할 수 없고 그 파악은 오히려 역사의 종말을 전제하는 것이다.
문화는 단지 상징적(象徵的) 성질만을 소유하는 것으로서 참다운 존재를 실현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문명은 허위(虛僞)의 존재 즉 천주 없는 생활을 실현한다. 그리스도교의 위기(危機)는 그리스도교를 인간의 내적본성(內的本性)과 결합시키는 방면이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고 그 기초 위에 인간에 대한 허위의 『인도적』 사랑이 생겨난 것이라고 하였다.
■ 비판
「벨쟈에프」 학설의 골자는 위기(危機)에 선 현대문화 전반(全般)을 바로 잡는데는 오직 그리스도교가 있을 뿐이며 그리스도에로 회복될 길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