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예물을 제대 앞에서 드리려 할 때에 만일 네 형제가 너를 거스려 무슨 혐의가 있는 줄을 거기서 생각하거던 거기서 네 예물을 제대 앞에 머물어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목하고 이에 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마두,5,23)
마음속에 형제를 미워하는 정이 불같이 타면서도 주일날이 되면 성당에 들어와 제법 얌전하게 성호를 긋는 우리들에게 무거운 가책을 던저 주는 오늘 복음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당 문 안에서는 종교인의 생활을 하고 성당 문 밖에서는 비종교인의 생활을 곳잘 하는 이중인격의 소유자입니다. 천주대전에 얌전하게 긋는 성호는 천당가기 위해서 필요하고 사람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움켜쥐는 것은 밥 먹기 위해 필요한 것이니 이해성이 많으신 천주님게서 그리 엄하게는 생각지도 심판치도 않으시리라는 실낫 같은 안도감을 가슴에 품고 매일같이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네 형제와 호목치 않고는 네 예물도 네 성호도 받아드리지 못하시겠다니 퍽으나 딱한 사정입니다. 더구나 심판하실 때 바로 그 한점을 노래 심판하시겠노라고 예고하셨으니 더욱 한심합니다. 『앙화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악신을 위해 예비한 영원한 불로가라… 이는 네 형제 중 하나에게 아니 베풀 때마다 곧 나에게 아니 베푼 연고니라』(마두,25,41-45)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왜 이렇게도 우리 사정을 몰라주시고 저렇더시 엄하게 판단 내리실까? 하는 생각을 하느니 보다 차라리 그럴 수밖에 없는 진리신 그리스도의 태도임을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첫째점은 우리가 성호를 이마에 놓으며 성부께 바치는 제물이 바로 우리 형제를 사랑하사 십자가상에 정사하신 그리스도 자신이시라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불의하고 죄인인 우리 형제를 사랑하신 나머지 즐겨 당신 생명까지 바치신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를 사랑해 희생된 이 제물을 의당 형제를 사랑하는 자의 손으로 받들어야 함은 지당한 일이겠읍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우리의 손으로 받든다는 것은 너무나 천주께 대한 모욕적 행위가 되겠읍니다.
그 둘째 점은 우리 모든 이가 한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이며 천주 성부를 공동 부친으로 모시고 있는 한 형제입니다. 따라서 한 지체에 대한 미움은 곧 그리스도께 대한 미움이며 한 지체에 대한 사랑은 곧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를 미워하며 그 지체의 머리신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순수한 거짓일 것입니다. 또한 성부의 자녀인 형제를 미워하며 성부를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일 것입니다.
성 <요왕> 종도께서는 이점에 관해 다음같이 명백한 말씀을 해주셨읍니다. 『누 만일 천주를 사랑하노라 말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짓을 말하는 자니라』(요안일서,4,20)
이 두점을 가장 의식 깊이 실천에 옮긴 것은 초대 교우들입니다. 초대 교우들은 미사 전에 반드시 애찬을 베풀었읍니다.
이 애찬은 글자 그대로 사랑의 잔치입니다. 모든 교우는 그리스도를 천주 성부께 바치기 전 먼저 이 애찬에 참석하여 형제와 한상에 앉아 음식과 더불어 상호 참된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논으므로 미사성제에 들어 갔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릿다운 그리스도의 정신이며 우리의 모범적 행위입니까! 우리는 비록 지금에 와서 환경상 이런 음식을 통한 애찬은 못가질 망정 적어도 아릿다운 마음의 애찬만은 꼭 가저야 할 것입니다.
또한 먹고 입기 위해 형제에게 눈을 부릅 뜨고 주먹을 움켜 쥐어야 할 이유가 없읍니다. 입고 먹을 것이 형제께 대한 미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천상 부친이신 성부께 대한 참된 자녀의 신뢰에서 생깁니다. 우리는 이점에 관해 그리스도의 다음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나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 생명을 무엇을 먹이고 너희 육신을 무엇으로 입힐꼬 하야 걱정하지 말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심으지 아니하고 걷우지 아니하고 창고에 쌓지도 아니하되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 저들을 먹이시니 너희는 저들 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또 어찌하여 의복을 걱정하느뇨? 들에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 보라… 들풀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에 들어갈 것이라도 천주 이같이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게냐 신덕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얼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꼬 걱정하지 말라… 너희가 이 모든 것이 요긴한 줄 너희 성부 알으시나니 이러므로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은 너희에게 더음으로 주시리라』(마두,6,25-32)
(필자=경북구미본당 주임=성분도회)
盧奎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