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2)
발행일1960-10-09 [제249호, 3면]
1, 성인들과 돌들의 성시(城市)
화강암 성벽으로 높이 둘러싸인 「아빌라」의 장안. 삼종이 울릴 때마다. 「성도밍고」성당 종이 먼저 시작한다.
조곰있다가 온 「아빌라」의 모든 종들이 한꺼번에 울린다. 「성요안」 「성베드루」 「성이시도로 및 팰라요」 「성힐」 「성십자가」 「성치프리아노」 「성니고라오」 「성야고버」 「성로마노」 「모센 루비」대성당, 수녀원들, 「베네딕트」수사원으로부터 「갈멜」수사원을 거쳐 가고, 가난한 「글라라」회로부터 「성총의 모후」의 「아우구스틴」수녀원으로 건너 오고, 「프란치스코」 수녀원으로부터 「성도마스」의 「도밍고」수사원으로 되돌아오고, 「트라피스트」의 수사원 및 수녀원으로부터 「성스코라스티카」 「성미라노」 「성안나」를 그쳐서 「성가타리나」의 「도밍고」수녀원으로 울려오는 이 성시(城市) 안에 있는 모든 성인들의 황동(黃銅) 소리의 메아리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돌들이 돌려보낸다. 「아빌라」에는 성인들과 돌밖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카스틸랴」의 여왕 <도냐후아나>를 위하여 「홀란더」 황제 <챨스5세>에게 항거한 1520년의 「코무네로」의 의거는 실로 이 「성인들과 돌들의 성시」가 중심이었다.
주일마다 성당에서 강론은 온 「스페인」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신간(新刊)을 저술한 이단자들에게 벽력을 내렸다. 특히 냉담신자에게.
성벽 바로 그것이 황제권의 남용을 할거하여 「카스틸랴」의 자유를 방위하려는 음모자들의 이름을 속삭이는 것 같았으나 백성들은 자기들의 자유가 아니라 귀족들의 특권을 위하여 싸운다는 것을 몰랐다.
성당 벽에서 <성안드레아> <성세바스티아노> <성우르술라>와 그의 동반들이 순교하는 장렬하고 엄숙한 광경이 사실적(寫實的)으로 사람들에게 소름을 끼치게 했고 또 그 고난을 넘어 저 세상의 영원한 복락이 신심의 상상을 돋구었다.
집안에서 특히 조상들이 천주와 조국을 위해 세운 무공을 자랑하는 귀족들의 가정에서 안식구들까지 즐기는 책이 기사전(騎士傳)이었고 인물이 잘나고 정신이 고상한 젊은 기사가 깊은 산중, 컴컴한 밀림 속에서 사나운 맹수, 흉악한 마귀, 간사한 요정(妖精)을 물리치고 잡혀간 꽃다운 처녀를 구출해내는 줄거리가 젊은 상상의 세계에서는 생생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엄격한 <데레사>의 무친은 어린아이들의 정신이 소설에 쏠리기를 설흔에 가까운 남편의 재취로 들어와서 전실소게 타오르다가 근심이나 여성다운 눈치로 번쩍거린다. <데레사>의 얼굴빛은 창백했으나 볼은 붉었다. 미소할때는 입가에 보조개가 세군데 나타난다. 체격이 좋았고 보통키였다. 사람들은 그의 점잖은 몸가짐과 회사한 손길을 칭찬했다.
머리와 손은 조심스럽게 가꾸었다. 크림과 연지와 향수를 사용했다. 묵주신공때 보다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머리모양을 여러가지로 해보았다. <이사벨라> 왕후를 모방하여 높이 틀어올리기도 했다. 피부를 더 곱게 하려고 여러가지 식물을 뽑아 사향(사香)이나 「오렌지」향을 발랐고 볼은 연분홍으로 찍었다. 그는 호박(琥珀)이나 희고 또는 붉은 산호의 구슬을 「리봉」에 달기를 좋아했으나 그중에서도 흑요석(黑曜石)을 제일 좋아했음은 자기의 검은 눈동자를 더욱 뚜렷이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심하면 죽은 모친의 결혼때 옷을 꺼내 입어보았다. 그만큼 무겁게 성장을 차리고도 거미줄 걸친 듯 가볍게 몸을 놀리면서 온실로 꽃을 수놓은 맵시있는 부드러운 가죽 「스립바」를 신고 잘구버지는 조고만한 발로 춤을 추며 온 방안을 돌아다녔다. 「스터킹」이 투명한 것이었음은 말할나위 없다. 소실취미야 그 낫세의 처녀들에게 공통한 것이었으나 열여섯살이 된 그의 들뜬 마음은 단순히 정상적인 「여성」의 눈뜸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