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부촌으로 이름난 장춘동에 자리잡고 있는 「신당동」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로(道路) 양편에는 크고 아담한 집들이 서로 얼기설기 붙어 깨끗하고 조용한 동리를 이루고 있다.
「신당동」본당은 1948년 명동성당서 분립(分立)하였다.
초대주임으로 <원선시오> 조 (趙仁元) 신부가 부임하여 동성당을 맡아 3년간이나 애를 쓰다가 6·25사변을 당하여 힘들인 공도 없이 성당은 파괴되고 말았다. 몇달 후 서울이 탈환된 후 <누까> 신(新元植) 신부가 와서 그 이름해인 1951년에 1백여평이 되는 적산 가옥을 구입하고 새로 세울 성당기금을 모으는데 전힘을 기울였다. 부임한지 5년후 지금의 본당 <요셉> 김(金昌文) 신부가 부임해서 이듬해인 1955년 7월 7일 새 성당 신축에 착공을 하여 동년 12월에 그 준공을 보게 되었다.
성당공사 총공비는 약5천만환을 소교하였으며 건평 1백80평, 대지 3백30평에 당지 교우수는 3천6백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동성당은 어느본당보다도 그 발전이 비약적었으며 현재 교우 총수는 5천6백명이라는 놀라운 숫자이다.
이 성당은 구장님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연간 1천여명을 예비시킨다. 대단히 우수한 성적이다.
이 성당에는 부속된 사업으로는 「근화유치원」이 있는데 이것은 1949년 <누까> 신(申) 신부가 인가를 내서 시작하였는데 현재 원아수는 1백80여명이며 「바오로」 수녀 두분과 보모 두분이 가르치고 있다.
교회활동으로는 「쁘레시디움」이 4개 있는데 성인(成人)반(男·女混成)이 세개, 소녀반이 하나이다. 그박에 중·고등학생만으로 구성된 학생회가 있고 주일학교는 12반으로 나누어져 이들은 회의실이나 강당에서 교리기타 등을 배우고 있는데 생도 수는 약 5백여명이다.
회장은 남자 8명, 여자 4명이 있고 성당 자치회의 운영을 맡고 있다. 특별히 전교회장 한분이 있어 전교에 직접 나서고 있다.
그밖에도 「연령회」가 있는데 남녀 혼성구성체이며 주로 초상관리를 도맡고 있다. 여자만으로 구성된 「칠고회」는 적극적인 전교활동을 하며 가장 활발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JOC(청년노동단체) 남·녀합하여 22명의 회원이 있다. 일요일에는 교우수가 많아 「미사」가 7대나 있다.
이곳은 재정적으로 어느곳보다도 안정된 곳이다.
동 성당의 결함은 앞에 마당이 없어 길가에 그대로 건축되어, 어딘지 협잡한 느낌이 들었다. 기자가 여러 본당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은 거의 전부가 앞이 트이지 않고 무슨 「빌딩」처럼 건축한 곳이 많았다. 좀 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여유있게 신축하였으면 하고 절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