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의 전국 영화관을 들고 있는 어느 「이타리」 영화의 입장권 예매액이 30만 「딸라」에 다다랐다. 「이타리」 영화로서 일찌기 제작되지 아니한 최대 걸작이라고 「구라파」에서 갈채를 받은 이 영화는 날조(날造)된 묵시록으로서 <성 요안>이 묵시(默示)받은 세계 종말의 여러 장면을 광범위하게 환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시간이라는 장시간 상영을 통하여 종교사상은 하나도 없고 그 전편이 정신적 부패와 성감의 과도(性感過度)로 더럽힌 초극단의 선정주의(煽情主義)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마다 최근 10년간 「이타리」서 일어난 범죄적 또는 성적(性的)인 사회적 추문(醜聞)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기가 이 영화로 하여금 한철의 흥행기(興行期)에 최고의 수입을 올리게 했다. 오늘까지에 오른 그 순이익이 2억 「딸라」에 달한다. 「이타리」 공산당은 이 영화가 「부르조와」 사회의 부패상을 폭로시키는 것이라고 외쳤다. 「옷쎄르바또레 로마노」는 이 영화를 상스럽고 독성적이라고 단죄하였다. 이만큼 추악한 영화는 「이타리」의 영화 기업이 생산한 퇴패적이고 부도덕한 무수한 영화들 가운데의 하나에 불과하다. 「로오마」시에 가까이 자리잡은 「씨네씨타」(영화센터)는 「헐리우드」에 다음 가는 세계 제2의 최대 영화센터이다. 영화제작_에 있어서 「영국」과 「독일」은 뒤져 있다. 1년간에 「영국」이 138본, 「독일」이 103본을 제작하는 동안 「이타리」는 163본을 제작한다. 그러나 「헐리우드」에서는 아직도 일종의 자발적 검열 제도가 어떠한 방법으로 유지되고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의 「수레군단」(守禮軍團-Legion of Decency)의 비판을 듣고자 하나 「이타리」의 영화 제작가들은 많은 돈을 벌 궁리만 하는 영화 감독의 말 이외에는 누구의 말도 전연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그래서 「이타리」 영화의 도덕 수준이 급속도로 저하한다. 1956년에 「이타리」 영화의 신작품(新作品) 16%가 「가톨릭 영화국」으로부터 부도덕이라는 단죄를 받았는데 1960년에 단죄받은 율이 60%로 뛰어올랐다.
금년 봄의 「이타리」 주교회의에서 「이타리」 영화의 저급성(低級性) 및 윤리원칙의 끊임 없는 파괴와 강치(降値)로 말미암아 전 사회를 패덕화(敗德化)하는 위험성이 논의되었다. 「이타리」 주교단이 발표한 성명서는 영화기업이 일으키는 부도덕한 공중(公衆) 분위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모든 사건이 잔인(殘忍)하고 음탕하게 전개되는 「테마」의 선택은 선(善)하고 유용(有用)한 영화작품 생산에 대한 자기들의 무능력을 감추려는 대단히 값 싼 수단이다. 도덕적인 목적으로 희생하고 거부하는 뜻이 있는 모든 것을 비웃음 꺼리로 만든다』 주교들의 성명은 이어서 말한다. 『부도덕에 대한 면역성(免疫性)을 일으키는 예방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일부의 인사가 영화에 나타나는 부도덕성을 변호한다. 또 어떤 자는 악한 결과의 손상이 없이 추악한 현실에 대하여 저항할 능력이 있는 사람의 정신적 및 도덕적 성숙성(成熟性)을 신뢰(信賴)한다』 주교들의 이 말은 이 사회를 비판하기 위하여 사회 악의 객관적 묘사를 시도(試圖)한 영화에 대한 사회 평론의 일종인 소위 「신 사실파의」(新寫實派-Neo-Verismo)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영화가 이 사회를 비판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인간의 부도덕성을 연출하는 동안 사회가 부도덕함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락을 타락으로 다루지 않고 인생에서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방도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영화 제작가들은 일종의 도덕 질서를 잃어버렸음이 뚜렷하다. 그들은 현실적이 아니라 다만 예상된 인간의 도덕력(道德力)을 생각한다. 사실상 부도덕한 영화가 사람들을 부도덕하게 만드는 이외에 다른 효과가 없다. 그러나 주교들은 안전한 영화제작을 위하여 충분한 대책을 이제까지 세우지 않고 있는 정부를 또한 비판한다. 이에 국가는 사회의 도덕 원칙을 호위하는 의무가 있다. 영화의 판단에 있어서 관객들의 도덕적 태도는 신문지상의 영화평에 많이 달리기 때문에 언론인들의 양심을 주교들이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주교들은 「가톨릭 영화국」의 영화평 공개를 모든 신부들에게 촉구하고 「가톨릭 영화국」의 영화 검열의 의무적 성격을 재차 강조한다.
주교들은 자기들이 사회악과 투쟁할 결심을 똑똑히 표시하였다. 교회가 도덕률의 유일한 실지적 강력한 수호자임을 다시 증명한다. 교회가 없이는 국민이 인류의 영원한 가치에 대한 명백하고 양심적인 관념을 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