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44) 부산 溫泉洞(온천동)
유혹의 샘터 溫泉地(온천지)
성당은 초라한 적산가옥
더 많은 힘이 필요
발행일1960-10-16 [제250호, 3면]
『김형 오늘은 이렇게 한가한 모습하고 어디로 가는 길이요?』
『어디 다른데야 있겠소. 동래온천(東萊溫泉) 금강원(金剛園) 구경가는 길이요?』
『어디 다른데야 있겠소. 동래온천(東萊溫泉) 금강원(金剛園) 구경가는 길이지요』
이렇게 이른 봄과 초가을이 되면 이곳 시민들이 부푼 심정을 낚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우선 깊숙히 들어앉은 웅덩(溫泉탕) 이에 수정처럼 맑게 솟은 온수(溫水)에 무거운 몸을 푹녹여 보는 기분.
오돌오돌 맺히는 땀방울을 씻고 상쾌한 기분으로 한잔의 술!
상처받은 과거는 아랑곳 없이 즐거운 하루에 구미를 돋군다.
이런 금강원 구경이란 너무도 유명하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엔 온천시가가 바다이어서 옛날에는 이쪽과 저쪽을 배로 건넜다는 것이다.
『금강산 1만2천봉이 못내 못잊을 손 소금강(小金剛)은 어떨소냐』는 바로 이 금정산(金井山) 금강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곳 금강원 입구 오른쪽 절(寺) 같은 집이 동래 온천동 천주교회이다.
이곳으로 이사온 것은 8개월전인 금년 1월 16일이다. 그전에는 온천장 입구 「로타리」에서 울산(蔚山)쪽으로 질주하는 도로 약 2백「메타」 지점 오른쪽 깊숙히 위치한 『갈멜회 수녀원』성당을 빌려 불과 2백여명의 교우들이 정을 들여 오다가 1958년 9월 「일본」 사람이 쓰던 절을 사서 쪼달리는 살림 속에서 모은 푼돈으로 장구한 기일을 두고 조금씩 내부 수리를 한 것이다.
지금부터 4년전인 57년 7월 처음으로 이곳 넓은 지역을 <도마> 윤(尹禮源) 할아버지 신부님이 5백여명의 어린 양들을 거느리고 첫본당을 세웠다.
이곳은 유명한 유흥지라 창녀들의 유혹과 현실의 유혹에 휩쓸려 구령의 손길이 활기를 띠우지 못하고 있던 때이다.
간신히 싹이튼 「레지오 마리에」도 그만 사정에 의해 해산되고 지금은 유능한 여자청년들로 조직된 「안나회」가 맹렬한 전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
이런 속에서 신부는 늙은 노인들을 모아 「경노회」(敬老會)라 이름지어 이채로운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교활동은 주로 변두리에서 하고 있으며 중심지대로는 좀처럼 침투 못하는 형편이라 한다.
부산대학(釜山大學)이 이곳에 건립된 이래 지성인들이 많이 왕래하나 수준이 얕은 이곳 교우들로서는 지도력 부족으로 안타깝게 외부조력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성모님의 은총 메마른 곳으로 굽어 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