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성 <말구> 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두 번씩이나 수천명 되는 백성들의 육신생명을 잘 보존하시기 위하여 떡과 물고기를 많아지게 한 큰 영적을 행하셨읍니다. 단순하고 가난한 이 백성들은 영혼의 음식인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먼 데서 왔으나 육신의 굶주림을 크게 상관치 않았읍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백성들의 육신생명도 생각하사 오늘 미사의 복음대로 백성을 불쌍이 여기서 큰 영적을 행하셨읍니다.
B. _일반역사 특히 철학역사를 보면 가끔 유심론과 심령론자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영신적 것만을 생각하라! 육신을 생각지 말라! 육신상의 것은 제일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했읍니다. 결혼도 나쁘다고 하는 열교가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생각지도 가르치시지도 않으셨읍니다. 물론 가끔 『무엇보다도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고 하셨지만 그러나 가끔 가끔 병자나 부마가 또는 굶주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영적을 행하셨읍니다.
생활이 너무나 어렵고 곤난한 사람은 천주의 계명을 잘 지키고 영신적으로 나아가기는 대단이 힘든다는 것을 예수께서 잘 아셨읍니다. 제일 유명한 신학자 <도마스 아귀나스>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의 표양을 따라 남의 영혼을 돌보는 한편 힘 자라는 데까지 물질적으로도 도아주지 아니하면 안되겠읍니다.
예수께서 그 때 아마 동쪽에서 걸어오셔서 「제레사렡」호수 동쪽가에 계실 때에 사람들이 수천명 모여서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읍니다. 그러나 그 지방은 토지가 나뻐서 사람이 살수도 없고 인가도 없는 적은 황야로 되여있었읍니다. 그래서 무리의 음식이 떨어졌읍니다. 오늘 미사의 복음대로 먹을 것이 없었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으시고 말씀하시길 『백성이 이미 삼일동안에 나와 함께 있으되 먹을 것이 없음이로다 만일 저들을 공복으로 제 집에 돌려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니 대저 그중에 어떤 이는 멀리서 왔도다』하셨읍니다.
2. 그러나 그 제자들은 어떻게하면 좋을지 몰라서 대답하길 『이 무인지경에서 누 능히 무슨_으로 저들을 배불리 먹이까?』하였읍니다. 그때 제자들은 박약한 신덕에서 자연적으로만 생각하고 예수님의 영적을 생각치 아니하였는지? 혹시 이와 반대로 예수의 영적을 기다렸는지? 알 수 는 없읍니다. 하여간 영적으로 백성을 먹이시라고 감이 예수께 말씀들일 용기가 없었거나 혹은 그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겠읍니다. 또는 예수께 대한 경외심이 많아서 그렇게 말을 못하였겠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물으시길 『너희가 떡이 몇개나 있나뇨?』하시니 『일곱개로소이다』라고 대답하였읍니다. 그 다음 예수께서 백성을 명하사 따우에 앉으라 하시고 일곱 떡을 가지사 사례하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사 하여금 분배게 하시니 제자들이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읍니다. 또 적은 물고기도 몇 마리가 있었으니 예수께서 이것도 강복하사 나눠주라고 하셨읍니다. 그때에 기적이 일어났읍니다. 한 4천명 백성들이 이 일곱개 떡과 몇 마리의 물고기로 다 배불리 먹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남은바 조각을 모으니 일곱 바구니였읍니다.
3. 성 <말구>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이 큰 영적을 행하신 다음에 「제네사렡」호수를 건너 「달마누타」라는 곳에 가셨다가 몇일 후에 어떤 제자들과 함께 갑자기 또다시 배를 타시고 호수를 건느셨읍니다.
이때에 제자들은 무인지경에 이를 것을 알았으나 「빵」을 가지고 올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배 안에는 「빵」이 하나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읍니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바다 가운데서 노를 저으면서 걱정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걱정함을 알으시고 말씀하시길 『너희들이 「빵」이 없다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아직도 너희 마음이 캄캄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며 다시 생각지도 아니하느냐? 내가 떡 다섯개로 오천명에게 나누어 줄 때에 남은 조각을 몇 광주리에 채워 거두었느냐?』 대답하기를 『열둘이로소이다』 한즉 또 『일곱개 떡으로 사천명에게 나누어 줄 때에 남은바 조각을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 대답하기를 『일곱이로소이다』 하였읍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어찌하야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하셨읍니다.
이 예수의 책망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제자들은 예수께서 두 번씩이나 영적으로 큰 무리를 먹이신 것을 보고도 아직도 잊어버린 「빵」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연고입니다. 그때 종도들도 예수께서 큰 선지자이신 줄을 알았읍니다만, 그의 전능을 아직도 완전이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물질적인 「빵」같은 것을 너무나 쓸데없이 걱정했읍니다.
C. 그러면 (이상의 결론은) 예수께서 여러 영적과 말씀으로서 우리가 날마다 필요한 음식같은 것에 대하여 지나친 걱정을 두 번 다시 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넉넉히 있도록 부지런히 일해야 되지만 지나친 걱정과 생각과 말은 쓸때도 없을 뿐 아니라 신앙의 약함만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미리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가 좋은 신앙만 가지고 있으면 예수와 같은 영적도 행할 수 있읍니다. 한 예를 들면 우리 시대의 성 <돈 보스고>는 많은 불쌍한 아이들을 보셨으나 <돈 보스고> 성인 자신도 가난하여 어떤 때에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고 은인들 조차 없었어도 걱정하는 말을 한 번도 아니하시고 다만 신공을 드리며 모든 것을 천주의 안배에 맡기셨으니 과연 여러 번 예수와 같은 영적으로서 백명 이상의 아이들을 먹인 사실이 있읍니다.
이에 대하여 증인들이 있읍니다. 또 성 <비안네> 신부도 이런 영적을 하셨읍니다. 물론 인간으로서는 음식이나 옷이나 집과 건강 때문에 걱정이 생기기 쉽습니다만 신자로서는 이러한 걱정은 굳은 신앙으로서 천주께 돌리고 맡기면 안심하게 살 수도 있고 천주의 특은을 받기도 쉽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필자=왜관 성「분도」회 修_長 신부
南 호노라도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