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3)
발행일1960-10-16 [제250호, 3면]
2, 사랑
엄격한 그의 부친의 성격에 비겨 그의 모친은 지나치게 애정에 흐르는 편이었다.
마지막 해산을 한지 얼마 안되어 젊어서 세상을 떠난 그의 모친의 애정만이 <데레사>의 추억을 사로잡았다.
공경할수록 더욱 가까이 가지가 어려운 그의 부친은 두번째 상처를 하고나서 짙어가는 우울 때문에 응접실로 통하는 자기 서재의 문을 처닫아 버렸으나 격장(隔墻)한 그의 삼촌댁 정원으로 통하는 일각문(一角門)이 열리고 4남4녀인 사촌들과 자기 두 오라비들이 서로 자주 들락거렸다.
자기를 감독하던 언니가 출가한 뒤로 <데레사> 자신도 그축에 한몫 끼어들 수 있었다. 그것이 그에게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젊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고 소용없이 이야기를 즐기고 노는 것을 아주 말릴 수도 없고 저희들끼리만 내버려두기도 걱정스러워 그의 부친은 이즈음 시골 농장에도 자주 나갈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귀염을 받고 자란 <데레사>는 커서도 역시 사랑 받기를 좋아했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애정을 기울였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가 조금 위인 사촌오라비 하나가 유달리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당시 기사소설에 홀린 아름다운 처녀들은 타오르는 정열을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도 가벼히 여기는 협기(俠氣)있는 애인을 동경했다. 상류사회에서 자기 엄친(嚴親)이나 안접장(安接長)의 눈을 감히 속이려는 젊은이들은 상대방과의 교제를 즐기기 위해 당연한 근신보다 사랑을 더 높이 평가했다. 다만 체면이 실수를 막았으나 명예감은 지나친 비겁도 금했던 것이다.
<데레사>는 비겁하지 않았다. 다만 남의 손구락질을 받기가 싫었고 또 명예 때문에 결혼하고 싶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그들이 날마다 한데 몰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짓꺼리는 동안 나무랄만한 말도 나왔다. 그것이 <데레사>에 영혼이 순결치 못한 것과 접촉한 처음이었다.
다른 사촌 오라비 하나와 자기 연배의 동성(同性) 사촌 하나와 두 집의 여종들이 옆에서 추석거리는 바람에 몇번이나 편지가 오가기도 했고 비밀히 만나기도 했고 마음을 조리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순결을 지키려는 처녀의 본능이 강렬했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명망을 손상치 않으려는 명예감이 앞섰던 것이다.
1531년은 「아빌라」로서 가장 영광의 해였다. 네살 난 미래의 <필립 2세>를 다리고 <이사벨라> 여왕이 이 「기사의 도시」에 도착했다. <필립>의 동자복(童子服)을 태자복(太子服)으로 갈아 입히려는 것이었다. 찬란하게 장식된 장안이 경축기분으로 충만한 가운데 호화롭게 차린 정신(廷臣)들 귀족들의 마차와 말탄 기사들의 행렬이 거리를 흘러갔다. 전국에서 이름난 기사들의 무술경기가 벌어졌다. 궁내와 귀족들의 대청에서는 연회가 베풀어졌다. 무도회도 물론이었다. 그런 여러가지 행사마다 단연코 뛰어나는 자기 다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게된 <데레사>는 득의양양했다.
두달동안이나 이 행사에서 저 잔치로 돌아다닐 때마다 안동해주던 언니가 시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혼자서는 출입이 금지된 귀족 범절이 원망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입태자례(立太子禮)가 거행되기 10여일 전인 5월 13일에 그는 부친의 명령으로 「아우구스틴」회의 「성총의 모후」 수녀원으로 갑자기 떠나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기거하면서 일정한 기간동안 교육을 받게된 것이다.
교리를 토대로 한 부덕(婦德)을 중심으로 독서, 습자, 자수, 레이스뜨기, 물레로 실뽑기, 음악을 대강 배우는 것 등 고작해야 이런것들이 결혼 전의 여성교육이었고 「라틴」어나 「그리시아」어의 학습은 극히 드문 예에 속했다.
그가 집을 떠날 때의작별은 비밀이었다. 연애사건에 관련되었던 여종들은 그가 대문을 나설때까지 감시를 받았다. <데레사>는 눈물이 나왓다. 절망의 눈물인줄만 알았더니 다시는 몸에 댈 수 없게 된 네 줄로 된 순금 목거리, 그처럼 귀중히 여기던 보석반지, 기다란 귀거리를 뽑을 때 그는 울음이 터저버렸다. 섭섭한 감정과 허영심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으로 혼란한 심사를 어찌할 줄 몰라 그는 한참동안 허둥지둥 했다.
그 사건을 그의 부친이 눈치챈 것이 틀림없었으나 결정적인 의심을 품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호화 찬란할 입태자 예식장에 나타날 그의 사촌 오라비들의 금편(金片)을 박은 우단 족기, 주름을 잡은 하얀 목도리를 두르고 허리까지만 내려오는 짤막한 어깨두리를 걸치고 바로 그밑에 금장식의 날씬한 식도(式刀)를 찬 그 멋들어진 맵시는 딸을 둔 그 착한 부친의 숨결을 편케 하기에는 너무도 감당못할 만큼 매혹적인 것이었다.
<데레사>는 기숙사에 들어간 뒤로 자기와 동성동갑(同性同甲)인 그 사촌이 그 절망한 애인의 쪽지를 살짝 쥐어주던 일도 오랜 가책이 따르던 짧은 밀회도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수녀가 될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