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부를 만나고 나서부터 「성영」(聖咏)이 나의 마음을 다시 일깨웠다. 나의 중학교 시절에 어느 목사님이 내게 「신약」 한 권을 주었는데 그 「신약」의 끝에 「구약」의 「성영」 1백50편이 붙어있었다. 그때부터 「성영」이 내가 애독하는 책이 되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 <단테>의 「신곡」을 보는 것도 같았고
의 시를 읽는 것도 같았다. 20년 나머지 「성영」을 음악화하려는 생각은 한 번도 가진 일이 없었다.
어떠한 한가지 재조가 있어 그것을 어떠한 일에 바루히하려고 할 때 참으로 어떠한 우연 아닌 우연과 옛이야기 같이도 않은 옛이야기가 반듯이 있는 법이다! 나는 사람의 힘이 하늘의 뜻을 미리 짐작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이 「성영작곡집」 안의 일체가 모두 우리 조상의 조상이 태워 준 것이다. 4·5천년 내려오면서 「중국」음악 안에 쌓이고 쌓인 것에다가 최근 수 세기 이래 진화 발전 중인 음향학(音響學)상 연구를 보태서 이룩한 것이다.
「樂者天地之和也」(음악이란 우주의 조화(調和)이다)
「大樂_天地同」(위대한 음악은 우주와 한 가지로 울린다)
수천년 전에 우리 선현(先賢)이 이 진리를 이미 말해냈다. 과학만능의 오늘날이라도 나는 이 말을 깊이 믿고 따른다.
나는 「중국」음악이 적지 않은 결점이 있음을 아는 동시에 오히려 이 결점 때문에 「중국」음악을 더욱 아끼는 바이다.
나는 차라리 과거 반평생 동안 추구하던 정밀한 서구 음악 이론을 부정하고서 이 귀중한 결점을 보수하여 그것을 내가 다시 창조하리라.
나는 「중국」음악의 「전통」을 깊이 사랑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통」을 일종의 「유물」(遺物)로 생각할 때 나의 마음이 크게 상함을 느낀다. 「전통」과 「유물」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물건이다. 「유물」은 일종의 골동품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것이 아무리 이상하고 재미있어도 그 가운데는 피도 없고 생명도 없다. 「전통」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전통」이 이제 숨이 넘어가고 있는 오늘날이라도 아직도 그 정신-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이란 원래 창조성이 있다. 과거의 천재들이 「전통」을 근거로 무의식 중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그 「전통」에 보탠 것 같다. 오늘 우리도 모름지기 새로운 요소를 창조하여 이 「전통」을 더 보태야 할 것이다.
「金_也者始_理也·玉_也者終_理也」(중국 고대 관현악은 금속 악기로 시작하여 옥으로 만든 악기로 끄친다)
「始如也如, 鏇之_如격如, 繹如也以成」 시초에 모든 악기가 일제히 소리를 내고 그 곡조가 느리고 낮은 협화음으로 변하여 해가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것같이 밝아지면서 이어감으로써 마친다)
공맹(孔孟)의 시대에 이미 「중국」 고유의 대위법(對位法)과 대관현악법(大官絃樂法)의 원리(原理)가 있음을 발견하고 나는 마음의 의지할 곳이 있음을 깨닫고 이것이야 말로 음악가로서 머리를 묻고 애쓸만한 대사업임을 인정(認定)했다.
중국 음악은 한 조각의 잃은 대륙과 같아 우리가 탐험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과거 반평생 동안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기 위하여 「인상파」 「신 고전파」 「무조파」(無調派) 「기계파」 등등 일체의 근대 작곡기술을 편력했으나 지나침이 모자람만 같지 못하여 내 자신까지도 떠메다가 해부대 위에 올려 놓으려는 위기에서 나는 황홀히 크게 깨달았다. 추구(追求)하기란 아무래도 내버리기만 같지 못하니 나는 내 자신에 철저해야 하겠다!
과학 만능의 사회에 있어서는 참으로 인간들이 자기 자신 잊게된다.
사람들은 줄곳 「모름」(未知)을 탐구하여 그 「모름」을 「자기」와 같이 만들고 나서는 또 「자기」를 다시 「모름」으로 만든다. 이러한 순환(循環)은 영원히 끝이 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사실은 예술의 대도(大道)가 머리를 들면 보이는 「하늘」과 같아 「앎」(知)도 없고 「모름」도 없고 오직 저대로 유유(悠悠)하게 나타나 보일 따름이다.
보통으로 교회 음악은 태반이 시사(詩詞)를 가지고 선률(旋律)을 설명하는데 이제 내가 계획하는 것은 선률로써 시사를 설명하는 것이다. 음악을 가지고 언어의 내용을 순화(純化)하려면 한칭 더 높은 단계에서 이 선률이 일체의 언어 장벽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여 인류의 마음 속으로 바로 스며들어가게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믿건대 중국의 정악(正統雅樂)은 원래 이러한 구심력(求心力)이 있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나오려고 할 때 우연한 동기가 있음을 면하기 어렵다--주재(主題)와 옛이야기가 연이어 발생한다. 그러나 예술가 자체는 아무리 해도 자기를 속일 수 없다. 즉 <다빈치>의 완성된 작품 가운데도 예술작품 고유의 거짓된 사실이 그 안에 있음을 나는 항상 느낀다. 그러면 일체의 음악 작품에 있어서 그런 일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그저 내가 능히 할 수 있음을 다하고 천명(天命)을 기다릴 따름! 푸른 하늘을 대하여 나는 내 자신을 듣노라. 맑은 하늘을 대하여 나는 내 자신을 비치노라. 표현의 전개(展開)와 종지(終止), 현실적인 회귀(回歸)와 흥기(興起), 일체에 도모지 그 자기(自己)가 없다.
그렇다, 나는 내 자기를 철저히 버려야 하겠다. (1947.9.江文也)
<강 문야>(江文也)는 「대만」의 「담수」(淡水) 태생으로(1910) 「동경」음악학교에서 6년간 작곡을 전공하였다. 그는 중국고대 정아악(正雅樂)과 유교(儒敎)의 악리(樂理)를 연구하였고 각 시대 선률(旋律)의 특징과 성격을 분석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시경」 「악부」(樂府) 「당시」 「송사」(宋詞) 등에 그 선률을 붙인 수가 5백을 넘는다.
특별히 「공묘대성악장」(孔廟大成樂章)은 「주조」(周朝)시대에 「기천악」(祈天樂)을 연구하고 「당조」(唐朝)의 아악을 참고하고 「명조」(明朝)와 「청조」(淸朝)의 「석전악」(釋전樂)을 고려하여 거의 사라져 버리게 된 「공묘대성악육장」(孔廟大成樂六章)을 근대의 관현악기로 연주되도록 편곡하여 세계 음악계에 공헌한 바가 크다. 또 1936년의 「베르린」 「오림픽」 때에 「대만무곡」(台灣舞曲)을 발표하여 세계 수준에 올랐다. 원래 「프로테스탄트」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게된 이 음악의 천재는 「그레고리안 성곡」(聖曲)의 고대 중국 음악과의 공통성으로 말미암아 귀정하였다. 그 후 그는 「성영」 1백50편의 작곡을 결심하여 드디어 「성영작곡집」 다섯권을 완성했다. 「베르기」의 「전국 교구연합음악협회」 장 <율리우스 봔뉴펠> 몬시뇰은 일찌기 다음과 같이 평했다.
「라우다떼 도미눔」(성영 117)은 문제 없이 깊은 인상을 주는 작곡으로서 그 울림의 효과--echo effect-가 특별히 주목할만 하다. 또 그 장엄하고 위대한 악구(樂句)-Musical sentences-의 반복은 <헨델>을 회상케 한다. 그러나 이 중국 작곡가는 그 숭고한 경천(敬天) 특성 때문에 <헨델>보다 더 우월하다.
「기리에」(성영 51)도 완전한 독창(獨創)으로서 그 소박한 내용이 「로시아」의 고대 선률을 듣는 것 같다.
여러모로 보아 우리는 이제 진정하고 통속적인 종교음악가를 가짐을 승인 아니할 수 없다. 위에 말한 바 그 두 곡만으로도 오늘날 「구라파」 각국에서 유행하여 우리 심정을 상하게 하는 무수한 종교음악보다 훨씬 월등한 것이다……』
<강 문야>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란 우주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감상하고 좋아할 수 있으나 그 가운데 머금어진 민족적으로 특수한 표현력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 있어서 가톨릭 음악의 세계성이 나로하여금 가톨릭에 접근케 하였다』
다음에 소개하는 그의 「성영작곡집」 첫 권의 발(跋)이 우리나라의 가톨릭 지성에게 주는 암시가 클 것이다. 또 무릇 예술을 지향하는 인사이면 외교인이라도 깊은 감명을 받을 것이다. 전통을 살리자! 천주 흠숭을 위하여!
江文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