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낫셀 敎勢(교세) 擴張(확장)에 열중
共産(공산)에는 애매한 태도로……
아랍共(공)·新生阿(신생아)·其他(기타) 亞阿州(아아주)
발행일1960-10-23 [제251호, 2면]
【카이로=파트리크 오코너 신부 記】 <아브델 낫셀> 대통령이 영도하는 「카이로」는 비단 「에집트」와 「씨리아」공화국의 수도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게 견주어지는 끊임없고 직접적인 활동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상지역은 대략 중복된 3개 집단으로 구분된다. 즉 (1) 모든 나머지 「아랍」국가 (2) 새로 족입하거나 또는 독립을 목전에 둔 「아프리카」지역 (3) 「아후로 아세아」(=亞·阿州)지방이다. 이러한 지방에 거주하는 인민들에게 「카이로」로부터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활동은 주로 정치적이며 회교도의 강력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카이로」에 있는 「알 잘」의 「모스렘」대학은 종교를 통하여 다른나라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수석기관의 하나이기도 하다.
정치노선은 때때로 좌경으로 기울기는 하나 중립적이다.
그러나 지배적인 견해로는 그 지도권이 「와싱톤」, 「런던」, 「파리」보다는 훨씬더 「모스코바」나 「페킹」이 가깝다고 보고있다.
<낫셀> 대통령은 모든 「아랍」국가주의를 설득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는 비록 갈려져 있을망정 종국에 가서는 반듯이 통합될 것이라는 것을 주입시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것이라는 것을 장담하고 있다. 1958년의 통일 「아랍」공화국의 임시헌법에 의하면 이 나라의 국민은 「아랍」국가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 해외로 방송되는 「카이로」 「라듸오」도 『아랍인의 소리』라고 제명하고 있다. 또한 <낫센> 대통령은 현재의 통일 「아랍」공화국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여하한 「아랍」국가도 하시를 막론하고 환영하는 바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아랍주의』라는 용어는 공식 성명서에도 더욱 정치적 박력이 있게 들리는 『아랍국가주의』라는 말과 대치되어 사용되고 있다.
「아랍」세계를 통하여 <낫셀> 대통령은 많은 찬미를 받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아랍」지도자들이 항상 그의 눈안에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투니시아」공화국이나 「욜단」왕국의 통치자는 「아랍」이고 회교도이면서도 「카이로」와는 공공연하게 미묘한 관계에 있다. <낫셀> 대통령은 자기의사대로 「카이로」가 모든 「아프리카」독립운동의 총본부가 될 것이라는 심정을 더욱 굳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통일 「아랍」공화국 정부의 승인과 지지를 얻고 「우간다」 「켄야」 「루안디 우룬디」를 포함한 반타(半打)가 넘는 「아프리카」국가들의 호전적(好戰的) 조직체들이 이곳에 항구적 본거를 가지고 있고 그들 지도자들은 마치 외교관과 같은 공적 임무를 지닌 것과 같이 대우를 받고 있다.
이들 중에는 지난 1월에 발족한 「카메룬」의 독립정부에 대하여 유혈 폭동을 일으킨 바 있는 『「카메룬」인민연맹』의 친공적 지도자인 <헤릭스 무미> 박사도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이 국가주의자인 「아후로 아세아」 중에는 <낫셀> 대통령도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대열에 간주되 있다.
1955년에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바 있는 「아세아 아프리카」대회에도 그는 참석하였다. 「카이로」의 벽(壁) 마다 「인도」의 <네루> 수상과 「인도네시아」의 <스카르노> 대통령의 초상화가 아직도 걸려있다. 「아후로 아세아」인민 결속조직(結束組織)은 1957년 「카이로」에서의 공산주의자-전선(前線)에 의해서 발족하였다.
오늘날 「아랍」공화국 정부는 동조직의 항구적인 작전을 허용하고 있으나 그안에 공산주의 요소를 억제하는 자유는 주지 않고 있다.
결국 「카이로」의 포부는 손쉽게 「아랍」국가나 「아프리카」, 「아후로 아세아」정부 내의 장해인물이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미묘한 문제는 언제나 공산주의자들을 『친구』로서 대우하고 「모스코바」의 흥미꺼리가 되는 모든 문제를 위하여 그들을 유효적절히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