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萊(동래) 갈멜수도원 찾아
천주께만 담화하는 세상
내부 수리코 하루 개방
발행일1960-10-23 [제251호, 3면]
【東萊=釜山支社 朴相秀 記者 發】 담너머 있으면서 딴세상, 한번 들어가면 영영 볼 수 없는 곳, 내 평생을 천주만을 위해 바친 영혼들이 사는 곳 이런 곳이 지난 10월 3일 천만 뜻밖에도 단하루 그것도 불과 7시간 우리에게 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교우들의 성금으로 금년 2월부터 시작한 이곳 「하자없으신 성모성심과 성요안 갈멜」 봉쇄수도원이 내부 축성식을 하고 부산교구장 <요왕> 최(崔再善) 주교의 윤허로 하루동안 우리에게 공개되었다.
기도와 묵상 기도와 극기로 시작하여 끝맺는 생활 그것은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로하고 생각하고 그 보상이 이루워지길 빈다.
하루의 일과는 묵상기도로부터 시작된다. 아침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성당의 종소리는 산울림처럼 메아리되어 물결친다. 촌각(寸刻)도 어김없이 검은 곳으로 푹둘러싼 열두쌍이 천천히 그리고 엄숙히 나타난다.
「미사」 5분전 대기실에서 준비기구를 마치고 2분전 줄지어 성당으로 들어간다. 성당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마루바닥 뿐이다.
철창(鐵窓)으로 제대를 가리우고 달빛 속에 그림자처럼 신부의 「미사」 관경마저 차려볼 수 없을 정도다. 성체를 영할 적에도 신부를 볼 수가 없다. 조금한 창을 내어 순서대로 염한다.
한번 봉쇄하면 부모형제들의 얼굴마저 평생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이 수도원 규칙이다.
식사란 한조각의 「빵」을 손에 쥐었을뿐 한식(韓食)을 할적에도 평생 소죄를 지켜야 한다. 심지어 9월 14일부터 망부활까지 대제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침실은 각자 독립되어 불과 여섯자 한평 정도로 비좁은데 판자로 만든 침대를 놓으니 겨우 사람이 드나들 정도다. 무더운 여름이나 손발이 얼어붙는 차디찬 겨울밤에도 침구는 여이불 하나뿐이다. 자신들의 침실엔 상본 하나 없다. 초라하게 정리된 길삼바구니엔 가위하나 실꾸리 하나에 바늘 하나, 헌베 토막이 담겨있고 그옆엔 몇권의 책이 정돈되어 있을 뿐 이 책도 국한되어 있다. 『준주성범 우리규칙 성경책 회헌』 원장수녀 허락으로 교회서적을 읽을 수 있는 것 뿐이다.
휴게실 문을 열어보았다. 찌그러진 의자 하나 눈에 띄이지 않은 마루바닥… 책 한권 없는 휴게실 앉고 싶어도 앉을 의자마저 없는 휴게실, 그저 서서 그것도 몇분간 침묵 속에 휴식한다. 집회실도 마찬가지다. 꿇어앉아 회의를 한다. 모든 것은 고심극기로서 세속에 물든 죄악을 대신 보속하려는 것이다.
네분의 외부수녀들에 의하여 식량과 모든 것이 보급되고 외무가 처리된다.
『언제까지 개방하시는지?』하고 조용히 물었다. 『축성식이 끝날때까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기자는 시계를 응시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불과 2시간 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만은 주교님이 특별관면으로 해지기까지 허락해주실 것 같읍니다.』라고 대답하는 원장수녀의 얼굴엔 미소가 어린다.
무엇엔가 언눌리듯 손하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눈길만 돌리다가 어느듯 마지막 야속 시간이 다가왔다.
으레 있어야 할 『잘가라』란 소리도 들을 길 없고 거기 고요히 미소가 머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