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를 만든 사람] (6) 심리학·정신분석학자 카알 구스타브 융그(Karl Gustav Jung)
발행일1961-07-09 [제286호, 2면]
■ 생애
「스웨덴」의 심리학 정신병리학자 1875년 7월26일 「스웨덴」의 「콘스탄틴」 호반(湖畔) 「케스윌」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6세 때 이미 「라띤」어를 완전 해독하고 고고학자(考古學者)가 되기를 희망하였으나 의학을 전공했다.
<융그>는 「바젤」대학 「주리히」대학 그리고 「파리」에서 의학을 연구하고 처음에는 신경학(神經學)을 전공하다가 후에 심리학 분야로 진출하여 그때까지 외곡(歪曲)되히 신봉(信奉)되어오던 많은 개념을 새로 규정하면서 정신병 학자로서 대성했다. 1905년부터 13년까지 8년간 「주리히」대학의 강사로 근무, 또 「쿠스나흐트」에서 정신병임상의(精神病臨床醫)로서 활동했다.
1944년 「바젤」대학 교수로 있다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70세 때에 은퇴하여 「스웨덴」의 「주리히」 호(湖)의 「쿠스나흐트」 별장에서 사색하면서 회고록을 완성하였다. 1961년 6월6일 동 별장에서 향년 85세로 사망.
■ 사상
<프로이드>, <아들러>와 같이 심리학에 있어서 삼대가(三大家) 중의 하나이며 그들 사이에 전개되었던 불화(不和)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융그>는 <프로이드>의 제자이긴하나 <프로이드>가 무의식의 제1동인(動因)을 성욕동(性慾動) 또는 「리비드」라고 하였고 <아들러>는 이것을 열등감을 극복하는 능력으로 발전시켰으나 <융그>는 무의식(無意識)을 두 개의 계층(階層)으로 갈랐다. 즉 비교적 표면적인 한면에서는 「리비드」와 아주 야망적인 면보다는 강력한 욕동(慾動)을 나타내었고 다음 한면에서는 원력(原力)과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集團的無意識)을 인식시켰다.
<프로이드>처럼 「꿈」(夢)과 무의식에 관하여 연구하고 신경증(神經症)의 본질(本質)을 환자와 그 환자가 처해 있는 환경과의 부적응(不適應)에서 탐구한 <융그>는 또한 사람의 성격을 내면과 외형의 2형(2型)으로 분류한 것이 유명하며 이것은 그의 심리적 유형설(心理的類型說)의 골자가 되고 있다.
문명이 사람들의 육체적 질병은 극복했으나 반면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복잡한 정신적 질병의 급증(急增)을 초래하였다고 믿은 <융그>는 지금 정신병원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정신분렬증(精神分裂症) 치료 등 오늘날과 같은 완성의 초석(礎石)을 세웠다.
■ 비판
<융그>에 있어서 그의 경쟁자들이 구성한 체계(體系)란 인간의 행위(行爲)의 설명 이외에는 아주 협소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정경(情景)을 성상징(性象徵)으로 만들며 인간의 영혼을 약점(弱点)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성상징(性象徵)을 너무 강조하는데 반기를 들어 분석심리학의 체계를 세운 <융그>은 우주(宇宙)의 무한성(無限性)과 또 인간과 그들이 신봉(信奉)하는 신(神)과의 관계에 미치는 광범한 개념(槪念)을 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