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宗者(개종자)는 말한다 - 우리生活(생활)이 傳敎(전교)
傳敎會日(전교회일)을 맞아
발행일1960-10-23 [제251호, 4면]
천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여러가지다. 오늘에 와서는 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의 하나로써 또 중대한 또 하나가 덧붙게 되었다.
즉 천주를 믿는 사람들의 생활 그것이다.
현대인은 종교적 서적을 읽을 시간의 여유가 없다. 강론을 듣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생활을 통해서 종교적인 것에 관심을 찾는다. 그러기에 가톨릭신자는 개개인(個個人), 천주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의 산 복음이다』 이상은 철학자 <쟉 마리땡>의 말이다.
서강대학(西江大學) 교수 박갑성(朴甲成)씨는 그의 편역(編譯) 『20世紀의 宗敎者들』에서 우리의 개종(改宗)에 대한 관심이 『어떤 당파적(黨派的)인 심정에서 자기 편의 수효가 늘어가고 더욱이 고명(高名)하고 우수한 인사들이 자기네의 종파(宗派)에 가담하는 것으로 인하여 세력이 강해진다고 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진리의 문제이며 가톨릭은 진리이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가톨릭의 진리가 이런 유명한 개종자들을 가지고 증명하려고도 생각지 않는다』라고 했다.
전교회주일을 맞는 우리는 우리의 생활 -표양(表樣)이 천주와 멀이 있는 사람들께 어떻게 관심사(關心事)로 되어있는가?
현대 가톨릭작가(作家) <그레암 그린>의 개종(改宗) 이야기는 <마르땡>의 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린>은 1904년 10월 2일 영국에서 났다. 「옥스포드」를 졸업한 그는 얼마동안 「담배」회사에 근무하다가 「날팅감 쟈날」지(紙) 기자로 있게되었다.
당시가 「멕시코」에서 <가이에스>의 교회에 대한 박해가 있은 때이다. 신문기자인 그는 「멕시코」에 특파되어 박해를 당하는 정경을 모조리 보고 다니었다.
숨어 싸우면서 신앙을 지키는 교우들, 일반가정에서 몰래 바치는 「미사」 , 자동차고(自動車庫)에서의 고해성사, 신앙을 위해 생명을 헌신짝같이 내어던진 용감한 신부들, 「마리아의 딸」이란 단체 소속의 천진만만한 처녀들이 신부를 대신해서 「성체」를 들고 다니는 모습, 숨어 「미사」 드리는 신부를 도우는 모습, <그린>은 마음에 무엇인가 충격을 받았다.
신앙을 굳게 지켜내는 신자들,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확고한 증명인 순교에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신부들과 매일 접촉한 <그린>은 『이와같이 굳건한 신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마음은 감격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조곰씩 나의 생활태도를 바꾸어 교의(敎義)에의 인식을 깊이할 것을 결심했다』고 그는 말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트로롶> 신부와 친하게 되고 3개월간 신부와 종교를 이야기하고 마침내는 1926년 2월 그 신부로부터 영세받았다. 그가 입교한 것이 가톨릭인(人)의 생활 특히 종교박해를 받으면서도 굳굳한 것- 이것에 그는 감동되었으리라. 물론 이외도 원인이 있겠으나.
<마르땡>의 말을 뒷받침하는 또하나의 예가 미국에 있었다.
「하바드」대학 고생물학 교수 <루이스스탄스>씨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을 때 신문기자에게 그는 『아이들의 사랑이 우리를 진리에로 이끌었읍니다』라고 했다.
그와 그의 부인의 개종이야기는 한 사람이 천주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탐구(探究) 이외에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범이 개종의 발단이라고 확인되었다.
<스탄스> 교수는 「카리포니아」주에서 사는 동안 몇곳의 수도원을 보았다. 『수도원을 감싸고 있는 성스러운 분위기는 우리를 사로잡았다』라고 그는 술회했다.
그들의 자녀들이 이름높은 「노틀담」 학원에 다녔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서 배운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과 기쁨으로 체득(體得)한 종교의 여러 원리의 논리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도 이야기했다.
그의 어린 것이 「소아마비」를 앓는데 교수부친 임종때를 그는 『나의 아버지는 가톨릭신자가 아님에도 가톨릭친구들은 아버지 머리맡에서 열심히 기구했다』라고 추억했다. 이와같은 어려운때 교우가 주는 정신적 도움은 확실히 심리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사랑과 「휴마니즘」이란 관점에 서서 종교를 생각케 했으리라.
그들은 「안트 바」로 이사했다. 여기서 그들은 진정한 천주의 친구 <시뷘스키> 신부를 알게되었다. 이 신부는 학문이나 지성이 같이 훌륭했다.
『나는 이 신부 앞에 나아가면 깊은 겸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성실 인내, 친절 앞에는 저절로 숙여진다』고 교수는 말한다.
진리의 빛은 이들 이성(理性)을 비추고 <스> 신부에게 가르침을 청하게 했다.
신부는 교의(敎義)를 조용히 객관적으로 가르쳐주었다. 성서에의 그 가르침의 원천이 있음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한번도 우리의 개종을 재촉하지 않았다. 도리어 신부는 감정에 지배되어 조급한 결단을 내리지 말도록 주의까지 시켜주었다』라고 되풀이 했다.
이 사실들은 그야말로 더 이상없는 「휴마니즘」이다.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사랑과 휴마니즘」을 가르치셨다.
우리도 올바른 「휴마니즘」과 「사랑」으로 남의 친구가 되고 표양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들의 말한마디, 행동의 하나하나, 생활태도, 환경은 이웃친구들의 계속되는 관심속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