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다시 宗敎迫害(종교박해)?
많은 家庭(가정)에 聖像(성상)
蘇(소)·집단 農場(농장)의 종교 實情(실정)
信仰熱(신앙열)은 漸高(점고)
발행일1960-10-30 [제252호, 2면]
쏘련과학 「아카데미」는 최근 쏘련의 집단농장에 속하는 농민의 생활과 신앙에 관한 조사를 단행하였다. 장구한 세월에 걸쳐 쏘련은 집단농장의 농민이 진보적이며 대담하게 전도를 내다볼 줄 아는 사람들로서 공산주의사회건설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고 선전해 왔기 때문에 同과학 「아카데미」가 위와 같은 조사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쏘련의 당국자들도 그렇게 선전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인 줄을 깨닫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들은 쏘련 농민의 실태를 알기 위하여 4개 주에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조사대상이 된 곳은 「시베리아」나 극동과 같은 원격(遠隔)한 지역이 아니고 「모스코바」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사상적 정치적인 조직이 꽉 짜여진 지방 즉 「카리닌」 「코스트르마」 「고리까」 「야로스타후」 등 4개 주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영세
조사내용은 아직 자세히 발표되어있지 않으나 최근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공산주의자」지에 그 골자가 개제되었다. 이에 의하면 조사단은 다대수의 농민이 아직도 가정에 성상을 걸어놓고 있다는 점과 종교적인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지내고 있음을 발견하여 크게 당황하고 있다 한다.
공산주의자지에 이 기사를 쓴 3인의 조사단원은 그중에서도 성상숭배(聖像崇拜)를 아무해(害)도 없는 시대 착오라고 무시해버리기에는 위험하다고 말하였다. 성상은 촌락의 무신론자나 당활동가의 집에서까지 종교선전에 사용될 위험이 있는데 하물며 신자들의 가정에 비치해 두는 것은 자녀교육상 좋은 일이 아니다.
따라서 농민들에게는 성상은 백해무익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무신론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자녀들의 영세도 간과(看過)할 수 없다. 조사단은 영세가 쏘련 농민의 생활 속에 뿌리깊게 살아남아있음을 발견하였는데 살아남았다고 하는 것 보다는 되살아났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는지 모른다. 1920년대 특히 30년대에서는 세례가 쇠퇴일로에 있었으나 전쟁시중에서 전후에 걸쳐 그와같은 경향은 역전하였다. 이것은 조사지역의 거의 전부가 전시중 독일군에 점령되지 않은 지역이었음에 비추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전시중 그리고 전후에 출생한 아이들의 대부분은 영세를 받았으며 영세를 받지 않은 자는 「인테리」 나 진보적인 집단농장 농민이 자녀들뿐이었다.
未信者 子女 영세 極히 增加
조사결과 신앙을 갖고 있는 부모들 뿐만 아니라 세례를 받은 일이 없는 부모나 또는 아무런 신앙도 없는 부모들까지도 자녀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교우인 노인들이 거기에 큰 역할을 다하고 있음은 말할여지도 없다. 노인들은 손자가 영세를 받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자기의 손자를 돌보아 주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다. 농촌에는 탁아소(託兒所)가 적으며 아이의 모친이 농장에라도 나가고 없으면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은 결국 친모 이외에는 없게 되기 때문에 조모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이다. 조모의 감화(感化)는 영세뿐만 아니고 아이들에게 기도를 시킨다던가 십자가의 「목걸이」를 달게 한다던가 교회에 가게한다던지 신앙비화(信仰秘話)를 들려준다던지 하는데도 나타나고 있다.
젊은층이 좋아해
그렇다고 아이들이 세례를 받다는 것은 조부모가 양친을 설득(說得)시켜서 그렇게 하게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옳지 못한 것이다. 젊은 세대가운데서도 그와같은 습관을 좋아하는 자가 얼마던지 있다.
그들은 이 습관을 버리지 않고 지키려고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종교에 접근하여가고 있다. 공산주의자지는 『영세를 받고싶은 동기가 어디있던지간에 영세에는 언제든지 종교심과 이질(異質)의 사상이 따라다닌다』고 말하였다. 조사에 의하면 종교의식에 따른 결혼식도 전후 부쩍 불었다 한다. 조사단원은 「카리닌」주의 어떤 지구에서 집단농장 농민들로부터 신전결혼(神前結婚)이 최근 유행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장례식에서도 종교예식을 따른 것이 일반적이며 종교적 색채가 없는 장례는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조사단은 보고하고 있다. 종교색채 없는 장례는 장엄치 못하으로 유족(遺族)이나 친족들은 전통적인 종교의식에 의지하고 있다. 조사단은 각 지방에서 각각 종교상의 첨례날에 일을 쉬는 습관을 지키고 있음에 대하여 심각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쏘련전역의 농촌에 있는 공산당 조직에 대한 일대암이여 조사단도 이점에 주력하여 조사하였다.
生産에도 影響주는 첨례날
이와같은 종류의 휴일이 있는 이유는 이 지방의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인첨례 「미사」를 지내기 위한 것인데 촌락에 따라서는 그 날자가 다르다.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농업계획이야 달성되던 말던 어느 부락이든지 휴일에는 반듯이 휴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2·3일 계속해서 휴식하며 집단농장의 생산에 상당한 지장을 줄 때도 있다. 집단농장 농민의 총회에서는 때때로 이와같은 종류의 휴일을 폐지하자는 결정이 내리곤 하나 그날이 오면 모두가 전과 다음없이 일을 중지하고 막대한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미사」에 참례한다. 조사단은 술주정뱅이를 많게 하고 공공질서를 문란케 하는 이와같은 종류의 축일을 폐지하기 위하여 일단 계몽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과학 「아카데미」 조사단은 전기 4개주에서 신자에 대해서만이 아니고 젊은 세대의 무신론자들의 실태도 면밀히 관찰하였다. 조사단은 그 결과에도 불만투성이었던 모양이다 그 이유는 젊은 무신론자 가운데는 단순하고 소박한 무신론자와 단순하고 무지스러운 무신론자가 많이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조사단은 『젊은 세대를 무신론세력으로 간주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들이 현대의 종교적 잔재의 반동적인 본질을 거의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