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政治 氣象圖
東西 「베르린」은 現狀態를 維持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당면한 세계문제를 줄기찬 역사에 빛쳐볼 때 어느 때보다 아슬아슬한 위기(危고)에 처해있느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하겠다. 오늘 세계문제의 가장 큰 특색은 어느 한 곳 한 대륙의 소란(騷亂)이 그 지역에 그치지 않고 즉각 그로조차 심대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과연 세계는 진통을 겪고 있다. 그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적화(赤禍)에 기인한 것이다. 또다른 현대 위기의 특색은 가령 3차대전을 유발시키는 경우 가공(可恐)할 파괴를 예견(豫見)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천주의 섭리(攝理)하심에 의탁하지 않고서는 절망감(絶望感)을 감당할 수 없다.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려는 세력과 「전쟁」과 「혼란」을 이르키려는 세력과 힘(努力)의 대결(對決)을 하고 있음을 본다. 그 대결의 양상(樣相)을 다음 정세의 추이(推移)에서 관찰해 갈 수 있다.
■ 蘇·北韓 條約
(1) 쏘련 공산 북한간 동맹이 체결되었다(7월6일). 이 군사동맹은 북한의 영토가 침략 당하는 경우에 대비하는 상호방위조약(相互防衛條約)이며 이 조약은 궁극적인 통일시에 적용된다는 단서(但書)를 붙여두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거니와 한국전쟁 당시 쏘련의 「미그」 전투기를 비롯한 다른 무기가 직접 공급된 것인데 여기 새삼스런 감을 준다. 여기 두 가지 뜻이 있음을 상상키에 어렵지 않다. 그 하나는 지금까지 쏘련은 한국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오던 그 태도를 변경한 것이다. 다음은 「워싱톤」의 관측인 중공과의 암투(暗鬪)를 표면화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사실로서 최근 쏘련은 「유고」를 시켜서 「알바니아」로 하여금 중공과 국교를 단절하도록 종용한 사실이다. 「알바니아」는 중공으로부터 상당한 경제원조를 받고 있다.
■ 美·日間 友好
(2) 최근 일본수상 <이께다>씨의 「워싱톤」 방문은 단순한 의례적인 것을 갖춘 것은 아니다. 3일간의 정식회담을 끝마친 <러스크> 국무장관은 지금까지 없었던 강력한 우호(友好)관계를 증진시켰다고 했다. 동 공동성명에도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아시아」에서 야기될 장래사태에 대해서도 완전한 합의를 보았다고 했다. 공산중국에 관해서 상당히 논의되고 또 양국의 기본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상상키에 어렵지 않다. 그 중요 내용은
①핵실험 금지에 효과적 감시제도와 조정책을 강구할 것.
②자유무역 정책을 취할 수 있다.
③무역 경제문제에 각료급의 공동위원을 구성할 것. 교육·문화 및 과학분야에서도 같은 위원회를 설립한다.
④발전하고 있는 중의 국가를 원조하기로 강조한 것 등이다.
■ 유엔 高位席
(3) 오는 가을 총회를 앞둔 「유엔」 내부의 세력 다툼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유엔」의 요직(要職)에는 백명 이상의 쏘련시민이 종사하고 있고 「아세아」 「아프리카」인에게도 상당의 수 「포스트」를 주어 지리적 불균등(地理的 不均等)을 막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불평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8인 위원회에 달려 있다. 여기에는 사무총장의 직능과 그들은 사실상 동서로 분립되어 있다. 예산정책에도 상당한 불화가 있다. 현 사무총장 <함마슐드>씨는 여전히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쏘련의 생각은 「서방」 「공산」 「중립」으로 구성된 3인 대표위원제(代表委員制)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오는 총회를 목전에 정동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유엔 건물 및 회의장소를 「뉴욕」으로부터 「비엔나」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데도 상당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 精神上 統一 공동의 적 앞에는 「프로테스탄트」의 協調
伯林의 가톨릭
서 「베르린」 시민의 불안은 「베르린」이 동서 접촉의 지점(地点)으로 현 상태를 지속하느냐 혹은 공산측에 의해 강점(强占)당하느냐 하는 기로(岐路)에 있다.
그 누구보다 서 「베르린」 안에 거주하는 27만6천 가톨릭 신자들의 불안은 더욱 절실하리라 그들은 공산치하의 생활상태와 종교자유의 실정을 샅샅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쏘비엗」 점령 하에 있는 가톨릭 신자의 총수는 약 백10만으로 본다. 1958년 양지대의 가톨릭 신자대회를 가진 바 있었다. 그 후 「베르린」에서의 공식적인 동서 가톨릭 회합은 없었다. 할수도 없었다. 동독의 「오림픽」 참가자가 있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에게 주신 <비오> 12세 말씀이 새롭다.
『(베르린의 현상태는) 민족 분열의 상징이며 이 가운데 오직 통일은 비록 외부적으로는 분열되어 있으나 당신들 전부를 하나로 결속시켜 줄 최고의 진리를 높임으로 이루어지겠다』
독일은 객관적으로 분단되었으나 이런 때일수록 오직 진리로서 정신적 통일을 장만할 수 있다고 말한 <비오> 12세의 교훈을 그들은 거듭 뇌이고 있다. 지난 3월 「베르린」 주교 <되프흐너> 추기경은 「쏘비엩」쪽 독일신자들에게 향하여 그대들이 공동의적 공산무신론에 대항할 때는 「프로테스탄트」와 협조하라고 호소했었다. 그러나 동 「베르린」의 실정은 종전 후 최대의 교회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베르린」 전시(全市)의 운명을 좌우할 다음 단계를 기두리고 있다. 냉전(冷戰)의 연내의 촛점은 이곳일 듯.
■ 精神을 優先
수술하는 아픔 참고 구악(舊惡) 도려내자
혁명 후 처음 개최된 각 도문사 국장회의(7일)에서 문문교장관은 4대 문교정책을 밝혔다.
동 4대 정책은 「간접 침략의 분쇄」 「인간개조」 「빈곤타파」 「문화혁신」 등인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문교정책 면에서 논의되는 정신적인 것이다. 여러 차례 언급한대로 이번 군사혁명의 가장 중요한 과업의 하나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질서」에로의 복귀(復歸)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술하는 아픔 참고 구악(舊惡)을 도려내자』 이런 슬로간을 크게 내세웠었다. 이제 혁명의 제1단계는 지났다고 당국은 말하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인 재건(再建) 단계에 들어서되 그 방법으로 민심수습과 그 안정(安定)의 방향으로 나갈 것을 선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