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5)
발행일1960-10-30 [제252호, 4면]
<데레사>가 돌아온 후로 온 집안이 전보다 깨끗해지고 더욱 정돈되었다.
그는 살림살이에 실속있는 일을 앞세웠으나 식구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의 부친은 물론 동기들까지도 이때처럼 편해본 적은 없었다. 그가 없는 이태 동안을 주부없는 이 큰집 살림을 어떻게 해왔는지 알 수가 없다 부친을 극진히 봉양하고 많은 동기들을 알뜰히 보살피느라고 그는 자기의 시간이 늘 부족했으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틈틈이 그가 펼치는 정책이 이제는 기사소설이 아니라 「성 예로니모 서간집」이었다.
당시 「스페인」은 성직자의 악덕과 폐습을 공격하는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에 휩쓸리고 있었다. 특히 지성인들 사이에 지지자가 적지 않았으나 그의 반정통적(反正統的) 태도를 미워하는 편도 많았다. 「살라만카」와 「알칼라」에서 대학생들이 두패로 갈라져 논쟁이 벌어지면 칼을 뽑아 서로 겨누기가 일수였다.
그런가하면 영적(靈的)으로 『밝은 깨달음』(光覺)의 삼매(三昧)에 들어가면 소죄도 일어날 수 없으니 구원이 오로지 기도에만 매였다고 주장하는 「알룽부라도스」의 신비주의가 돌아다녔다.
<데레사>가 그러한 이단 사상에 조금도 물들지 않았음은 그가 어렸을 때 「성인전」을 통해 얼핏 엿보았던 천당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비끄러진 법으로는 천당에 이르기가 확실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로니모> 성인의 교훈에만 마음이 쏠리었다.
『안일한 생활에만 젖어온 나는 수도원의 구속적인 생활을 감당못하리라』 이러한 유혹에 『결심』이 흔들리기도 했고 자기가 온 집안의 중심이 된 오늘날 아버지를 저버리고 출가(出家)하기란 더욱 난처한 일이었다. 일단 『결심」을 하면 당장에 실천해야 시원한 그의 성벽이 내적(內的)으로 고민만을 쌓아 그는 또다시 병을 더쳤다. 열이 높아지고 가끔 실신하여 온 식구들을 놀라게 했다. 누구에게도 그의 고민을 퉁정할 수 없었고 그나마 가장 친밀한 「로드리고」 마저 해외로 떠났다. 시중의 울적을 풀기위해 그는 <마리아 데 부리세뇨>를 찾아가기도 하고 「성도마스」의 「도밍고」 수사원에도 친구 <후아나 수아레쓰>가 있는 「갈멜」회의 「강신」(降身)수녀원이었다. 높은 가문의 처녀들은 「미사」, 만과, 강론 등 신심(信心)행사 이외에는 바깥 출입을 못하기 때문에 성당출입만이 애인을 만나는 기회도 되었다.
그는 우단 「바스킨」 쪽기를 가는 허리에 바싸 졸라입고 검은 우단으로 층층이 선을 들은 오랜지빛의 호박직(琥珀織) 젋은 치마폭을 날리면서 보석에 파묻혀 위엄이 있으나 상냥한 웃음을 먹음고 「아빌라」의 끝에서 끝으로 걸어갈 적에 그 옷차림에 눈을 팔던 무리 중에 그 누구가 수녀원에 들어가려는 그의 결심을 짐작이나 했으랴?
나갈때마다 눈을 번번히 피하기도 마음이 괴로워 그는 마침내 부친 앞에 일체를 고백했다. 신덕이 돈독하기로 이름난 부친이었으나 빈민을 위해 해마다 수백석의 양식을 희생할지언정 이 딸 하나만은 천주께도 바치려하지 안했다. <데레사>는 부친의 깊은 사랑이 느끼었으나 친구들과 친척들을 불러다가 부친의 마음을 움직여 보았다. <돈 페드로> 삼촌의 간절한 권고에도 끄덕도 않았다. 『내가 죽거덜랑 네 마음대로 해라』는 것이 최후의 승락이었다.
<로드리고>가 떠난 후로 그는 겨우 열다섯살난 <안토니오>를 말벗으로 삼았다. 둘이 함께 <헬리오도루스>에게 보낸 <예로니모> 성인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이 약하고 비겁한 군사야 너의 아비의 지붕 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의 부친이 문턱 위에 가로 눕거던 그 몸을 뛰넘어라……』
열을 올려 읽어내려가는 그의 낭독을 듣고 감동한 <안토니오>는 자기도 <도밍고> 회에 들어갈 결심을 했다.
1536년 11월 2일 나무가지 끝이 보일락 말락 할 무렵, 그는 자기 방을 나와 발끝을 세워 숨을 죽이고 부친이 자는 방 앞을 지나 동생들 방을 차례로 거쳐서 정원으로 내려딛었다. 마지막으로 바깥대문의 무거운 빗장을 <안토니오>의 도움으로 소리없이 들어올렸다. 반도 못열린 대문 틈으로 빠져나가면서 그는 얼는 뒤를 한번 돌아다보았다. 애잔한 정이 뼈속에 잦아든다. 이 두 가는 그림자는 이른 새벽의 장사군, 심부름군, 「미사」군들 속에 사라졌다.
<데레사>가 집을 탈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13년전 그가 일곱살 적에 <로드리고> 오라비와 함께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복락을 누리려면 반드시 성인들처럼 순교를 해야지 하고 「무어인(人)들의 나라」를 찾아 역시 동이틀 무렵 집을 빠져나갔던 일이 있었다. 그 둘이 「아다하」 다리를 건넜을 적에 <돈 프란치스코> 삼촌에게 들켜 붙잡혀 돌아왔을 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혀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
『저 계집애가 나를 꾀였읍니다』라는 오라비의 발뺌으로 자기만이 난생 처음으로 크게 별을 받았던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