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를 만든 사람] (7) 유물론자 하인리히 카알 맑스(Heinrich Karl Marx)
발행일1961-07-16 [제287호, 2면]
■ 생애
1818년 5월5일 「뜨레브」의 유태인 가정에서 출생, 「본」대학과 「베르린」대학에서 역사학과 처락을 연학했으나 학자 생활의 첫 이상을 포기하고 1842년에 자유문학지 「레니쉬 가셋데」의 편집인이 되었다, 「파리」로 이주하여 진보적 문학 활동에 종사하고 이때에 <엔겔스>와 친교를 맺었다.
「불란서」 사회주의자들과 교제하였고 후에 「프로시아」당국의 교사(敎唆)로 인하여 「파리」서부터 추방되었다.
1848년에 「독일」로 돌아와서 「라인」지구의 혁명 폭동에 참가했다.
그후 그 지방에서의 출국 명령을 받고 1849년 이래 「런던」에 정주했다. 1884년 4월14일 「런던」에서 사망.
■ 사상
<맑스>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방향인 유물론 즉 유물사관(唯物史觀)의 사상적 기초를 세운 「맑스주의」를 수립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사회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가일층 완전한 발전단계로 전진하는 끊임 없는 변혁과정(變革過程)에 있고 그 원동력은 경제적 생산력에 있다 하였다.
그리고 경제생활의 생산양식은 사회적·정치적 및 정신적 생활과 과정을 제약한다. 생산관계의 총체(總體)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이루고 이 현실적 기초로부터 상부구조(上部構造)에 의해서 각 역사적 시대의 일체의 법적·정치적 제도(制度) 및 모든 종교적 세계관적 표상양식(表象樣式)이 발생하고 또 설명된다. 또한 생산기술과 생산력의 서로의 상태로부터 경영형태 소유질서(사회적 구조) 정치적 상부구조(국가) 및 사회적 의식형태(철학·예술·종교)가 결과를 가져온다. 생산력은 끊임없이 발전과정에 있기 때문에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세계관적 개념, 표상 및 판단도 또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단계에 있어서 생산수단은 사회적 소유(社會的 所有)에 이양되기 때문에 경제적 관계에서 오는 모든 대립이 제거되고 따라서 계급투쟁이 종식되고 무계급적 사회주의가 성립된다고 하였다.
■ 비판
「맑스」 학설 중에 과학적 검토에 의거한 이론(理論)은 거의 없다. 특히 유물사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지리적 기후적 관계, 생리적, 심리적 소질(素質), 관념적 세계관적 요소, 경제적, 기술적, 사정)가 역사의 발전에 이바지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서로 상호작용(相互作用)의 관계에 서서 주로 유기적(有機的)인 연속성(連續性)에 의해서 진행된 것을 입증하는 역사적 경험과 반대된다. 또한 유물사관은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 인간은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 두뇌의 움직이는 방향이 경제적 상항에 의존해서만 지배될 수 있는 기계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피압박계급은 각각 현재로서 될 수 있는대로 부담을 가볍게 하려들고 따라서 한 계급에서 타계급으로 전환하는 경향과 동일한 정도의 강한 계급적 대립균형의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 등을 부정하지를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