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과 우리 民族(민족) 護敎(호교) (2)
성경, 考證된 신앙의 규범
구령의 길은 順命뿐
교회는 반석 위에 섯어
종교 계획은 정치·경제 장난
발행일1961-07-16 [제287호, 4면]
※ 이 글은 서울대학교 문리대(文理大) 종교학회가 주최한 5월11일부터 동 13일까지의 종교문제 강연회서 <바오로> 윤(尹亨重=경향신문 사장)신부가 강연한 강연문입니다. (編輯者註)
(承前)
천주·영혼·천당·지옥 하면 누가 그것을 보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서 온 이가 있으니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금년은 서기 1961년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원으로 삼은 것임을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입니다. 1961년 전이라면 몽롱한 안개 속에 파묻힌 가마득한 대고적이 아니라 우리 연구의 손길이 넉넉히 닿는 근대에 속하는 만큼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 존재임을 의심할 수 없읍니다.
1세기 중업부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문헌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것은 예수의 언행을 수록한 4복음서이었읍니다. 이 세상 무수한 서적 중에서 가장 맹멸한 공격을 당한 서적은 이 복음성서이었읍니다. 지난 세기 반종교가들은 그것은 소설처럼 함부로 꾸며낸 것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맹격을 가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모든 서적 중에서 가장 구원하고 가장 광범위한 신용과 존경을 받아오는 서적도 바로 이 복음성서입니다. 이 두 가지 상반면을 곰곰히 생각하여 본다면 복음성서는 믿을 수밖에 없는 서적이라는 결론을 상식적으로라도 당연히 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복음성서가 믿을 수 없는 거짓서적이라면 저 반종교가들의 공격에 벌써 매장되었을 것은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저편에서는 그것을 공격하기 위하여, 이 편에서는 그것을 옹호하기 위하여 줄기찬 연구를 계속한 결과 복음성서는
1.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1세기에 저술했다는 것.
2. 그때부터 오늘까지 변절하지 않고 전래하였다는 것.
3. 그것을 기록한 저자들이 보고듣고 한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서, 자기들이 속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속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속일 수도 없었다는 것이 입증되었읍니다.
달리 말하면 복음성서는 고증학(考證學)의 관문을 본격적으로 정식통과한 전적입니다. <빠스갈>이 말한바, 증인들이 피를 흘려가며 증명한 책을 나는 믿는다고 한 것은 이 복음성서를 두고서 한 말입니다. 과연 복음성서는 「페지」마다 순교자들의 선혈로 보증하는 날인을 받아온 전적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증빙서류와 이러한 증인들을 통하여 본 예수·그리스도는 누구이겠읍니까? 그는 천주의 아들입니다.
살마의 아들이면 사람인 것처럼 천주의 아들이면 또한 천주입니다. 이 천주의 아들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참 천주시요 참 사람이신 신인(神人)이십니다. 구약성서의 허다한 예언을 몸소 실현하셨고 무수한 기적을 행하셨으며, 죽은 지 3일만에 당신 본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써 당신이 신인이심을 증명하셨읍니다.
옛말 우리 나라에는 암행어사들이 걸인행색을 차리고 지방에 두루 다닌 것은 광공리들의 행정여하를 탐정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천주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도 이런 목적 때문이겠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 원조(元祖)로부터 천주께 죄를 범하고 있읍니다. 천주의 아들은 당신이 그 벌을 대신하여 받고 인류에게 천당길을 개척하여 주실 목적으로 사람이 되셨읍니다. 과연 그는 당신 생명을 10자가 상 희생물로 내놓아 죽으심으로써 이 세상 사람들을 구속하셨읍니다. 그는 사흘만에 부활하셨고 그 다음 승천하셨읍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교훈은 언제든지 천주·영혼·천당·지옥을 그 중심으로 한 것이었읍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인류를 구원하셨다면,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겠읍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게서 가르치신 그대로 믿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실행하여야만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무슨 책을 저술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책으로 될 성질의 일이 아닙니다. 책은 어떤 것이든지 또 언제든지 그 해석이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창립하셨읍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단체입니다. 사단이 단체이고 학교가 단체인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창립하시고, 당신의 가르치신 바를 세계만방에 전하여 줄 책임을 이 교회에게 위탁하셨읍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가서 만민을 가르치며… 내가 너희게 명한 바 모든 것을 저들에게 준행하기로 가르치라…』(마태오 28.18-110)
교회가 단체인 고로 다른 단체들처럼 그 구조(構造)가 당연히 있게 됩니다. 단체에는 단원들을 지도하는 역원이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학교에는 교사들이 있고 사단에는 장교들이 있읍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단체의 역원은 종도, 즉 사도들입니다. 이들은 직접 그리스도께로부터 선정임명되었읍니다. 그런데 어떤 단체든지 평등한 직권을 가진 역원들만 있고, 그 위에 단장격인 수석이 없을 수는 없읍니다. 그래서 학교마다 교장이 반드시 있고, 사단마다 반드시 사단장이 있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임명하신 교회 역원, 즉 사도들 중에도 수석이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가 누구이겠읍니까? 그 역원들을 친히 임명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그 수석을 직접 임명하셨으니 그가 곧 <베드루> 사도입니다.
『너는 베드루라 나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매 지옥문이 쳐이기지 못하리라. 나 또 네게 천국(註 교회) 열쇠를 주리니, 네가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맨 것은 하늘에서도 맬 것이요, 네가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리라』(마태오 16.18-19)
『에수, <시몬 베드루>에게 가라사되 내 고양을 치라…… 내 고양을 치라…… 내 어미양을 치라』(요안 21.15-17)
이상의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루> 사도에게 당신 교회를 다스릴 권을 주신 것은 의심 없읍니다. 이런 해석은 성서적으로 보든지 세속적으로 보든지, 아무런 무리도 없는 아주 자연적인 해석일 뿐 아니라, 교회 초창기부터 모든 교부들이 일치하여 인정하고 받아들인 해석입니다.
이외의 상기 <베드루> 사도의 통치권을 부인하려는 해석은, 그 성서말씀이 기록된 다음 1천년 하고도 5백여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흐른다음에만 이 세상 딴 구석에 생겨난 사람들이 제멋대로 꾸며낸 사건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될 뿐 아니라, 그 사견들 사이에는 아무런 일치성도 없는 혼란상이 이것을 자중하고 있읍니다. 이따위 사견들은 그리스도의 교회 창립주로서의 자격을 파괴하려는 불순한 결과를 빚어내는 것들이니, 평등한 직권을 가진 12사도만 임명하시고서 그 중심인물을 지명치 않으시고 그대로 훌쩍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면 이후 일어날 무수한 분열과 분쟁의 씨앗을 친히 심어놓으시고 떠나셨다는 것이 되는데, 과연 이러할 그리스도이겠읍니까?
<베드루> 사도의 후계자들이 「로오마」 교황들이고, 다른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가톨릭의 주교들인 것은 세계사적 사실입니다. 「로오마」 교황이라면 사치로 생활이나 하면서 부하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군인양 선전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는데, 통신과 교통이 지둔하던 옛날에 쓰던 녹쓸은 무기를 지금도 쓰려는 것입니다.
현대에는 신문잡지나 라디오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은 미국 대통령이 어떤 가문의 자손이고 무슨 경력을 거쳐 대통령이 된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로오마」 교황들 역시 어떤 가문의 출신이며, 주교직은 어디서 어떻게 행하였고, 교황이 된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매일 지내는 그의 일과는 어떻나지 신문잡지나 「라디오」를 통하여 온 세상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교황은 거의 날마다 면회시간이 따로 정하여 있어 무수한 사람들이 직접 그를 만나보는 바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직접 교황을 만나보고서 돌아와 그의 거룩하고 고결한 인격을 찬미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읍니다. 가톨릭은 이렇게 교황을 중심으로 각국 각 민족에게 5억여의 신도들이 함께 뭉쳐 한 집안, 화목장을 이루고 있어 아무런 동요나 분쟁도 없이 행진을 계속하여 나갑니다.
이제 가톨릭에 대하여 여러분이 혹시 궁금하게 생각하실 문제 몇 가지를 해명하여 드리겠읍니다.
가톨릭은 성경을 무엇이라고 인정하는가? 성경은 천주의 말씀인 고로 우리 신앙의 규범입니다. 그렇지만 원규범(遠規範)입니다. 교회의 활교도(活敎導)는 우리 신앙의 근규범(近規範)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지도는 원규범에서 직접 받을 것이 아니고 이 근규범에서 직접 받도록 되어있읍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증명하고 있읍니다.
1. 신약성서보다 교회가 먼저 창립되어 있었읍니다. 그 신약성서는 서기 42년경부터 95년경까지 한 편씩 한 편씩 기록되었읍니다. 교회가 창립된 후 약 10년 동안은 신약성서 한 편도 없이 지내온 사실을 주목하십시요. 그 신약성경이 한 편씩 기록된 다음에도 매번 손으로베껴야하던 그때이요 교통이 지둔하던 그때에 있어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빨레스띠나」 각지로, 「로오마」나 「마체도니아」에로 「알렉산드리아」나 「아테나」로 이렇게 보급되자면 얼마나한 시일이 걸려야 할지는 상식문제일 뿐 아니라 아무게나 아무데서 베껴온 그것이 성서인 줄을 누가 보장하던 것입니까? 그리고 양피에 베낀 신약성서를 모두 사들이자면 막대한 비용이 있어야하니 특권계급이 아니고서는 장만할 수 없고 장만할지라도 그 부피가 적지 않은 것인데, 종종 일어나던 박해판국에 그 성서를 등에 지고서 피난다닐 줄 아십니까? 여러분 중에는 6.25 동란 중 생활필수품도 가지고 다니기 어렵던 그 판국에 6호활자로 인쇄된 간편한 신약성경만은 몸에 지니고 다니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2. 어떤 민족이든지 글자로된 법전만으로 다스려진 사실은 통 없읍니다. 우리나라 현행 6법전서는 전문용어로 빈틈 없도록 치밀하게 엮어진 것이지만 저 지방법원의 여러 판사들이며, 고등법원의 여러 판사들이며, 대법원의 법관들 그리고 이 시내 허다한 변호사들이 날마다 법문해석 때문에 땀을 흘리고 있지 않읍니까? 그런즉 평범한 용어의 산문체로 기록된 27권이나 되는 신약성서를 각자가 읽고서 그 참뜻을 알아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면 이 얼마나 상식을 무시하는 요구이겠읍니까?
3. 이론보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초창기로부터 지금까지의 저 무수한 문맹자들은 말할 것도 없읍니다.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지식인들이십니다. 순 한글로 된 「로오마」서나 「에페소서」같은 것을 읽으시고서 이 귀절의 뜻은 이런 것이라고 우리 앞에나와서 강의를 하실 자신을 가지신 분은 누구이십니까?
가톨릭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어떻게 보는가? <루터>의 종교분열이 성공된 것은 그의 제창한 교설 때문은 아닙니다. 그 전에도 그런 교설을 제창한 자 있었지만 자기 추종자들을 얻지는 못하고 말았읍니다. <루터>의 종교분열이 성공을 보게된 원인은 그때는 국가의식·민족의식이 싹트고 있던 시대인 만큼 이것을 약빠르게 이용한 왕공들의 정치적, 경제적 야심에 있던 것입니다. 「브리딴니까」 백과사전에도 『 독일 저후들이 <루터>주의를 강행시킴에 있어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발견치 못하였더면, <루터>는 반드시 신비파의 한 무명(無名) 지도자에 불과하였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프로테스탄트」 사학자 <챨스.리어>도 『종교개혁의 목적은 종교적 개혁에 있지는 않았다』고 증언하였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당 정권 시대에 그때까지 잠잠하던 불교와 유교에 정치적 마수가 작용하여 큰 혼란과 분쟁을 일으킨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덴마아크」 「놀웨이」 「스웨덴」같은 나라에서는 무슨 사건이 있어서 가톨릭을 몰아낸 것은 아니었읍니다. 가톨릭교회의 재산을 탐내던 왕공들의 욕심이 폭발하여 그러한 참극을 빚어냈던 것에 불과합니다.
(필자=신부, 경향신문 사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