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39) 水難(수난)과 病苦(병고)
발행일1961-07-16 [제287호, 4면]
1580년 2월2일에 「빌라누에바데 하라」에 또 12월29일에 「팔렌시아」에 수녀원이 창립되었다. 그 중간에 65제가 된 <데레사>는 「톨레도」와 「발라돌리드」에서 중병을 앓았다.
1581년에 <필립 2세>가 「선족」과 「말족」이 각각 독립된 관구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칙령을 내렸다. 「알칼라」의 수도자 총회가 「선족」 수도원의 도현(道顯)을 확인했다. 그해 6월14일에 「소리아」에 수녀원이 창립되었다. 그는 「아빌라」의 「성 요셉」 수녀원의 원장수녀로 선거되었다. 또 도현이 인쇄되었다.
1562년 1월에 그는 병약하고 노쇠한 몸을 일으켜 <그라시안> 신부를 비롯하여 수사 수녀들을 거느리고 「아빌라」를 떠났다. 「아빌라」로부터 「메디나델캄프」까지 가는 동안 줄곳 내리던 비가 눈으로 변했다. 「메디나빌캄포」로부터 「발라돌리드」까지의 도중은 하늘과 땅이 끝이 없는 물로 합쳐진 것 같이 보였다.
그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초기의 중풍이 발작하여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떨리며 말이 어둔해졌다. 목구멍이 헐어서 피를 뱉았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물 뿐이었다. 여행을 중지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들 움직일 수 없게 되리라는 의사의 권고도 물리치고 ㄱ는 진정한 「대홍수」 가운데 「발라돌리드」를 떠났다. 「팔랜시아」에 도착하니 온 고을이 그를 개선장군처럼 환영했다. 촛불을 켜들고 성가를 부르는 군중이 그의 수레가 지나갈 수 없을 만큼 빽빽했었다.
그는 병이 중했으나 이틀만 쉬고 다시 혼수상태로 들어갔다. 길을 살피러 갔던 종이 통행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했으나 그를 만류할 수 없었다. 지존께 순명할 그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카리온」강과 「아틀리쏜」가아 유역에서 미증유(未曾有)의 큰 물이었다. 진흙 구덩이 속에 쳐박힌 수레들을 수사들의 협력으로 나부들이 간신히 빼내는 동안 수녀들은 나무신을 신은 채 흙탕물 속을 헤치고 걸었다. 일행이 강을 눈앞에 내리다 보는 절벽의 꼭대기 길을 지날 때 앞에 가는 수레 하나가 허공을 향하여 비틀거리는 것이 <데레사>의 눈에 띄었다.
종 하나가 그 바퀴 위에 자기 몸을 던저 그 수레를 뒤로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도저히 사람의 힘만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로 그는 자기가 혼자 위험을 당하기로 결심하고 자기가 맨 앞에 가겠다고 고집했다. 놀람과 피곤을 겪고 난 그날밤 그들은 침대가 없는 주막에 들었다. 그 다음날 「아틀라쏜」강을 건너야 했었다. 다리들이 홍수에 떠내려가고 디딤돌 다리밖에 없었다.
겁이 난 주막 주인이 가장 고집불통인 이 성인에게 제발 며칠만 더 묵어달라고 애걸하다싶이 권고했다. 그러나 그 주인이 마지못해 그들을 가장 덜 위험한 곳으로 안내하기로 했다.
그 일행이 강 언덕에 이르르니 발디딜곳을 찾기가 곤란할 만큼 물이 넓었다. 보일까 말까 하는 그 발디딤 돌다리가 어떻게 좁던지 자칫 빗나가든지 물살이 세든지 하면 수레고 노새고 수사고 수녀고 종이고 창립자고 모조리 격류속으로 소용돌을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도 위험도 무서워 않으면서 살아야 할 그들이었다. 수녀들이 수사들에게 전대사를 그 어머니께 강복을 청했다. 그는 명랑한 기분으로 강복을 주었다.
『자, 딸들아! 오 주의 사랑을 위해 순교자로서 죽기 보다 무슨 더 좋은 일을 너희들이 바랄 수 있으랴?』
그의 수레가 먼저 움직했다. 자기가 물에 빠지면 나머지가 다 주막으로 되돌아간다는 다짐을 받았다.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데레사>의 수레가 비틀비틀하더니 격류에 가로막혀 멈추는 것을 보았다. 그 창립자가 물 속으로 뛰어내렸다. 무릎까지 물에 잠겼다. 그는 몸이 가볍지가 못해 몹씨 다쳤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그의 부르짖음은 천주께 향했다. 이번에는 불평이었다.
『주여 그처럼 많은 재앙 가운데 이 일이 모든 그 나머지의 꼭대기가 됩니다.』
「소리」가 대답하셨다.
『<데레사>야, 그런 것이 내가 내 친우를 대접하는 법이야』
『아이구 나의 천주님! 그게 바로 당신께서 친우가 그처럼 적은 이유로소이다…』
10자가의 <요왕>신부가 투옥되었을 때 그는
『천주께서 당신 친우들을 대접하시는 법이 무서우시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심으로써 그 친우들에게 아무런 그릇된 일을 하지 아니하심은 그것이 당신 성자를 대접하신 법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천주께서 그를 곤경에서 구출하셨다. 그의 수레와 나머지 수레들이 신경(信經)을 할 수 있는 한 높은 소리로 염하는 가운데 겁이 없지 아니한 것처럼 그러나 무사히 대안(對岸)에 도착했다. 모든 사람들이 기뻣다. 위험이 일단 지나가면 그 이야기가 재미 있었다.
「아빌라」를 떠난 지 24개일만인 1월26일 밤중에 「부르고스」에 도착하여 온전히 냇물로 변한 거리를 지나 <톨포사> 부인의 저택에 들어 피곤하고 젖은 몸을 불에 말릴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저녁에 <데레사>는 기절과 구토가 재발했고 목안이 타면서 온밤을 앓았다. 다음날 아침에 그는 움직일 수 없었고 머리를 처들 수도 없었다. 그는 살창 너머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드러누운 채 긴한 손들을 맞았다. 여러 가지 문제가 착잡하여 「부르고스」에 수녀원이 창립된 것은 그가 도착한 지 3개월만인 4월19일이었다.
그러한 큰 사업을 서우치한 이 노파 안에 일종의 청춘다운 신선미가 있었고 라띤어를 모르는 그가 신학에 통달함에 사람들이 탄복했다. 애정있는 천진한 몸짓과 우아하고 따뜻한 말씨. 그는 성인이었으나 역시 여성이었다.
그리스도 승천 축일에 「아틀라쏜」강이 범람했다. 집이 떠내려가고 묘지에서 해골이 떠올랐다. 그는 수녀원에서 피난하기를 거절했다. 그는 성체를 이층에 내 모시고 수녀들과 기도했다. 이튿날 아침에 수녀원은 기도의 섬이 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물이 빠졌다. 그가 그곳을 떠난 것은 7월26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