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東西言動戰(동서언동전) 단순한 「제수츄어」가 아닐듯
서 「베르린」에 대한 쏘련의 횡폭한 태도와 공공연한 위협에 대해서 미·영·불 3국은 서「베르린」 방위에 공동보조를 취하게 되었다. 즉 「나토」 상임이사회는 3개국 각서(覺書)를 작성하고(15일) 수일 내로 이것을 쏘련에 전달하게 될 것이다. 대체로 그 내용은 서「베르린」의 기본권(基本權)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동서간의 군사적 대결(軍事的 對決)을 각오하고 있음을 표방한 것이다. 이 소식은 각국에서 「톱」뉴우스로 게재되었다. 한편 미국은 만일의 사태를 생각하고 예비병 소집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동독에서 반공의기(反共義氣)가 발생할 듯한 유력한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런던」에서 발간되는 「썬데이·타임스」지는 아마 이것은 1953년 6월의 동독방공의거와 같은 규모의 것이 될 듯 하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베르린」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는 일평균 천5백명을 수용하고 있어 수효는 역시 1953년 6월 이후의 최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
서부독일 연ㄴ방공화국 총선거가 오는 9월에 있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거니와 지금 거의 총선거 전반전에 접어들어선 듯하고 이번 제4차 총선거에 당년 84세의 <아데나워> 수상은 실로 주목할만한 신거_을 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통일이 곧 동서(東西)의 모든 문제를 결정지을 것이다. 통일된 독일은 서구(西歐)의 결정적 위치를 차지할 것인 만큼 동서의 최후의 관건(關鍵)은 독일 통일에 있다고 하겠다.
<후루시쵸프>는 최근 그의 독특한 공갈수단의 일부로 만약 서방에서 핵실험을 계속한다면 쏘련은 곧 방대한 핵실험을 할 용의가 있으며 군사예산을 증강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쏘련에서는 「나치스」의 침략 20주년을 기념했다. 이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성대했다. <힛틀러>의 쏘련 침공을 방조한 것은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며 「베르린」을 제압한 것은 오직 쏘련에 의한 것이라고 그들은 연설했다. 이로써 은근히 그들의 「베르린」 문제에 보내는 강경태도를 시사한 것이다.
■ 核禁止(핵금지) 會談(회담) 3년전 상태로?
「케네디」 대통령의 핵실험 금지의 서방측 안에 대한 동의를 청하는 각서가 쏘련에 전달된지 오래다. 그러나 최근 <후> 수상은 1연설에서 쏘련은 현상태에서는 곧 대규모의 핵실험을 실행하겠다고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직접 대답을 보낸 셈이다.
핵실험 중지에 관한 쏘련을 포함하는 「제네바」에서의 국제회담은 이미 3년이란 세월을 허송했다. 그간 아무런 해결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3년 전보다 사태는 악화되었다. 그 연고는 <후>는 최근 발언에서 쏘련은 과거 3년간 핵실험 회담에 기대하고 쏘련에 의한 핵실험을 중지해 왔으나 회담에 아무른 성과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국은 그 군사예산을 25억「딸라」나 증가시키고 있으니 곧 핵실험을 실행하겠다고 했다. 이게 비록 「베르린」 문제에 대한 위험으로 간주한다 하드라도 「제네바」 핵실험 금지회담에는 치명적 타격을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일반 군비 축소에 달려 있는 동시에 또 한 가지 필연적 요소로 등장한 것이 곧 핵실험을 중지 시키는 문제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후> 수상의 발언은 이 중요한 핵회담을 전적으로 후퇴시켰다. 단순한 「베르린」문제를 서둘으려는 「제스츄어」로 보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것이 있다.
■ 中立의 代價… 8·9·10·11·12월의 前望
믿을 수 있는 소식통에 의하면 <후> 수상은 「나토」회원국의 국방예산이 증가되었음을 강조하고 추가 갱정예산의 국방예산으로 31억천4백4십만「루불」을 증가한 것을 공포했다. 쏘화 1.11「딸라」이다. 그런데 쏘련의 61년도 국방예산은 11억3천9백90만「루불」이다. 이것은 놀랄만한 예산갱정이다. <후>는 60년 초 쏘련 병력을 3백60만에서 2백40만으로 줄이겠다고 한 바 있다. 그때 어떤 조건의 변동이 있어도 이를 실행하겠다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경이적인 국방비의 증강과 핵실험 단행을 전제로 연내로 동독과 단독 강화조약을 체결하겠다고 하고 있다. 군사평론가들은 이런 쏘련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강대국은 다시 군비 경쟁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고 논평하고 있다. 미국상원외교위원장 <풀브라이트>씨는 조속한 시일 안에 「베르린」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으며 새로 2차대전 동맹국이 합석해서 문제해결에 임하자고 했다. 여기 어떤 반응이 있을 지 미정이나 앞으로의 전망을 이렇게 예상한다.
8월= 미군을 구주에 증강한다. 독일 내의 미국 부녀자 아동을 철수한다. 「프랑스」 영국은 동일한 군사행동을 취한다. 쏘련 「베르린」 상공에서의 항공제한을 실시할 것이다. 여기 충돌의 화점(火点)이 장만된다.
9월= 서부독일 총선거는 전세계의 주시리에 실시된다. 9월17일은 총선거일이다. 동독은 서「베르린」의 존재를 위협하는 의외(意外)의 방법을 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외교교환에는 변동 없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외교활동은 긴요하기 때문이다.
10월= 8,9월의 사태를 고려한 후 서방은 새론 제안을 하게 된다. 이것은 10월말 경이 될 줄 안다. 이달에는 예년의 쏘련 공산당 전당대회가 있다. 이때를 기해서 독일의 「중립화」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독일은 현상태이건 통독이건 동서전쟁의 결정적 요소인 것은 또한 동서가 다같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11월= 유엔 내에서 「베르린」 문제를 토의할 것이며 이와 별도로 4대국 외상회의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서방은 군사면에서 확고한 동일보조를 취할 것이다.
12월= <후>는 어떤 서방측 저항에도 굴하지 않고 소기의 동독과의 단독강화조약을 채결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태하에서도 서방측은 서「베르린」의 군사선(線)을 확보하고 서「베르린」 시민의 장와 피난민 및 모든 군사교통의 자유를 확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