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40) 떠날 때가…
발행일1961-07-23 [제288호, 4면]
<데레사>는 「발라들리드」에 들려다가 「아빌라」로 빨리 돌아가기 위해 「메디나」에서 쉬어 원기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가 「메디나」의 수녀원에 도착하자 마자 그곳의 원장수녀 <알벨타 바우티스타>가 지친 그 병인에게 요리도 대접하지 않고 부관구장이 응접실에서 그를 기다린다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최초의 「선족」 수사라고 스스로 장담하던 <안토니오> 신부가 이제 72세의 부관구장이었다. <그라시안> 관구장 신부가 부재중이므로 <데레사>가 순명해야 할 어른이 <안토니오>신부였다. 그 부관구장이 그에게 내일 바로 「알바데토르메스」로 떠나 <마리아엔리케스> 공작부인을 만나라는 명령이었다.
그 공작부인은 방금 난산중에 있는 자기 며느리를 위해 전 「스페인」이 성인으로 믿는 이 여인을 초청한 것이었다. 사실상 죽어가는 그가 순순히 대답했다.
『저는 존사(尊師)께 순명하오리다』
그는 자기 수방으로 들어갔으나 식당으로 초청도 받지 않았다. 그는 이제 굶주림을 참으면서 「오리브」동산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었다. 그날밤 발열로 뜬 눈으로 새웠다. 그는 1시과를 마치고 「알바」의 공작부인이 보낸 마차를 타고 <안토니오> 수사와 자기 질녀와 <아나 대 산 바르톨로메>를 동반하고 출발했다. 그는 자기가 도중에 죽어서 그 동반들과 공작부인의 하인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걱정이었다. 고통을 견디면서 기운을 내기 위해 무화과 몇 개를 먹었더니 체했다.
『<아나>야 무엇이든지 상관 없으니 익히 먹을 것이 있나 모르겠다. 다시는 할 수 없다』
달걀 두 개를 사려 보냈더니 한 개도 없었다. 그 어머님의 얼굴이 죽어가는 여인의 얼굴이었다. <아나>가 기가 막혀 울었다.
『딸아, 울지 마라.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천주의 성의란다…』
그는 발작히 일어났다. 그의 질녀가 안타까워 못견디었으나 이 형편에 어찌 할 줄 몰랐다. <안토니오> 신부가 소용없이 갈팡질팡했다. 공작부인네 하인들이 화가 났다.
『「파냐란다」놈들이 이 성녀를 죽이나베』
주막에서 그날밤을 새웠다. 그 병인에게 먹일 것이라고는 파를 많이 넣어 끓인 쓰레기국이었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알바」에 가까이 오자 공작댁에서 마중 보낸 기마사자(騎馬使者)들을 만났다. 그댁의 자부가 순산하여 모자가 다 충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힘을 북돋아 웃우게를 했다.
『천주를 찬양할지어다. 이제 그들에게 이 성녀가 다시는 더 필요가 없고나…』
그곳 수녀원에 들어가 「떼 데움」을 창할 때 환희의 곡조가 가는 소리가 되어 살아졌다.
『나는 아니 아픈 뼈가 하나도 없다…』
그는 애를 써 미소하면서 『우아하고 점잖안 몸짓』으로 자기를 반기는 수녀들에게 강복을 주었다. 이런 짓은 겸손을 거스리는 일이라고 해서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는 그 곳 원장수녀에게 자기를 수방으로 보내어 쉬게 해달라고 청했다. 병인에게만 허락하는 깨끗한 흰 「린네루」의 홋이불이 깔린 침대였다.
그는 행복스럽게 미소했다.
『이렇게 일찍 누워보기가 20여 년만이다…』
금년 초에 영도소에서 문득 빛이 나타나 놀란 수녀들이 깊은 기도에 잠기지 못한 일이 있었다. 최근에 온식구가 기도 중 죽어가는 사슴의 한숨과 같은 극히 가늘고 부드러운 신음소리를 세 번 들은 일이 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그가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영했다. 그 후 수녀들이 며칠 동안 그가 지팡이에 힘을 주고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이칭의 제일 꼭대기 방에 가서 「토르메스」의 풍경을 즐기기도 했다. 가장 사소한 세부까지 걱정하면서 그 수녀원을 전과 같이 철저히 순시하기도 했다. 병고와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승리의 자존심히 엿보였고 순명과 겸손의 지속성과 많은 노고와 박해의 흔적이 가시지 않았다.
2, 3일 후에 「살라망카」 대신학교의 학장수사가 그를 보러 와서 그곳 수녀원의 사고처리를 문의했다. 그는 격노했다. 이것이 그의 최후의 투쟁이었다. 이런 환경 가운데 그는 「아빌라」의 「성 요셉」 수녀원을 잊을 수 없었다.
『<아나>야, 나를 즐겁게 할 일을 해다오. 네가 조금 낫걸랑 즉시 보_ 마차를 구해라. 내가 할 수 있는대로 잘 나를 그 수래 속에 앉혀다오. 그리구서 우리 셋이 「아빌라」로 떠나자.』
이제 그해의 9월말이었다. 그의 비상한 용기가 처음으로 떨어졌다. 토혈을 하고 때로는 혀가 굳었다. 「성 미카엘」 축일에 영성체 후 출혈 때문에 그를 떠메다 눕혔다
그의 병실의 창에 수정보다 더 희고 번쩍이는 불빛이 비치는 것을 수녀들이 본 일이 있었다. 그의 방 안에 향기가 진동했다.
그의 손이 닿인 물건마다 그 향기가 풍기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의 임종을 보고 있었다. 깊은 침묵이 온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문득 창밖이 떠들석했다. 한 수녀가 그 시끄러운 소리를 제어하고자 나가려고 할 때 빛나는 옷을 입은 귀인들과 귀부인들의 떼가 봉쇄를 지나 이 성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일만명의 순교자들이 <예수의 데레사>에게 그의 영원한 혼인을 축하하려고 왔던 것이다.
10월2일에 그는 성체를 청했다. 부관구장 <안토니오>신부가 그의 옆에 장궤하고 고해를 드렸다. 그의 영혼에 천주의 사랑이 넘쳤다. 그의 갈망이 천주와 결합되었다.
그는 딸들에게 도헌과 수률을 지키라고 유언했다. 그러면 서복을 위해 기적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이 못된 수녀가 끼친 나쁜 표양을 본받지들 마오.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그는 똑똑한 음성으로 신비롭게 여러번 되풀이 했다.
『주여 저는 성교회의 딸이로소이다』
성체가 들어오는 것을 본 그는 두 사람이 움직이던 자기 몸을 문득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