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산아제한(産兒制限)을 허용하는가? 이 질문은 사회, 윤리, 인구, 경제의 제문제와 너무나 혼돈되는 것이며 『그렇다』나 『아니다』와 같은 단순한 답변을 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조심스럽게 구분되어야 한다. 지난 5년간 「불란서」에서는 여하한 종류의 산아제한도 금지한 1920년의 법령을 폐지할 목적으로 굉장한 투쟁이 계속되어 왔다.
1956년 이후에만도 세 번이나 「불란서」 의회(議會)에서 동 법령을 폐지하려는 기도(企圖)가 있었으나 표 미달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토론은 아직도 공개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교회측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명백히 제시한 것으로서 「리용」의 <제리엘> 추기경은 지난 「리용」 성직자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즉 천주의 선물인 부부(夫婦)의 출산력(出産力)을 보더라도 성서(聖書)는 자녀(子女)의 수(數)에 따르는 가정의 완성을 계산하지 않았다.
생식(生殖)을 위한 의지(意志)는 부부간의 사랑 안에 스스로의 규칙과 제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잦게 찾아오는 임신(妊娠)은 모체(母體)의 건강에 따라서 피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부모들은 현재 이상의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은 더 이상의 자녀를 가지기를 단념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 도덕은 단순히 이기적이고 물질적 반영에만 기초를 둔 산아제한은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들의 고려(考慮)에 기반을 둔 산아조절은 허용하고 있다.
그 방법은 부부간의 주기적인 성적 금욕(性的 禁慾)이나 완전금욕 뿐이며 이것을 위하여는 부부들의 고도의 도덕적 힘이 요구되고 있다.
교회는 부부들에게 자녀의 수를 결정하는데에 도덕적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이 책임은 부부간의 순결(純潔)을 기본으로 한 것이며 그 부부간의 순결은 반드시 결혼의 지상 목적인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위한 성관계(成關係)의 지표를 말하는 것이다.
교회는 결코 도덕의 약화를 권고하지는 않는다.
「불란서」의 추기경과 주교들은 교회 입장을 표준화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제리엘> 추기경의 성명이 있은 몇 주일 후 「파리」에서 개막된 최종회의에서 산아제한에 관하여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주교들은 모체를 불임(不姙)케 하거나 임신(姙娠)을 피하게 하기 위하여 인공적(人工的)인 방법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피임약(避姙藥)이나 다른 화학 방법의 사용은 단순한 육체적 관능(官能)에로 성행위(性行爲)를 타락(타落)시킨다.
성행위는 두 인간이 영혼과 정신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도 참다운 사랑과 상호 책임으로서 그들의 단결을 실현하는 인간의 자기실현(自己實現)의 지상(至上)행위인 것이다.
임신을 피하기 위하여 인공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이며 가정생활의 존엄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인간의 참다운 위엄은 희생(犧牲)정신을 분담하는 도덕적 책임 안에 구성되는 것이다. 「불란서」 주교들은 가족계획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는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다섯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①생명의 본질인 영혼을 창조하신 천주만이 인간 존재의 단 하나의 권위인 것이다. 모든 과학적 및 인구학적 고찰은 제2차적인 문제이다.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위하여 천주께서 창조하신 자연질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 질서에 여행하는 행위를 할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
다만 천주의 법에 따라 행위할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②고귀하고 참다운 인간의 가치(價値)는 이 질서(秩序)에 지향하는 충실(忠實)과 연관되는 것이다. 즉 참다운 사랑, 생명의 존중, 부모라는 것, 가정에 충실함을 말하는 것이다.
③인간 기능(機能)의 참다운 의의에 반대되는 나쁜 방법의 사용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④부부간의 사랑은 단지 쾌락만을 지향하는 단순한 이기적 감정(利己的 感情)이 아니라 인간 존재 안에 제한되고 또한 그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의 임신과 양심적 교육에서 사랑의 보람을 찾는 부부간의 선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중심으로 하여 자녀에 대하는 이와같은 존중이 타락하게 되는 모든 것은 단지 불화(不和)뿐만이 아니라 영혼 문제까지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⑤교회는 무작정 하고 산아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의 과업 성취를 돕고 단지 출산(出産) 사실 뿐만이 아니라 자녀의 교육까지 포함하는 결혼의 지상 목적의 실현을 돕기 위하여 교회는 자녀의 수에 관하여 천주 앞에 결심하는 부모들의 책임과 참다운 사랑과 양심을 호소할 다름이다.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천주의 은총이 보장된 혼배성사를 통하여 그들이 바라는 희생정신을 위한 「도움」과 「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여하간에 우리나라의 정부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가족계획을 결정지을 때가 올 지라도 우리들은 「불란서」 주교들이 자기네 정부와 「불란서」 국민 앞에 내놓은 이와같은 점을 정부가 고려하도록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