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政治(미국정치)서 云謂(운위)되는 反(반)가톨릭의 根源(근원)
作故한 유명한 미국 「발티모어」의 <기본스> 추기경과 <테오돌 루주벨트> 전대통령
KKK단이 심자가를 태우는 장면
스미스<씨의 「바티깐」 방문 당시
발행일1960-11-20 [제255호, 4면]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 정치 문제로 논평이 무르 익어갈수록 종교문제가 또한 무시할 수 없으리만치 중요성을 띠고 나타났었다.
제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민주당의 <케네디> 상원 의원이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퀘이커」교도인 <닉슨> 부통령은 선거전에서 결코 종교문제를 개입치 않겠다고 거듭 성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반가톨릭선진이 비교적 치열하게 대두된 셈이었다. 여기에서 미 국내의 반가톨릭종교적 편견(偏見)의 근원을 찾아보기로 한다. 역사적 사실로 나타난 여러가지 사실로 보아 실로 흥미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基1)
1787년 대영전쟁(對英戰爭)에 승리를 거두고 새로운 국가를 창건한 후 입법의회(立法議會)를 구성하기 위하여 각 지구의 대표들이 「휠라델피아」주에 모여들었다.
대대적인 경축행사가 개최되고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각 교파의 성직자들이 유대교 목사와도 같이 서로 팔에 팔을 끼고 거리를 행진하며 독립을 축하하였다. 이야말로 자유에 대한 무종파(無宗派) 정신의 상징이었다.
입법 과업이 진행하는 동안 이러한 정신이 충만되어 있었다.
또한 헌법 제6조에서 각 대표들은 다음과 같이 성명하고 있다.
『합중국의 여하한 국가공직이나 공공의무에 대한 자격부여에서 종교 차별을 두지 않는다』
기본인권선언(基本人權宣言)에서도 『의회는 국교 제저을 고려하는 법률이나 종교활동의 자유를 방해하는 여하한 법률도 제정하기 않는다』라는 구절로서 시작되고 있다.
이와같은 신앙자유의 원칙과 국가와 종교와의 분리 원칙이 미국 기본 헌법의 부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에 이르는 오늘날까지 단 한명의 비 「프로테스탄트」만이 대통령 후보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가 바로 1928년 대통령 선거전에 <허버트 후버>씨에게 패배한 「뉴욕」 주지사이며 가톨릭 신자인 <알후레드 스미스>씨였다.
지난 겨울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받기 위한 <케네디> 의원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나는 후보자의 모든 종교문제에 있어서 참다운 논쟁꺼리는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즉 후보자가 헌법을 믿고 제1조(종교자유를 기술한 미국의 수정헌법의 제1조)를 믿고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믿느냐?이다.
후보자에게 이와같은 질문에 관한 의견이 던져질 때 나는 아미 중분히 나의 견해를 가지고 있고 나는 이런 문제는 다시 재론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와같은 그의 견해가 얼마나 잘못이였는가를 나타내는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위스콘신」주 민주당 내의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종교문제에 두선권을 주는 것 같이 보였고 (특히 <케네디> 의원의 가톨릭에 대하여) 「프로테스탄트」 「가톨릭」 노선에서 오는 국가 정책의 불일치(不一致)를 지극히 염려한 리프만>씨의 견해에 원인이 있었다.
연달아 또한 부분적으로 「위스콘신」주의 결과에 따라 『종교논쟁』이 「프로테스탄트」 세력이 강력한 「웨스트 버지니아」주 내 선거전에서 지배적인 문제로 되어버렸다.
<케네디> 의원은 이러한 종교논쟁을 무시해버린 채 승리를 거두려고 기도했다.
그러나 「오레곤」주에서 마지막 승리를 거두려는 바로 그날, 남부 침레교도(둘째로 많은 「프로테스탄트」 인구 9백90만을 옹호하고 있다)의 대표들이 모여 가톨릭 대통령에 대하여 우려를 표현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뿐만 아니라 「복음전도회」나 다른 적은 교회 교파 집단에서도 이와 흡사한 의혹(疑惑)을 선언하였다. 이와반면에 「미국침례교회의」(북부 침례교로 알려져 있음)와 같은 중요한 교파 단체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종교의 구해없이 공적 임무에 임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권리를 재당조하였다. 이리하여 문제는 확실히 끝난 것이 아니었지만 <케네디> 의원의 종교가 이번 선거의 요인(要因)이 되었고 드디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결국 이러한 종교논쟁이 앞으로 「백악관」에 머물을 4년을 통하여 과연 「우려」이냐 「희망」이냐 「확신」이냐를 결정지을 문제로 남아있게 되었다. 또한 종교의 헌법상 원칙을 분별할 것이며 종교적 편견도 또한 매일의 과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내 어데서부터 반가톨릭 동향이 온 것인가? 또 왜? 미국 정치 생활에 여하이 그것이 나타났는가? 얼마나 그것이 중요성을띄었는가? 지금은 그 세력이 얼마나 강한가? 여기에 대하여 대답을 주기전에 우리는 먼저 이 문제에 관한 개략적인 한계를 지워놓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문제에 있어서 가톨리시즘의 영향이 미쳤으리라고 상상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신학적 또는 철학적 원인을 캐여낸 수많은 서적이 나와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긴 하나 이런 것을 여기에서 운운하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내에서 이러난 정치적인 진지한 반가톨리시즘 사건과 같은 사실이 단지 물질적 혹은 정신적면에서 일어난 결과라는 것을 알고자 함이다.
주로 19세기 사회 경제력과 정치적 종교적 분규(紛糾)의 결과를 알려주고자 한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국 역사의 기원을 되돌아 보지 않으면 안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