將臨節(장림절)과 現代(현대)그리스티안의 使命(사명)
발행일1960-11-20 [제255호, 4면]
『너희는 머리를 들고 우러러 보라. 대저 너희 등의 구속함이 가까웠나니라.』 (루가 21장28절)
오늘은 성신강림후 마지막 주일로서 가톨릭교회의 전례년력(典禮年曆)의 한해가 긑나는 주일이며, 다음 주일은 장림(將臨) 첫주일로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날인데 교회는 이 장림시계(時季)의 4주일동안 우리에게 그리스도 탄생 이전 구약(舊約)시대 예언자(豫言者)들의 기록(記錄)을 들추어 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메시아」에 대한 열렬한 동경을 회상시킴과 함께 구원(救援)의 은총을 우리들 각 개인과 가족과 사회와 국가와 인류 위에 나려주실 것을 기도하고 청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신으로 인하여 살고있는 가견(可見)의 단체이기 때문에 그의 공무(公務)인 예배(禮拜)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항상 감각(感覺)에 호소하는 행위를 수반하며 그 전례적 예배(禮拜)에 있어서 기도문, 의식(儀式) 그밖에 감각적인 표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제직(司祭職)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신자들로 하여금 구속의 비사(救贖秘事)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하여 구속의 가장 중요한 비사인 그리스도의 탄생과 외교인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공현(公現) 공생활, 고난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 성신의 강림 등등 사실을 전례를 통하여 다만 기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롭게 하며 그를 우리들 영신 안에 달성케 하고저 하는 것이 교회년력의 목적이다.
교회력의 주년은 성탄시계와 부활시계의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주년이 시작인 장림때는 예수의 성탄을 예비하는 때로서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구세주를 기다리며 사모하던 수천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인류는 그 조상 <아담>과 <에와>의 범명(犯命)으로 말미암아 죄중에 있어 자기 힘으로서는 죄의 사함을 얻을 수 없었고 또 천주께서 예비하신 초성(超性)한 복락을 얻기에 필요한 성총도 제 힘으로는 얻을 수 없었으니 구세주를 바랄 수 밖에 없어 그리스도 탄생 4천년전부터 세상은 구세주를 고대(苦待)하였고 성조(聖祖)와 선지자(先知者)들은 탄원(歎願)과 눈물로 「메시아」를 찾았으니 대저 구세주 오시지 않으시면 만민(萬民)이 다 멸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세계는 구세주를 갈망하였고 구세주의 출현이 가까워짐에 따라 세계의 여러국민들은 한층 행복한 시대가 올 것을 사모하고 바랐으니, 이것은 선지자들의 예언의 기록을 갖고 있는 「유데아」국민만이 아니라 이방인(異邦人)까지도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즉 그당시 이방인들은 평화와 번영이 시대가 올 것을 막연하나마 예감하고 있어 식자(識者)들의 머리에 박혀있던 이 사상의 준비가 있었으므로 동쪽나라의 학자들이 그리스도 탄생시에 이상한 별을 보고 주저없이 그 별빛을 따라 미지(未知)의 외국으로 먼 길을 떠난 것이며 모든 불편을 참고 견딜 수가 있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유데아」 인들은 구세주의 사명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었지만 그 탄생을 열심히 기다렸던 것이니 그들은 「메시아」가 「이스라엘」의 왕국을 다시 이르켜 옛날과 같이 번영토록 해줄 것으로만 믿었고 그리스도의 제자인 종도들까지도 성신강림때까지는 그와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는 그옛날 그리스도의 선구자(先驅者) <요안>세자가 너희들은 회개(悔改)하라』고 웨치던 때로부터 이미 2천년의 역사를 지냈으므로 물질문명의 진보는 놀랄만큼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주의 길을 닦으며 그지름길을 바르게 하고 모든 골짜기를 메우며 고개를 무너헤쳐굽던 것을 곧게 하며 험하던 것을 평탄한 길이 되게하라… 회개하는 합당한 행실을 하고 <아브라함>이 우리조상이라 말만 하지 말라』고 한 이 웨침은 20세기전이나 같은 박력(迫力)을 갖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니 현대를 바라볼 때 노경(老境)에 이르른 인류의 고민(苦悶)과 애수(哀愁)와 초조(焦燥)의 불안을 보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地球上)의 어디에서나 싱싱한 젊음과 희망과 생명과 기쁘에 약동하는 지방이나 민족을 찾아볼 수가 없으며 황혼과 같은 애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옛날 천주의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야훼」를 잊어버리고 멸망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천주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시어 그 백성을 미몽(迷夢)에서 깨우쳐 그 좌파를 통회하고 천주께서 회두(回頭)하게 하여 「메시아」의 오실 것을 알리고 희망과 용기를 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예언(豫言)과 율법(律法)을 완성하신 신약(新約)의 시대는 구약(舊約) 시대와 같은 의미의 예언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 필요도 없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도 구약시대처럼 인류에게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며 그 과오를 질책하고 올바른 역사관(歷史觀)을 보여주고 희망과 용기를 줄 필요가 있으니 이러한 예언자적 임무를 다할자는 그리스도의 구세복음(福音)의 수탁자(受託者)인 교회이며 그리스도신자이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칼같은 무서운 말로서 『지상적(地上的)인 것』에 빠져서 『영신적인 것』을 잊어버리며 육체적인 것에 취하여 천주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을 질책하였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대는 바로 물질과 육체가 횡패를 부리고 있는 시대라고도 말할 수 있으므로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자의 임무의 하나는 물질과 육체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評價)하고 영혼과 영원의 우위(優位)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맑시즘」의 유물론(唯物論)은 물질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물질의 가치를 부정(不定)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보다 높은 가치를 주는 가치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니 영적가치(靈的價値) 영원하신 천주의 무한한 가치가 그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偶像崇拜)를 견책하고 천주의 진노를 알렸다. 우리들의 시대에도 여러 종류의 우상숭배가 있다. 우상숭배란 경국 절대자(絶對者)가 아닌 것을 절대자로 받들어 높이는 것인데, 오늘날 인류는 경제(經濟), 법률(法律), 정치(政治), 정당(政黨) 국가권력(勸力) 이윤추구(利潤追求) 「이데오로기」 등등을 절대자로 들어높이고 있을 뿐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그 「이데오로기」는 일종의 종교적 『메시아주의』까지 덧붙혀서 비저내고 있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리고 그를 맞이할 준비의 길을 가르쳤다. 오늘날의 말로서 표현한다면 예언자는 천주의 백성들에게 인류의 역사방향(方向)을 보여준 것이었다.
현재의 인류도 역사의 바른 의의(意義)와 그 방향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인류에 대하여 천주께서 자여법(自然法)과 복음으로 인간에게 평탄한 길을 가르치고 보여주셨다는 것을 알리는 예언자적 역할을 다해야 할 자는 그리스도신자로서 인류에 대한 천주의 계획을 가르쳐줌으로써 역사의 바른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구세주는 이미 3천년 전 이 세상에 강림하사 인류를 구속하셨으되 아직도 모든 사람이 다 이 구속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인에게 교만한 자존심을 깨우쳐주며 각자의 소명(召命)의 위대함을 자각(自覺)케 하여 그 자유의지(自由意志)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하여 천주의 지도 아래 있는 인류공동체(人類共同體) 실현에의 노력을 촉진시며야 하는 것이다. 이난은 천주 없이 역사를 창조하지 못하며 또한 천주께서도 인간을 쓰시지 않고 역사를 창조하지 않으신다. 구약(舊約)은 천주와 그의 간선한 백성과의 역사적 계약(契約)이며 예언자들은 그 계약의 수호자이었다. 신약(新約)도 또한 천주와 새로운 백성과의 역사적 계약이다. 그리하여 이 계약을 이행하고 수호해야할 자는 그리스도 신자들인 것이니 말하자면 그리스도 신자는 현대에 대하여 예언자적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장림때를 맞이하여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위대하며 중대한 것인가를 깊이 깨닫고 실제로 자기 양심을 규명하여 <요안> 세자가 우리에게 『너희가 피하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라』고 경고하신 것으로 알아듣고 그 훈계를 따르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모든 골짜기를 메우며… 굽던 것을 곧게 하며 험하던 것을 평탄한 길이 되게 하라. 이에 모든 사람이 천주의 구세자를 뵈오리라』(루카 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