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를 만든 사람] (9) 오뀨스뜨 꽁뜨(Isidore Auguste Comte)
발행일1961-08-06 [제289호, 2면]
■ 생애
「불란서」의 철학가 실증론(實證論)과 사회학(社會學)의 확립자.
1798년 1월19일 「몽뻬리엘」에서 출생하여 「파리」에서 수학(數學)과 자연과학을 연구했다.
일찍부터 신앙을 잃고 1816년부터 사회주의자 <쌍 시몬>과 빈번하게 친교를 맺었다.
「빠리」의 공예학교에서 수학했다. 학생들의 반항(反抗)을 지도하다가 추방되었다.
1857년 9월8일 「파리」에서 사망.
■ 사상
<쌍 시몬>의 「산업가요리」(産業家要理)를 위하여 쓰여진 1822년도에 출판된 제 1편 「실증정치학체계」(實證政治學體系)는 이미 <꽁뜨>의 생애를 통한 과제 즉 정밀(精密)한 여러 과학에 뒤떨어지지 않는 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社會理論)의 수립 및 일체의 형이상학적 경향의 배제(排除)를 암시하였다. 그는 자기의 사상을 공개강연을 통하여 보급시키고 자기의 철학적 저서 「실존철학강의」에서 실증론을 이론적 영역(領域)에까지 철저하게 전개시켰다.
이 책에서 그는 인류발전의 3단계 즉 신학적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및 종국적인 실증적 단계에 관한 학설을 서술(敍述)하였다.
또한 그는 1842년 이후 자기의 철학을 개조(改造)하여 「인류종교」(人類宗敎) 혹은 실증정치학이라 하였다.
이것에 의하면 전 인류는 실증철학(實證哲學)의 의미에 있어서 종교적 성격을 가지는 한 개의 제도(制度)를 얻지 않으면 안되고 숭배(崇拜)의 대상(對象)은 인류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1854년에 그는 사회학적 주저(社會學的主著) 『實證政治學의 体糸 및 人類會學』의 논문을 탈고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빠리」 공예학교의 교직을 잃어버린 후 자기 제자들이 <꽁뜨>의 생활비를 부담하였고 <꽁뜨> 생존 중 제자들은 그에게 거의 종교적 숭배를 바쳤다.
■ 비판
실증론(實證論)은 경험론과 같이 상대주의(相對主義)에로, 필경은 회의론(懷疑論)에 귀착한다. 그것은 자신에의 최고 명제(命題)에도 타당성(妥當性)을 요구할 수 없다. 논리학 수학 및 존재론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무력했고 영구히 그러할 것이다. 왜냐면 이 실증론은 존재필연성(存在必然性)을 부정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경험적 지식 내지 경험적 과학에 대해서도 결코 충분한 기초를 주지 못한다. 실증(實證)이란 말에 미혹될 것은 없다. 경험이란 사실에 마저 충돌하고 모순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