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納凉] 조용히 살고 싶다
발행일1961-08-06 [제289호, 4면]
<의·식·주>(衣食住)라고 흔히 말한다.
그 순서야 어찌되었든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식위천』(以食爲天)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 말이고 또 <의식족이지예절>(衣食足而知禮節)이라는 말도 흔히 쓰는 말들이다.
입고 먹고, 먹고 입고- 그 차례는 비슷하게 어떤 것을 먼저 놓아야만 된다는 법이 없이 둘이 다 지극히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 다음이 <주>(住)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또한 『집 없는 설움처럼 세상에 큰 설움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과 같이 자신의 소유(所有)에 속하는 집 몇 간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곧잘 말하는 불평불만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서러웁다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간 생활 속의 슬픔이나 서러움을 따져 보자면 어찌 한 두 가지 뿐이랴. 또 아무리 고루거각(高樓巨閣)인들 죽어서 관 속에까지 떠매고 들어가지 못하게 마련된 바에야.
허지만 이사를 자주 다닌다는 것은 확실히 짜증나는 일이 많은 법이다.
그것쯤은 각오해야 한다.
우리집 작은놈하고 주인집 망내녀석하구 싸움질을 하느니……
이런 따위 일쯤에 일일이 신경을 쓰고는 남의 집 셋방살이는 어려운이라. 각오를 하고 체념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단지 한 가지 조용히 살 수 없다는 것만은 딱 질색이다.
남의 집에 살면서 어떻게 조용히 살기를 바라느냐고 하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내 집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든, 남의 집 협포에서 사는 사람이든, 우리나라 민도(民度)가 주위를 생각할 줄 알고, 남의 생활을 어지럽고 수선스럽고 시끄럽게 굴어서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초보적인 정신만 철저하다 해도, 우리들은 피차간에 조용히 살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R동 종점에는 본래 「뻐스」 종점으로 쓰던 사·오백 평의 넓은 공지(空地)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인지 이 공지에서는 북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고, 박수소리, 아우성 소리 해만 떨어지면 부근 일대에서는 귀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불과 백「미터」 거리밖에 안 되는 나의 방에서도 이 아우성 소리를 듣고 있으면 책을 볼 수도 없고 무엇을 써볼 수도 없었다.
여름 날씨도 무더웁고 저녁 식사 후이기도 하기에 바람도 쏘일 겸,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어슬렁 어슬렁 공지까지 나가 보았다.
얄으막하지만 꽤 넓은 천막이 쳐 있었고 천막 틈으로는 구경꾼들이 대가리를 파묻고 야단들이다.
천막 안에서는 -
그 광경을 그대로 여기 묘사하기에는 나의 붓재간이 너무나 모자란다.
주로 부녀자들이 삼·사백명.
미친듯이 고함을 치며 북을 둥둥 둥둥 치고 있느 사나이에게 박자를 맞추어서 이 많은 사람들이 박장을 치고 무슨 주문같은 것을 외우고 두 팔을 높이 들고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이게 대체 무슨 정신병자들의 집단인가 했더니 알고 보자니 놀라웁게도 이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무슨 『교』(敎)인지 나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은 흥미도 없지만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점잖은 신사 한 분 보고 물어봤더니 그 신사가 가만가만히 하는 대답이-
『정신병자들이죠. 비싼 밥을 먹구 맑은 정신으루야 저렇게 미쳐서 날뛸 수가 있겠어요. 무슨 부흥회(復興會)라나 전도회(傳道會)라나 그런 건가 보군요………』
이 말을 듣고보니 정말 가증스러운 심사를 금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무슨 종교(宗敎)란 말인가. 종교라는 미명을 팔아가지고 그들은 집회허가(集會許可)를 냈을 것이 뻐언하고 그것을 가지고 서울의 도심지대를 멀찌가니 떨어진 곳에와서 천막을 치고 북을 두들겨서 우매한 부녀자들을 광기(狂氣)에 날뛰게 하고 있는 그들의 소행은 정말 가증하고 한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그래도 「무당」이라는 존재를 어리석다하고 비웃을 것이 아닌가.
종교란 마음 속에 있을 것이요 정신 속에 간직되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비오듯 하는 이 무더운 여름날씨에 무슨 할 일이 없어서 몽매한 백성들을 신을 모독하고 종교를 모독하는 「어릿광대」 같은 길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일까.
우리들이 피차간에 조용히 살기 위해선 무엇을 사색도 할 줄 알고 책도 읽으면서 살기 위해선 이런 무지몽매한 족속들이 종교를 모독하는 소행이 하루바삐 없어져야만 되겠다.
(本名=요셉, 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