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41) <예수의 데레사> 성녀
발행일1961-08-06 [제289호, 4면]
그의 얼굴이 환희와 사랑으로 빛났다. 최후의 영성체가 그의 입술로부터 사랑의 마지막 말을 꺼냈다.
『나의 「신랑님」, 나의 구주여! 오래 기다리던 시간이 왔나이다. 나의 「사랑」이어, 나으 ㅣ구주여, 우리가 만날 때입니다. 제가 떠날 시간입니다. ……』
온 밤을 그는 탈혼 상태의 지복(至福) 가운데 지나면서 성영을 뒤풀이 읊었다.
『천주의 즐기시는 제는 크게 설워하는 마음이라. 통회하고 겸손하는 마음은 주여 너바리지 아니시리이다』 그는 『통회하는 마음』에 특히 힘을 주어 한참씩 그칠 때마다 퍽 즐거운 모양이었다.
「성 프란치스꼬」 축일인(10월4일) 그 이튿날 새벽에 <막다리나 마리아>가 잘하는 자세데로 그가 자기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돌렸다. 늙고 병든 그 얼굴의 주름살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얼굴이 변용(變容)되어 만월(滿月)과 같이 빛나면서 맑고 또 고요했다.
여러날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한 이 불쌍한 여인이 마지막으로 힘을 들여 눈을 들었다. 누구인가 찾는 기색이었다. 눈치 챈 그의 질녀가 흰 베일을 쓴 그 평수녀를 불러왔다. 그 수녀가 오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 마음을 놓았다. 그 수녀의 손을 잡고 그 팔 위에 자기 머리를 얹었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는 「카스틸라」의 한 촌부(村婦)에게 안겨 「제7실」을 초월한 곳으로 떠나갔다. 그의 유해가 이상한 향기를 내품었다. 그는 극히 희미하고 부드러운 신음을 세 번 내쉬고 67년의 마지막 숨을 지었다. 바마 아홉시었다.
죽은 <예수의 데레사>의 얼굴이 빛나는 태양과 같이 보일 만큼 아름답고 혁혁한대로 남아 있었다.
「알바」의 공작부인이 일평생 거치른 모직을 입고 지난 그의 몸을 황급 비단으로 덮었다.
그의 무덤에서 향기가 풍겼다. 수녀들이 자기들의 어머님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들은 <그라시안> 신부를 졸랐다.
1583년 7월4일에 그의 거룩한 무덤을 다시 열었다. 매장한 지 9개월이 지났으나 그으 ㅣ유해가 어제 묻은 시체와 다름 없이 새로웠다.
관구장 신부가 그의 왼손을 절단하여 「아빌라」로 모셔왔다.
「아빌라」 사람들이 자기 향토 출신인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유해를 「아빌라」로 면례(緬禮)하고 싶었다. 다만 「알바」의 공작부인의 방해 때문에 그 절차가 비밀히 진행되었다.
「아빌라」의 「성 요셉」 수녀원의 딸들이 자기들의 어머님을 도로 찾아다 모신 것은 그의 사후 3년이 지난 1585년의 11월이었다.
「아빌라」의 <돈 페드로 훼르난데쓰데 테미뇨> 주교가 심사관들과 2명의 의사와 <디에도 데 에페스> 신부와 <홀리안 데 아빌라> 신부를 포함한 약 20명의 심사원들을 거느리고 그 성녀의 유해를 조사했다.
『자연적 설명이 불가능하며 진정한 기적으로 인정함』
「알바」의 공작이 격노하여 「로오마」에 제소(提訴)했다. 교황성하의 제가로 이 성녀의 유해가 「알바 데 토르메스」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1588년에 그 성해(聖骸)를 목도한 <리베라>의 기록.
『노인이 거를 때처럼 약간 앞으로 굽었으나 그 몸 전체가 꼳꼳하다. 그의 체격이 좋았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그 시체를 일으켜 서 있게 하려면 한 손으로 그 등을 받쳐주면 넉넉하다. 그 시체에게 산사람처럼 옷을 입힐 수도 있고 벗길 수도 있다. …… 그 눈은 건조했으나 전부 그대로다. 그 얼굴의 사마귀 위에 난 털이 그대로 있다. …… 발이 예쁘고 균형이 잘 잡혔다』
이제 이 성해가 또 분리되었다. 오른 발과 상악(上顎)의 1편(_)은 「로오마」에, 왼발은 「리스본」에 오른손, 왼눈, 손가락들, 살조가리들은 「스페인」 전국에. 오른 팔과 심장은 이 완전히 부폐하지 아니한 그 유해와 함께 「알바 데 토르매스」에 남아있다.
1602년-시복 신청. 1614년-시복. 1622년-시성. 1626년-전 「스페인」의 주보. 1915년-「스페인」의 군대 주보. 「살라망카」대학-『신비신학박사』 <비오 12세>-『교회의 영광』 특히 활동적인 20세기의 여성들로서 건설, 노동, 창조에 종사하는 현대 영성들, 가정 주부들, 붕우의 신의를 존중하는 사람들 승산(勝算)이 없으면서도 희망을 중단 아니하는 사람들이 그를 주보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10월15일-「예수의 데레사」 성녀 축일)
고상해야 할 인격은 모든 의미로서 완전해야 할 것이며 위대한 성인들이 사소한 덕행을 경시(輕視) 아니함을 우리에게 보여준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공덕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 나라도 이미 「서울」과 「동래」에 「갈멜」 수녀원을 가졌고 또 「대구」에도 머지 않은 장래에 가지게 되었다.
보다 깊은 관상 생활을 탐구하면서 보다 높은 현실 생활을 갈망하는 우리 나라의 「지성」들이 「현대」에 불안을 느끼고 「동양적 신비」에 공허(空虛)를 느끼는 이 즈음에 그네들을 올바른 관상의 대상으로 이끌어 함께 그리스도를 찬양케 하는데 <대(大) 데레사> 성녀의 큰 역량(力量)이 발휘될 것이다.
(끝)
※完結에 붙여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전기를 이로써 끝맺겠읍니다. 그간 용어나 많은 고증(考證) 등에 골몰하신 필자와 삽화의 수고에 이를 높이 평가해 주신 전국에 독자의 이름으로 다시 감사드립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