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焦点(초점)] 求護主敎(구호주교)
발행일1960-12-04 [제257호, 1면]
◇… 평양교구장의 직위 보다 NCWC의 한국대표자로서 훨씬 많이 알려진 <죠오지 캐롤> (安) 몽시뇰은 구호사업과의 관계가 너무 깊어 <안주교> 하면 으례히 가톨릭 구호기관을 연상하리만큼 일반사회 외교인들도 잘 아는 그 이름
◇…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노기띈 표정을 찾아볼 수 없는 온화(溫和)한 호인(好人) 타잎의 그 모습은 한국땅에서 이미 26년이 세월을 보내셨는데 1906년 4월 8일 미국 「뉴욕」시에서 탄생한 몽씨뇰은 한국식 연령으론 금년 55세
◇… 외방전교(外邦傳敎)의 높고 거룩한 뜻을 품고 「메리놀」신학교를 거쳐 「워싱톤」의 「아메리카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한 젊은 학사(學士)님은 1931년 2월 1일 사제 성직(聖職)에 올림을 받아 그해 8월 평양교구로 오게됨으로써 우리겨레와의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 1942년 이른바 「대동아전쟁」으로 한때 미국으로 귀국하였다가 8·15 해방이후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되었지만 38선이란 괴물로 평양으론 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LARA(미국종교단체구제사업회)의 주한(駐韓) 대표로, 또 NCWC(미국가톨릭福祉協議會) 한국 주재대표의 일을 맡아오게 된 것이 『구호주교』라는 칭호를 듣게 마련된 첫 길
◇… 공산당에 구금되신 후로는 그 생사(生死)조차 알 길 없이 된 <방지거> 홍(洪龍浩) 주교의 후임으로 1951년 봄 제6대 평양교구장으로 임명된 「피난교구」의 주교님은 6·25전란때는 미8군 연락 종군신부로 활약하면서 그리운 북한(北韓)의 땅을 밟아볼 기회를 찾아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