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예물을 제대 앞에서 드리려 할 때 만일 네 형제가 너를 거스려 무슨 혐의가 있는 줄을 거기서 생각하거던 거기서 네 예물을 제대 앞에 머물러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목하고 이에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 천주께서는 형제와 화목하지 않는 교우들의 기구를 들어주시지 않고 원수에게 원한을 품은 마음을 가지고는 기구하려 성당에 갈 필요도 없고 따라서 영성체 하기를 금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천주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둘째 남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유일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법률학사 하나이 예수를 시험하여 물으대 『스승이여 법률에 어느 계명이 제일 크오니까』 예수 가라사대 『네 주 천주를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영신과 온전한 뜻으로 하라 하였으니 이는 가장 크고 제일 으뜸 계명이요 제이는 이와같으니 곧 남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하셨고 또 <요왕> 종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 만일 천주를 사랑하노라 말하며 제 형제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라 대저 눈에 보이는 제형제를 미워하는 자 어찌 능히 보이지 않는 천주를 사랑할 수 있으리오 천주를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 지니라 함은 우리가 천주께로부터 계명으로 받은 바니라』고 하셨읍니다.
우리 마음을 상해준 형제들을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형제에게 용서를 완전히 주었다 할찌라도 그는 우리 마음을 상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용서를 주었다 해도 그 형제를 대할 때는 항상 우리 마음에 쓴 맛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적 감정이니 만큼 완전히 없어질 수 없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싶다면 그 인간적 감정을 초월해야겠읍니다.
천주께서 형제에게 용서를 주라 하심은 사람의 의지에서 노력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의지를 정복시켜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용서하여야 합니다. 왜 <베드루> 종도가 예수께 나아와 『형제가 내게 범죄하였을 때 일곱번 용서하리이까』 예수께서는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하라 하셨읍니다. 말하자면 늘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용서는
첫째 남을 초성적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이기주의적인 애아심(愛我心)을 희생하게 되는 것이며
둘째 자기를 위하여 요구함이 없이 아주 깨끗한 사랑으로부터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 중에도 남을 사랑한다는 허다한 기회에는 원수를 용서하는 고귀한 사랑의 방법을 잃어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틀림없이 자기에 대한 애기심(愛己心)을 무시하고 원수에게 용서주는 것은 절대 깨끗한 사랑의 표입니다. 따라서 공평한 사랑으로서 절대적인 애덕을 실현시킬 수 있고 용서보다 더 깨끗한 사랑은 없으니까 용서만이 용서받는 자의 마음에 자연 사랑의 충격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막달래나> 성녀가 보다 큰 열정적인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도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더 많은 사함을 받은 연고였읍니다. 천주님의 인자는 의인에게 보다 죄인에게 대한 사랑을 더 발동시킨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그 뿐입니까 인간의 죄를 성부대전에 용서빌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사람의 형상으로 강생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을 수 없던 인류가 사랑을 받았고 용서를 받았읍니다.
대저 의인을 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 거의 없으려니와 선인을 위하여는 혹 죽음을 집행하는 자 있으리라』 그러나 천주께서는 아직 우리가 죄인으로 있을 때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대한 당신 사랑을 증명하셨나니라.
이와같은 온전하고 깨끗한 사랑을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요구하셨읍니다. 즉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이 말씀을 실천한 많은 제자들은 원수를 위하여 기구하며 원수의 손에 치명까지 함으로 우리에게 제2 표양이 되신 것입니다.
지극히 자애하신 천주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사랑과 더불어 생활케 하셨으며 성총으로서 구원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자기를 완전히 바쳤읍니다. 『백성들이 다시 모여와 음식도 잡수실 수 없는지라 당신 친척들이 듣고 붙잡으려 나오니 대저 말하기를 실성하였다 함이러라. 그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부마하였다. 미쳤다 그 말을 듣지 말라』 여러 가지 어조로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과연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는 죽음으로써 사랑을 증명하셨읍니다. 우리도 생활하신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 남을 참된 사랑으로 지나치게까지 사랑해야 하고 절대 공평적인 사랑으로 즉 원수에게까지 용서함으로 사랑해야겠읍니다.
예수께서 명령하셨으니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신자이면 명령하신대로 할 수밖에 없읍니다.
(필자=포항본당 주임)
安 베드루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