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10)
발행일1960-12-04 [제257호, 4면]
9, 메마른 내영혼
당시 「강신」수녀원의 응접실은 세속의 사교장이나 다름없이 성내의 손들로 번거러웠다. <데레사>의 놀라운 소문을 들은 각계각층의 사녀(士女)들이 그를 실지로 보려고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의 우아(優雅)한 몸가짐과 상냥하고 매력있는 말씨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오랜 병고중(病苦中) 독처(獨處) 다독(多讀) 관상(觀想) 시련(試鍊)의 단련을 받아 굳센데가 있어보이나 26세의 수녀로서 귀여운 소녀의 매력을 아직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데레사>의 그림자가 응접실 살창너머로 비치자 방문객들이 모두 그의 앞에 반원(半圓)을 지었다. 그때문에 그의 부친이 왓다가 이야기도 못다하고 돌아가는 때가 점점 많아졌다. 그런데도 평범한 신자였던 그 영감이 심도(心禱)를 할 줄알고 신비생활의 높이에 오른 것은 순전이 딸 덕이었다.
그러는 반면에 <베레사> 자신이 심도를 그만 두었다. 몸이 불편하다는 것이 스스로 위로하는 핑계였다. 장병 후에 회복된 건강이 즐거웠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는 이제 관상 중에 분심이 들어 메말라가는 자기 영혼을 어찌할 줄 몰랐다. 시과(時果)의 끝 종소리 날 때까지가 지루하여 초조했다. 영가소(詠歌所)로 가는 것도 힘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천주를 감히 대면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를 여전히 얌전한 수녀로 보아주는 남들을 기만하는 것만 같았다. 자기 최고의 이상에 도달한 영성생활의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했으나 실지로는 타협적인 회헌(會憲) 아래 굳어버린 습관에 따라 생활하고 있었다. 이 수녀원에서는 계율(戒律)이 「노비시아」들에게만 엄했고 허원만 하고나면 보석으로 몸치장도 했고 침묵시간에 조심없이 지꺼리기도 했고 이방에서 저방으로 찾아다니기도 했다. 오락시간에는 유행가를 주고 받기도 했다. 면회객들이 살창 사이로 넣어준 음식 선사가 들어오면 삼가한다는 수녀들까지도 먹고싶어 했다. 그만큼 수녀들이 굶주리고 있었다. 식구 수가 너무 많은 이집의 식사가 지나치게 빈약함은 「사막의 조사(祖師)」들의 유풍이 아니라 순전히 살림이 쪼달리기 때문이었다. 허원한 수녀로서 자기 본가나 특히 「갈멜」회원을 완영하는 가정에 가서 한동안 먹을 수 있다면 다른 수녀 하나를 동반하는 조건으로 나갔다 오는 허가 얻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것이 <데레사>가 수녀원을 가끔 떠나는 이유였고 아름다운 그를 자기 집에 데려다가 유익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자 「아빌라」의 대가(大家)들 사이에 쟁탈전이 일어나는 수가 있었다.
열심한 수녀를 제외하고 1백80명의 대다수에겐 시집 못간 독신주의자들의 합숙소나 다름없는 이 수녀원에서는 자기 재산, 지위, 취미에 따라 제마자 멋대로 생활하고 있었다.
<데레사>는 수녀원의 벽화와 특히 「요셉」성인을 찬양하는 자기 기도실 장식에 돈을 썼다. 그는 어른들과 고해신부를 공경했고 동료들을 사랑했다. 아침에 영가소에서 수녀들이 자기 옷이 기워진 것을 보고 놀라면 그가 간밤에 한 짓이었다. 그는 천성이 명랑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따랐다. 내성(內省) 시간에도 불려나가는 수가 있었다. 언제나 상냥하게 사람을 대하는 그는 『나의 생명! 나의 영혼! 나의 보배!』라는 아침 같은 찬사를 받기도 했으나 면회규칙을 엄수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구쓰만>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데레사>는 상대방의 구령을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그 남자를 대했다. <구쓰난>은 「카스틸랴」지방에서 부뒤를 겸한 집안의 미장부(美丈夫)였다. 그때 오주께서 가장 언짢으신 얼굴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가 다시는 그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결심했으나 그 발현(發顯)이 자기 상상의 결과라는 생각이 나도록 마귀가 그를 꾀었다. 시과 신공중에 이 친구의 생각이 끊임없이 분심 거리가 되었다. 이 문제의 인물이 면회하러 와있을 때 커다란 두꺼비 한마리가 그에게 나타났다.
그놈이 그런 종류의 짐승이 하는 거동으로서는 너무도 빠르게 기어가는 것을 옆에 있던 사람들도 보았다. <데레사>는 무서웠으나 이 두번째의 경고도 등한히 했다. 어느 늙은 수녀가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충고했다.
『<데레사>야, 너 그 남자는 만나지 말어라!』
『언니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야단이셔!』라고 대꾸는 했지만은 이제 그 손이 다시 왔을 때는 고운 신을 신은 맵시있는 그의 발걸음이 전과같이 활발치는 않았다. 자기 수방으로 돌아가서 독처 할 때 천주께서는 그와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었다. 마귀도 같이 있었다. 천주께서 그를 당신것으로 삼으려고 하시면 마귀는 그를 탈쳐가려고 했다. 영성적 환희가 그 남자와의 친분이 주는 쾌감을 약화했으나 천주만 모시려고 자기 수방으로 들어가면 그 친분의 기억이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수녀원에 들어온지 7년이 되는 이제 그는 영혼이 항상 그와 같이 두갈래로 찢어졌다.
1543년이 저물어가는 무렵 그는 부친의 시탕(侍湯)을 하러 「풀라쓰엘라 산토 도밍고」의 본가로 돌아갔다. 7년전에 버리고 나온 그 부친! 겨우 눈을 떠 그를 바라보는 인자한 눈이 벌써 빛을 잃었다. 척추가 앞아서 못견디는 것이었다.
『아버지,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잘 아시지요! 그 어른께서 당신 통고의 한몫을 주시는 것을 모르십니까?』
노인은 위안을 받고 신경(信經)을 외우면서 고이 숨을 지웠다. 죽은 얼굴이 천사 같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