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政治(미국정치)서 云謂(운위)되는 反(반)가톨릭의 根源(근원)
발행일1960-12-04 [제257호, 4면]
(基 3)
가톨릭 증가
여기에 현저하게 나타난 사실은 갑작스러운 가톨릭 인구의 팽창이다.
1807년까지는 불과 미국내의 7만여명의 가톨릭신자가 있었을 뿐이었는데 1820년의 경제적 정치적 불안에 기인하여 대대적인 이민이 이 나라에 드리닥쳤다. 주로 「아일랜드」와 「독일」 「라인랜드」에서 수많은 이민이 건너왔고 「아이랜드」 이민의 대부분이 가톨릭신자일뿐더러 「독일」 이민도 역시 그러했다.
이로 인하여 그 수는 종전의 약10배인 60만으로 격증하였고 이로부터 30년후에는 무려 4백만을 훨씬 초과하였다.
그러나 이민(移民)들은 (특히 「아이랜드」이민) 너무나 가난하고 무지(無知)하였다. 그들은 이미 기반닦은 미국인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임금(賃金) 인하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들은 대부분이 대도시의 뒷골목 빈민굴에 자리를 잡고 천박한 생활을 영위하고 그리고 주의의 멸시와 경계의 눈초리 밑에서 투쟁하였다.
「독일」이민들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윤택하여 중서부(中西部) 농장 지대에 널리펴저 점차 기반을 닦기시작하였다.
새로 도착한 이들은 곧 적개심의 초점이 되었고 특히 그들의 가장 중요한 믿음인 가톨리시즘에 반성적인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잠재했던 「공포」가 다시 생활에 나타났고 「애국심」을 유지한다는 구실하에 전 미국을 통한 「포피쉬」(교황을 욕함)와 같은 괴물단체가 음모를 꾀하기 시작했다.
이와같은 정치적 회괴사건을 『원주민보호주의(原住民保護主義)』라고 알려졌다.
그들의 주장은 『이민자는 모두 가톨릭신자이다』 『가톨릭신자는 교황에게 복종한다』 『따라서 이민은 저지되어야 하고 가톨릭신자는 완전한 미국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공직에서 쫓아버려야 한다』라고 시종하였다.
『토착(土着)미국인』이라는 정치단체가 1830년에 결성되고 40년에 가서는 비밀결사(秘密結社)로 전개되었다.
『별이 빛나는 기치(旗幟)의 명령』 이것은 만일 이 조직체에 관해서 질문했을 때 『아무것도 모른다』라고만 대답하는 단체원들이 조직한 한 단체의 이름이다. 따라서 이 단체는 『아무것도 모른다 당(黨)』(Know-Nothing Party) 이하 『모른다』당으로 생략)이라고 통속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의 회원들은 『이방인(異邦人)이나 외국인의 동향을 감시하고 그들의 음모(陰謀)를 분쇄하고 가톨릭교도(모욕적인 언사로 「패피스트」라고 그들은 부른다)들의 계획을 때려눕히는데』 헌신하는 미국태생 「프로테스탄트」로서만 구성되어 있다.
1852년 민주당의 <후란크린 피엘스> 대통령이 승리로 끝난 선거에서 『모른다』당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민자 및 가톨릭신자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이때의 반대당인 「휘그」당은 자각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휘그」당은 그 보복으로 『모른다』당과 제휴하여 운명을 같이 하였다.
1855년까지에는 『모른다』당의 공약을 뒷바침한 75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고 또한 8개주(州)를 지배하고 1856년에는 「백악관」에로 줄다름 칠 것 같이 보였다.
당시의 입후보자는 전 대통령 <밀라드 휠모아>씨였고 그는 여러가지 행운과 약간 희미한 동기를 지닌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교황과의 면접을 요청했고 또한 교황의 초대를 받았다는 「뉴우스」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고전을 겪었다.
이와같은 이중적인 지도자로 하여금 또한 지방을 노여움의 화중으로 몰아넣는 노예문제 등으로 인하여 『모른다』당은 최량의 기회를 높지고 말았다. 선거결과로서 공화당의 <휠모아>씨가 총투표수 1백30만1천표중의 87만4천표를 얻었고 당선자인 민주당의 <젬스 박하난>씨가 1백83만8천표를 획득하였다.
이러자 그들은 선거에 패배한 후에 즉각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따라서 『모른다』당은 손쉽게 해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의 성공(?)의 척도는 선거에 나타난 투표율을 보아도 알 수 있었고 비록 패배는 했을망정 전투표자의 35%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