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納凉(납량)] (수필) 우울한 窓(창)가의 벗
발행일1961-08-13 [제290호, 4면]
창문으로 들이치는 빗방울이 땀방울처럼 쪼록쪼록 줄을 그으며 흘러 내린다. 사뭇 우중충한 날씨에 마음마자 우울해진다. 나는 책에서 눈을 들고 창밖의 어둠을 응시한다.
머흘머흘 휘감겨 오는 내 운명의 모습을 응시하며 나는 무거운 침묵을 깨물고 앉아있다. 창밖에 찾아볼 수 없는 별들이 사뭇 아쉬워서인지 아지 못 할 서글픔이 비단결처럼 나에게 몸을 굽혀온다. 孤獨한 탓일까?
와락 울어보고 싶다. 한참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은 뽀오얗게 승화(昇華)되어 간다. 언제나 인간에게 아쉬운 것은 눈물이며 고절(孤絶)에 이기는 의지, 그리고 꿈을 그리는 넓은 감성(感性)이다. 이것은 몇 세월을 흘러가도 인간에겐 버리지 못할 유산인 것이다.
늘상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 인간은 좀 더 신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계단에 서게 될 것이다. 잠자기 전엔 꼭 성경구절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나는 마음의 번뇌와 불안에 쌓일 땐 언제나 예수와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 예수와 친구가 된다는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그렇게 되기까지 꾸준한 인내와 노력에 자기를 응시해야겠다고 스스로를 다짐한다.
시계가 열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석간신문(夕刊新聞)을 훑어보려고 펼치다 말고 흠칫 놀라 활자를 응시했다.
10년 전 1·4후퇴 때 아버지 밑을 떠나 남하하여 조그만 생활이나마 성실하게 꾸려나가려고 노력하는 나는 6·25 다음해 평북 청천강(平北 淸川江)에서 폭격으로 배가 침몰하여 세상을 떠나셨다는 아버님의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통속잡지 광고의 톱기사로 쓰인 커다란 활자는 분명 나의 가슴에 못을 박아준 것만은 사실이다.
아버지를 암살한 청년이 누군지 그런 것은 아예 알고싶지도 않다. 아버지를 암살했다고 필자 「싸인」까지 한 기사를 읽기 위해 나는 우산을 받고 거리로 나가 서점으로 달려갔다.
10년 전에 사망하신 분을 새삼스러히 또 끄집어내는 통속잡지사 편집인들의 졸열한 상업수단에 고소를 먹음고 나는 서점을 뒤로 했다.
결코 그러한 기사가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것은 내 정신 영역에 아무런 동요를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상적으로는 서로 상극된 세계에 위치했다 해도 인간으로서의 혈육의 정은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립해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보겠다고 꿈꾸던 우리 미족 누구나의 꿈이 외세의 힘에 의해 38선이라는 비극 속에 무참히 짓밟힌 현실 속에 우리는 과연 그 누구를 탓하며 원망할 수 있을까?
약소민족으로서 위치한 조국의 서글픔만이 다만 가슴을 아프게 할 뿐이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욕하고 있는 대상이 결코 같은 피를 타고 우리 동족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통곡을 해도 시원치는 않을 것이다.
10년 전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 본 것은 평북 강계(平北 江界) 벽촌 어느 개와집 사랑방 마루였다. 고요한 저녁이 시골 마을을 찾아들 무렵 나는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하고 「강계」를 떠났던 것이다. 저녁 어둠에 쌓인 사랑방 마루에 서성거리시는 아버님의 희끄므레한 모습이,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님의 음성이 어쩌면 지금도 빗방울 소리에 뒤섞여 자꾸만 들려오는 것 같다.
퍼그나 마음이 우울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않고 우중을 마구 헤매였다. 흙탕물이 나의 발등에 튀고 빗줄기가 나의 옷을 적셔도 나는 무방했다. 그저 한없이 어디든 걸어보고 싶었다. 줄기차게 내리쏟는 비가 「아스팔트」 위에 콩볶듯 튀었다. 얼마가 지났는지 나는 열한시반 「싸의렝」이 부는 것을 들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늦었을까』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책상에 마주앉은 나는 성경책을 펼쳐 들었다. 언제나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암시해주는 구절구절을 나는 소중히 되씹어 보는 것이다. 점점 나의 마음이 흐뭇한 휴식 속에 샛별처럼 빛난다.
창문을 들이치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여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