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X CATHOLICA』의 뜻은 『가톨릭 교회의 소리』라는 뜻입니다=編輯者註
항주가(航宙家-Cosmonaut) <가가린> <세파드> <그리솜> <티토프>에 대한 전세계의 반응이 그 항주가들의 비행 자체와 마찬가지로 흥미가 있다. 『인간의 힘으로 우주가 정복되기 시작했다』고들 생각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주최한 세계 여행 중 <가가린>이 발을 멈추는 모든 나라에서 대환영을 받고 있다. <세파드>와 <그리솜>이 비행 중 「텔레비」의 영사막을 통하여 수천만 「미국」인들의 자랑스러운 갈채를 받았다. 우주가 어떻다든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극소수인만큼 항주가를 『우주의 콜럼버스』라고 부른다. 이웃 항성의 거리가 42광년(光年)임에도 불구하고 실지 거리로 환산하면 <티토프>의 비행 거리는 교실용 지구의(地球儀) 상의 손구락 하나의 거리밖에 안 된다.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먼 별들의 거리가 60억 광년이다. 그러니까 선전에 사용되는 장담처럼 『우주의 정복』이라고 말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의 실물과는 동일한 점은 하나도 없다. <콜럼버스>는 선박으로 원양항해를 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자신을 준비하여, 항상 큰 위험이 수반하는 전 여정(旅程)을 스스로 계획하였고 또 자신이 지휘하였다. <티토프> <가가린> <세파드>는 자기들의 개인적 용기가 하나도 없으니 <콜럼버스>와는 비교가 될 수 없고 다만 원숭이와 「기니아의 돼지」 대신에 사용된 것이다. 그들은 아무도 우주항행의 생각을 자신이 품었던 것도 아니오 우주선을 건설한 것도 아니오 비행 여정의 방향을 자신이 잡은 것도 아니다. 이륙(離陸)과 착륙(着陸)이 지상(地上)의 본부에서 조종되었다. 우주 비행이라는 명목으로 성공된 전계획이 일개인에게 속하지 않고 과학자들과 기술자들로 구성된 방대한 집단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니까 한 「워크팀」이다. 그리고 사실상 「인민」의 집단생활제도의 전위자(前衛者) <후르시쵸프>가 <가가린>과 <티토프>를 자연의 비밀을 발견한 어느 위대한 인물과 같은 위대한 탐험가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가가린>과 <티토프>는 절대로 그러한 위대한 탐험가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시대에 특히 우주 비행에는 그러한 개인적 성공이 전연 다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달을 탐험하고 또 달에서 다른 유성을 탐험하려는 것이 아직도 「인류」이라면 그것은 전비행과정을 가능케하는 것이 인간의 「팀워크」의 덕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선(宇宙船) 안에 들어앉은 인간은 그 성공의 최소한 부분을 맡은 그 「워크 팀」의 일원(一員)이다. 그러니까 만일 그 우주 비행이 『사실상』 과학적인 목적만을 생각했다면 인간을 우주 속으로 보내는 것이 시대에 뒷떨어진 일이다. 예를 들면 <티토프>이거나 <가가린>이거나 <세파드>이거나 그들이 시각상(視覺上) 인상이나 관찰에 관하여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 우주선 안에 장치된 「텔레비죤」과 「텔레테이프」로 관찰한 결과에 비교할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까 우주인의 이상적 종류는 삶과 피가 있는 인간이 아니라 「로보트」라 하겠다. 그러나 「로보트」도 역시 인간의 두뇌와 기술의 결과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개인적 인간을 우주 속으로 보내자는 요구는 오로지 부분적으로 학문적인 성질이 있다. 우주 탐색과 우주비행은 동일한 사건이 아니다. 『인간의 힘으로 우주를 정복한다』는 「슬로간」의 뒤에 숨은 동기가 여러 가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험 정신이 그 최후의 동기가 될 수도 없고 또 그 최후의 동기라도 방대한 파괴의 위험이 수반하는 지상(地上)의 미해결의 현실문제의 상징적 도피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동기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 윤리적으로도 긴급한 일이 되는 기술상 발전에 대한 일종의 낙관주의다. 그것은 그러한 동기의 타당성을 입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은 특히 18세기와 19세기에 과학과 신앙의 분리로부터 시작하여 개인주의로부터 집단주의로 접어들면서 오로지 인력(人力)만에 의존하려는 공산주의적 인간 구원에 그 궁극 목적을 발견하려는 인간의 오만에서 나온다. 인간의 최초 우주 비행을 공산주의자들이 성공시켰다는 사실이 아마 단순히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확실히 상징적인 의의가 있다.
그러나 우주 탐험 자체가 인류에게 금지된 자부(自負)도 아니며 천주에게 대한 거역도 될 수 없다. 오만이란 그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설명에 있다. 공산주의자의 설명에 의하면 우주비행이 천주의 부존재(不存在)와 인력(人力)만으로의 우주지배에 대한 새로운 증명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에게는 인간의 세계지배가 오로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에의 참여(參與)로서만 가능하다. 인성과 신성(神性)을 갖추신 그리스도만이 이 우주의 사실상 지배자이시다. 우주에 관한 지식은 언제나 부분적이며 국한되었다. 그러므로 『인력으로 우주를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한 거리 때문만이 아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신성한 정기(正氣)』를 지니고 살아야 하며 『우주오만』에 떨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강대국가에서 극도로 비용이 많이 지출되는 그러한 우주 비행을 조직하며 보조(補助)함으로써 인류와 과학에 공헌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다짐한다면 그것이 단순한 허위임을 알고 이 오만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강대국가의 관심사는 인공위성과 「로게트」의 기술이다. 「로게트」는 원거리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나 인공위성의 사용법은 덜 알려진 것 같다. 인공위성의 행정(行程)을 지구의 운행(運行)과 일치시켜 대도시와 공업중심지대 위에 『고정(固定)』시키는 것이다. 그 인공위성 안에 장치한 원자력을 원거리의 사령부에서 보내는 신호로 폭발시킬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공격의 대책도 있지마는 원자력 전쟁이 더욱더 가공(可恐)하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일체의 성취가 국가사이의 전쟁능력을 강화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우리가 일종의 세계 비관론에 부동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좌우간 우리는 인류의 비행이 완전파멸과 무(無)를 지향하는 인간성의 비행이 되지 않도록 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