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더는 버릴 것이 많다. 너가 이 모든 것을 내게 맡기지 않으면 너가 구하는 바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라. 그러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고 원욕을 없이하라. 그러면 평화를 얻을 것이다』라고 실려있음 같이 우리들이 청빈허원을 실천하는 것은 아무리 한 재산이나 소유물 이 없이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수도생활을 영신적 빈곤자의 마음으로부터 생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비결을 잘 아시고 계시지만 또 아는 그 마음을 천주께만 애착하겠다고 허원까지 하셨지만, 사실 실천하고 계십니까?
물질적 빈곤 가운데서도 영신적 빈곤을 실천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에게만 얻어주어야 할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수녀님들에게 특별히 요구하시는 것은 필요한 소유물 가운데서도 애착하는 마음만을 완전히 희생하여 당신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참된 영신적 빈곤을 실천하는 것은 재산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사랑을 물리처버리는 것도 아니며,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는 것입니다.
청빈성서원을 실천하는 생활에 들어가 생활할 때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하여는, 외적 재물에 있어서나 마음의 명예를 차치하는 데 있어서나 또 자기가 일하고 수고하고 싶은 소임에서까지 완전히 오판의 자유를 무시하고 장상들에게 순명하고 천주께만 의탁하고 봉헌된 삼대성서원의 사랑의 쇠사슬에 얼켜 이 세상에서는 죽어버리고 특별히 천주만을 위하여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하나의 번재가 되며 따라서 신비적인 미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보담도 사랑하는 것은 재산을 얻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수녀님들 개개인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으실 때는 오직 그리스도만 사랑하기로 결정하였고 그리고 이 약속을 허원으로써 완전히 천주께 바쳤읍니다. 예수는 당신 홀로 모든 것 위에 사랑받기를 원하셨고 언제나 영혼들께 큰 사랑을 요구하실 때는 제일 먼저 사랑하는 부모, 재산 나라까지 떠나라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로부터 떠나라는 것입니다. 비록 물질적으로 많이 빈곤하드라도 영신적 빈곤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고, 마치 옛날에 우상숭배자들이 많은 재물을 버렸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신적 빈곤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기를 끊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읍니다. 수녀님들이 예수 뒤를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갔을 지라도 자신을 완전히 이기지 못하였으면 성녀가 될 수 없읍니다. 많은 수도자들 가운데도 열심한 수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없읍니다. 그 원인도 역시 자기를 완전히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피할뿐 아니라 천주님께 사상과 의지와 자유와 마음까지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하는 우리들의 하루 중에는 쓸데없는 생각이 많습니다. 물론 상상이 나는데로 생각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것까지 일부러 천주님께 희생하는 것이 영신적 빈곤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또 과거의 죄를 생각하는데 있어서도 잘못하면 죄를 지은 다음 또다시 영신적 빈곤을 거스리는 죄를 거듭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쾌락을 도모하기 위하여 천주를 거역할 수 있는 죄인입니다. 그러니까 죄인인 줄을 인정하고 너무 자기에 대해서 착각하게 될 때 역시 영신적 빈곤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너무 과거의 죄를 생각하므로 좋은 결과와 악한 결과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읍니다. <베드루>와 같이 어진 마음으로 통회해서 과연 나는 보통인간들과 같이 죄를 지을 수 있는 자다 하며 겸손되이 자기의 과거죄를 통회중에 생각하는 방법이 있읍니다.
항상 우리 마음 속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과 담화하며 쓸대없는 많은 생각을 천주님께만 희생으로 드립시다. 영신적 빈곤을 완전히 실천함으로 어른들 앞에 나쁜 사람으로 보여서 어덕하나 또는 신용을 잃어버려서 전신에 맥이 풀리고 얼굴에서는 평화를 찾을 수 없고 마음은 기쁨을 잃어버리고 육신은 힘이 없이 어굴하다는 생각만을 지지하지 말고 완전히 부족 중에서 해방되여 모든 것을 천주께만 애착하여 정결덕을 빛내고 회칙에 포로가 되어 순명서원을 순조롭게 이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수도자는 순명만 있으면 성녀를 이룬다합니다. 그러나 영신적 빈곤이 없이 완전히 자기를 이탈하는 내적 순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수도자들 중에는 외적으로 순명행위가 보입니다. 그러나 순명의 정신이 부족한 것을 볼 수 있읍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에는 기쁨 없이 순명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할 적이 많습니다. 따라서 순명정신이 있는 자는 좋아하던 싫어하던 일에 여하를 두지 않고 기쁜 마음과 태도로 순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녀님들은 희생하는자 「호스띠아」의 「빵」이 되기 위하여 수녀원에 오셨읍니다. 옛날 제사에 필요한 재물과 같이 우리들의 생활 가운대서 오는 희생이 천주대전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깝게 생각지 말고 적은 기회나 나하나를 완전히 번제시킵시다. 희생이신 예수님과 같은 희생자가 되지 않으면 세상에서나 특별히 천주대전에 필요 없는 괴물이 되고 맙니다.
원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사람은 자연히 남이 좋아하는 희생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 뿐 아니라 남들이 『수고합니다』 하면 『아무렴』하고 마음으로 자부심이 만족합니다. 수도생활을 하는 것은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기 위한 것이지 남들이 수도생활의 증인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깊이 명심하십시요.
사랑하는 예수님의 품에서 「숨은생활」 성체대전의 침묵 중에서 「잠심생활」 모든 실생활의 극기와 마음의 희생까지 바칩시다.
수녀님들도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 「갈봐리아」산길에서 십자가를 지신체로 세 번이나 넘어지신 것도 우리들에게 죄를 뉘우친 후 또다시 죄를 범할지라도 실망치 말고 끝까지 새출발하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이유입니다.
예수여! 인자와 사랑이 충만하신 예수여! 내 죄를 살피지 말으시고 오직 네 성교회의 신덕을 보십시요』
(포항본당 주임신부)
安 베드루